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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무역흑자 감소, 플러스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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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무역흑자 감소, 플러스 효과도 있다

〈기자의 눈〉 대미 수출, 늘리는 것만 능사인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처진다고 난리다. 최근 국내외 주요 언론들은 미국 상무부의 발표를 인용해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액이 161억900만 달러로 2004년에 비해 18.5% 감소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재계는 미국 시장에서 국산품의 경쟁력이 다른 나라들에 뒤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 시장으로의 수출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미국으로의 수출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 폭이 줄어들긴 했지만, 원화 가치가 상승한 가운데서도 대미 무역흑자 자체는 유지됐다는 점이다. 또 중국, 브라질, 러시아 등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로의 수출액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대미 무역흑자 폭의 감소는 큰 문제"라는 주장에는 두 가지 가정이 숨어 있다. 먼저 '대미 무역흑자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미국에서 우리의 시장경쟁력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가정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가정은 '대미 무역흑자 폭은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정에는 미국의 천문학적인 쌍둥이 적자, 달러 가치의 하락 추세, 고유가의 지속, 세계경제의 불균형 확대 등 보다 큰 그림 속에서 '대미 무역흑자 폭 감소' 현상을 이해하려는 상식적인 노력이 결여돼 있다.

***환율절상에도 불구하고 대미 수출은 늘어났다**

자국 화폐 가치의 상승 또는 달러 대비 환율의 하락은 수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리는 효과를 낸다. 자국 화폐로 가격이 매겨진 국산품의 달러 환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출이 감소하는 동시에 수입품에 대한 자국 화폐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수입은 증가하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자료를 보면, 2005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화폐의 절상률은 2.49%였다. 따라서 최근 미국에 대한 수출이 감소하고 수입이 증가한 데는 원화 가치 하락이 일정 부분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올초 기아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으로의 자동차 수출량이 전년에 비해 증가했는데도 원/달러 환율의 하락과 고유가의 지속 때문에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은 오히려 감소했다며 '비상 환율경영 체제'를 선언했다.

한편 우리나라에 비해 대미 무역흑자 폭이 상대적으로 더 커진 것으로 알려진 일본이나 인도의 경우 미국 달러에 대비한 자국 화폐의 가치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일본 엔화의 가치는 12.89%, 인도 루피화의 가치는 3.74%가 각각 떨어졌다. 이런 나라들의 대미 무역흑자 폭이 커진 데는 환율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중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중국은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가 24.5%나 증가했지만, 중국 위안화의 가치는 지난해 7월의 환율 페그제 폐지로 인해 2.56% 상승했다. 원화 절상률과 비슷한 수치다. 물론 지난해 말 미 재무부가 각국의 환율정책을 검토한 결과 실질적인 위안화 절상 폭은 0.3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 환율 절상률이 우리만큼 크지는 않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경제전문가들은 달러에 대비한 원화 가치의 상승과 이에 따른 무역 채산성의 악화를 예견해왔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오히려 '서서히' 이뤄진 측면이 있으며, 이에 따라 대미 무역흑자가 '조금씩' 감소한 것은 그 필연적인 결과였다.

***대미 수출은 줄었지만 총수출은 증가했다**

또 주목해야 할 것은 2005년 미국에 대한 수출액은 감소했는지 몰라도 총 수출액은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 수출액은 2004년 2538억4500만 달러에서 2005년 2846억500만 달러로 12.12% 증가했다. 이 중 미국으로의 수출액은 2004년 428억4900억 달러에서 2005년 413억7900만 달러로 3.43% 감소했다. 또 이 기간 동안 전체 수출에서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6.88%에서 14.54%로 2.34%포인트 감소했다. 미국으로의 수출액과 수출 비중이 둘 다 감소한 것이다.

