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환율 문제에서 '악역'을 담당하게 하려는 미국 정부의 압박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IMF의 개혁 문제와 연계해 가해지는 이런 압력에 대해 로드리고 라토 IMF 총재는 "IMF는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명한 선을 긋고 있어, 앞으로 미국과 IMF 사이에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라토 총재는 더욱이 "국제경제의 새로운 판도를 반영하기 위한 IMF 표결권 재편이 불가피하다"면서 "오는 9월 이전에 실현되길 바란다"고 밝혀 IMF의 1위 출자국으로서 최대 표결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기득권이 전례 없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미국과 IMF 사이의 이같은 마찰은 미중 간 '기싸움'에 IMF가 말려들지 않으려는 경제외적 측면도 포함돼있어 갈수록 복잡하게 꼬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미국 재무부의 팀 애덤스 국제담당 차관은 2일 워싱턴 소재 미국기업연구소(AEI) 회동에 참석해 "IMF가 환율 문제에서 더 큰 역할을 할 때가 됐다"면서 "이는 외환제도가 일관성 있게 운영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애덤스 차관은 "환율제도 안정은 특히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국가들'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을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발언은 사실상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국가들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애덤스 차관은 IMF가 '특별협의권'을 자주 발동하고 회원국들에 대한 환율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미국은 재무부가 주요 교역국들을 대상으로 한 환율보고서를 매해 2차례 낸다.
IMF의 특별협의권에 대해 애덤스 차관은 "특별협의 대상국이 이를 '수치'로 여기기 때문에 IMF도 가급적 발동하지 않아온 것이 관행"이라면서 그러나 "정기적으로 개입하면 그런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IMF가 기대하는 환율정책을 회원국들이 100%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필요할 경우 '강제권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IMF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개혁안이 "너무 회원국 국내경제 문제에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IMF는 미국 정부의 이같은 요구에 냉담한 입장이다.
라토 총재는 지난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중국이 외환제도를 더 유연하게 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기본입장을 밝혀왔다.
라토 총재는 또 IMF가 회원국에 '조언'할 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도 강조해왔다. 라토 총재는 그간 여러 차례 애덤스 차관과 만나 이 문제를 협의한 바 있다.
워싱턴 소재 국제경제연구소(IIE)의 모리스 골드스타인 수석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백악관이 중국에 대한 환율 압력과 관련해 IMF에 악역을 넘기려고 하나 미국의 뜻대로 되기는 힘들 것 같다고 지적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의 미셸 프라티안니 경제학 교수도 〈블룸버그〉에 "미국이 중국에 대한 환율 압박에 실패하고는 이제 IMF를 끌어들이려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뜻을 이루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의회 격) 상무위의 청쓰웨이 부위원장은 지난주에 "여건이 아직 미흡하다"면서 "중국이 위안화의 완전 태환을 실시하려면 최소한 2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 의회가 중국에 대한 환율보복 입법을 다시 경고하며 백악관을 강하게 압박하는 가운데 미국 행정부가 IMF에 환율 분야에서 악역을 떠맡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쉽게 뜻을 이루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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