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공격을 곧 본격화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미국의 한 대형 헤지펀드가 사용하는 신종 M&A 기법이 국내에 상륙해 금융시장을 교란할지 모른다는 경고가 나와 주목된다.
***투자손실 위험 없는 지분매입 기법**
최근 아이칸은 "우리가 페리에게 당한 방법 그대로 아시아에서 써먹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아이칸이 언급한 이른바 '페리 기법'이 무엇인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페리 기법'이란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경영자였던 리처드 페리가 설립한 10조 원 규모의 대형 헤지펀드인 '페리 펀드'가 구사하고 있는 신종 인수합병(M&A) 수법으로, M&A 대상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기 전에 파생상품의 거래를 통해 M&A가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이다.
페리는 지난 2004년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킹 파마슈티컬을 밀란 래버러토리에 합병시키기 위해 밀란의 지분 2660만(9.89%) 주를 매입해 밀란의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그 결과 밀란의 최대주주였던 아이칸은 2위로 밀려났다. 페리는 밀란으로 하여금 킹을 인수합병(M&A)하도록 압력을 행사했으나, 아이칸이 뉴욕 연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 합병을 적극적으로 저지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서 M&A를 주도했던 밀란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반면, 아이칸과 일반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페리가 밀란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M&A가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매입가격과 동일한 가격으로 지분을 증권회사에 되팔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뒀기 때문이다.
한편 페리가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이 M&A가 성공했을 경우 페리가 거둬들였을 수익은 최소 2800만 달러에 달한다.
***금감원 워싱턴사무소 "페리 기법의 국내 침투에 대비해야"**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EC는 "투자손실 위험이 없는 주식매입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대형 투자자의 금융정보 공개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페리에 대한 제재에 나설 계획이다.
이에 대해 페리는 "법률자문위원회의 자문대로 현행 법규 내에서 주식거래를 진행한 것"이라며 느긋한 반응이다. 월가의 전문가들도 SEC가 페리에 제재를 가하면 페리가 즉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럴 경우 페리가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미국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한국 금융감독원 워싱턴사무소는 13일 서울 본부에 "미국의 증권감독 당국인 SEC에서 최근 M&A에 성공하면 큰 이익을 얻고 실패하더라도 손실위험이 없는 '페리 기법'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또 금감원 워싱턴사무소는 "페리 방식의 거래를 하는 기업이 (국내에) 침투하면 국내 금융시장의 혼란은 물론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이에 대해 사후적인 규제에 나설 경우 한국과 미국 간 금융마찰로 확산될 소지가 있어 사전대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정부 '주요주주 사전승인 제도' 도입 검토 중**
금감원은 지난해 3월부터 외국자본의 적대적 M&A로 인한 국내 금융시장의 교란을 막기 위해 외국인이 국내 기업의 주식을 5% 이상 매입할 경우에는 주식 보유의 목적이 '단순 투자'인지 '경영 참가'인지를 명시하도록 했다.
최근 금감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들 가운데 외국인이 주식의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은 총 450개로, 이 중 외국인이 '경영 참가'를 목적으로 주식을 매입한 기업은 109개에 달한다. 이들 기업도 KT&G처럼 아이칸과 같은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국내외에서 헤지펀드들의 적대적 M&A와 관련된 논란이 가열되자 정부는 공공성이 크거나 독점성이 있는 국가 기간산업을 외국자본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국가 기간산업에 속하는 기업의 주요 주주가 되려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정부 당국으로부터 '사전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증권거래법, 공기업민영화법 등 외국인 지분 제한과 관련한 6개 법령의 관련 조항들을 묶어 하나의 '기간산업보호법'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KT&G는 14일로 예정된 이사회에서 칼 아이칸이 추천한 3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명단에 올려 놓고 아이칸의 요구대로 집중투표제를 실시해 사외이사를 선임하기로 했다.
집중투표제란 기업 주주총회에서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거나 반대표를 던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가 적용되면 100주를 가진 소액주주가 3명의 이사를 뽑는 투표에 참여할 때 각각의 이사 후보에게 100표씩만 던질 수 있는 게 아니라 한 후보에게 300표를 몰아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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