미국 비중의 감소는 수입 부문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의 총 수입액은 2004년 2244억6300만 달러에서 2005년 2611억100만 달러로 16.32%로 증가했다. 이 중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은 2004년 287억8300만 달러에서 2005년 305억5100만 달러로 6.14%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체 수입에서 대미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12.82%에서 11.70%로 1.12%포인트 감소했다.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한국의 전반적인 수입 증가 추세 속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오히려 미국에서의 수입 증가액은 다른 나라들로부터의 수입 증가액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수출입 시장의 다변화라는 긍정적인 측면은 왜 못 보나**

또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 폭이 감소한 데는 세계경제 성장의 새로운 견인차로 부상한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경제 4국)의 등장과 맞물린 우리나라 수출입 시장의 다변화 추세라는 요인이 반영돼 있다.

2004~2005년에 우리나라의 수출 대상국 순서는 수출액 기준으로 중국, 미국, 일본, 홍콩, 대만 순이 유지됐다. 하지만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모두 줄어들었다. 미국, 일본, 홍콩, 대만으로의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4년에는 각각 16.88%, 8.55%, 7.14%, 3.88%였으나, 2005년에는 14.54%, 8.46%, 5.46%, 3.82%로 떨어졌다.

대신 브릭스(BRICs) 국가들인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로의 수출 비중이 높아졌다. 중국으로의 수출 비중은 2004년 19.60%에서 2005년 21.78%로 껑충 뛰었다. 또 러시아, 브라질, 인도의 수출 비중도 각각 2004년 0.92%, 0.70%, 1.43%에서 2005년 1.36%, 0.85%, 1.62%로 확대됐다.

즉 한국경제에서 미국, 일본 등 전통적인 수출 대상국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지고 있으며, 대신 그 자리를 브릭스가 메우고 있는 것이다. 수입 부문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수입 대상국 순서는 일본, 중국,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순이다. 이 중 일본, 미국, 독일로부터의 수입 비중은 2004년 20.56%, 12.82%, 3.78%에서 2005년 18.53%, 11.7%, 3.74%로 감소했다. 한편 중국에서의 수입 비중이 2004년 13.18%에서 2005년 14.78%로 증가했다. 또한 석유 값의 상승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의 수입 비중도 2004년 5.26%에서 6.20%로 증가했다.

한국의 수입 시장에서 전통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던 미국과 일본의 입지가 줄어드는 대신 중국 등 신흥시장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생산국들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예전부터 미국, 일본에 치우친 우리 경제의 편중성을 걱정해왔다. 따라서 우리의 수출입 시장이 다변화되면서 미국, 일본의 영향력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은 '건강한' 현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미국으로의 무역흑자 규모가 감소하는 것은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대미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의 허점**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중국이 대미 무역흑자를 늘렸다는데 우리나라만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대미 무역흑자 폭이 확대되는 것이 좋은 효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대미 무역흑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미국과의 통상마찰이 증가할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해 7258억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를 기록한 미국은 몇 해 전부터 중국을 비롯한 대미 무역흑자국들에 '관세 및 수출보조금 철폐', '화폐 가치의 절상' 등을 요구하는 압박을 가해왔다.

또 천문학적인 쌍둥이 적자, 달러 가치의 하락, 부동산 거품의 붕괴 가능성,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유가 등으로 위태위태한 미국경제에 대한 의존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국민경제가 감당해야 할 위험성도 커진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투자의 기본원칙을 상기해 보면, 미국 시장에 수출을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국민경제의 명운을 미국에 맡기는 위험한 행위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 중국, 일본 등이 대미 수출을 통해 축적한 과잉 달러를 미 국채의 매입 등을 통해 다시 미국으로 돌려보내면, 미국은 이 달러를 바탕으로 재정적자를 메우고 과소비를 지속하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을 상대로 전쟁을 계속할 것이다. 이는 '달러 재활용(dollar recycling)'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현재의 기형적인 세계 정치경제 구조가 강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모든 사항들을 고려하고 나서도 미국에 대한 수출을 어떻게든 늘려야 한다는 주장, 나아가 한미 FTA를 비준해 미국 국민들의 지갑을 더 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쉽게 할 수 있을까. 보다 긴 안목에서 한국경제의 현재를 가늠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자세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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