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10일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외국만 쳐다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북한을 아프게 할 효과적 수단이 없을 정도로 남북관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청년그룹 '행동하는 양심' 주최로 이날 열린 6.15 공동선언 1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김 교수는 천안함 이후 외교 면에서 이명박 정부가 △'선(先) 천안함 해결 후(後) 6자회담' 방침을 고집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내다보기 어렵게 만들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으로 '북중연대'를 가시화하는 동안 굴욕을 겪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건으로 이명박 정부의 안보 무능력이 드러났으며, 오히려 안보 담론을 최대로 활성화시켜 무능을 회피했다고 일갈했다. 또 사건 이후 발표된 대북 강경조치에 대해 "복원 가능성을 원천부터 봉쇄한 남북관계의 전면 중단"이라면서 "신뢰의 끈, 대화의 끈의 단절"이라고 평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천안함 문제로 남북관계를 원천 봉쇄해버리는 태도를 버리고, 두 문제를 병행해 갈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그는 "2002년 제 2차 북핵 위기 때도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병행시켜 한반도 위기를 관리하고 긴장 고조를 완화시켰다"며 "남북관계의 적극적 역할이 북핵 문제도 해결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천안함 문제로 한국이 남북관계의 끈을 놓아버릴 경우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력을 잃는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천안함 사건 이후 한반도에 "소극적(negative) 평화에서 적극적(positive) 평화로, 불안정한(unstable) 평화에서 안정적(stable) 평화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며 "긴장과 대결의 서해 바다를 공존과 평화의 바다로, 안보 프레임을 평화 프레임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교착상태에 빠진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해 "금강산 관광 재개를 통해 남북관계 복원의 계기를 찾고, 북미 협상을 추진해 한반도 정세 호전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비핵·개방·3000은 정책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북핵 정책에 대해서도 쓴 소리가 이어졌다. 서보혁 이화여대 연구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놨던 '비핵·개방·3000' 구상에 따른 북핵 정책은 북한으로부터 진정성을 의심받을 뿐만 아니라 북미 회담 진전시 한반도 정세 변화에 소외될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놓고 있는 위험한 접근이었다고 평가했다.
서보혁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핵문제에 올인 하면서도 핵 신고 문제 타결, 6자회담 재개 등 현 북핵 국면 타개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서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새롭게 내놓은 '그랜드 바겐'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했다. 그는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는 대신 국제협력을 통해 경제지원과 안전보장을 한꺼번에 해주겠다는 일괄타결 전략"이라고 요약하면서 "이 역시 새로 포장했음에도 북한의 호응은 물론 6자회담 참여국들의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북한이 핵보유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의 길은 더욱 험난해지고 있다면서, 그렇다고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등 현실추수적 태도나 즉각적인 대북 응징을 추구하는 모험주의적 자세로 나가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서 교수는 △북핵 폐기는 한반도 비핵화의 틀 속에서 추진해야 하며,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 정전체제 청산 및 평화체제 수립과 병행 추진해야 하고, △북핵 문제는 결국 북한의 핵 폐기와 그 상응조치를 하나의 큰 틀에 묶어 동시행동의 원칙으로 해결해야 하며, △남·북·미 3자는 한반도 비핵화에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또 한국이 동북아 다자안보협력과 한반도 평화체제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양자의 병행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6자회담 참가국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에 나선 박순성 동국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말할 때, 비판의 핵심은 강경론이라는 측면에 있다기보다는 '강경론의 배경과 근거가 취약하다'라는 사실에 있다"며 대북 정책 비판 시각의 변화를 촉구했다.
정영철 서강대 교수는 이날 발표자들이 현 정부의 문제점과 이에 따른 대안을 적절히 제시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제는 그보다 남북이 어떻게 해서든지 마주앉아 얼굴을 맞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한이 극단적 대립 양상까지 보이는 상황에서, 대안 제시가 필요한 건 분명하지만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기는 극히 어렵다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박창일 평화3000 운영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토대가 된 '비핵·개방·3000' 구상을 보면, 비핵은 북미간의 문제이고 개방은 한미동맹에 의한 흡수통일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3000달러는 김정일 위원장의 지도자적 능력에 대한 문제로 오해할 수 있다"며 "이런 의미에서 '비핵·개방·3000'은 쌍방향적이지 않고, 정책이 아닌 구상일 뿐이며 따라서 폐기돼야 한다"고 일갈했다.
토론회는 10일 오후 3시부터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 컨벤션홀에서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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