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정문 앞. 천주교 의정부·수원교구 사제와 신도 80여 명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사제 2명의 삭발식을 진행했다. 팔당 일대의 하천 부지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유기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이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땅을 잃게 된 가운데,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 유기농지 보존'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2006년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제들이 군부대까지 투입된 대추리 강제 진압에 항의하며 삭발식을 진행한데 이어, 이번에도 역시 '국책 사업'이란 이유로 강제 수용을 앞둔 팔당 유기농 단지를 지키기 위해 사제들이 삭발에 나선 것이다.
▲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삭발하는 최재철 신부. 뒤로 사제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
이날 삭발을 진행한 최재철 신부는 "어떤 간절한 호소에도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이명박 정부 앞에서, 삭발을 하면서까지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해야 하는 현실이 한탄스럽다"면서 "주교회의까지 나서 4대강 사업 중단을 호소했지만, 천주교 신자인 김문수 '모세' 경기도지사는 '종교인들이 오해를 하고 있다'며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신부는 이어 "김문수 지사는 팔당 농민들과 함께 세계유기농대회를 유치해 놓고도, 대회 개최지인 팔당의 친환경 유기농 단지를 없애 4대강 사업을 강행하는 등, 개인의 정치적 치적을 위해 거짓과 배신을 일삼는 행위를 중단해야 할 것"이라며 "김문수라는 '괴물 신자'를 만들어낸 것에 대해 회개하는 마음으로 삭발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농민 10명이 소신공양해야 이 사업 멈출건가"
1년 넘게 팔당 유기농 단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농지 보존·친환경 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원회' 유영훈 위원장은 "우리 농민들이 힘들어 할 때 항상 옆에서 도와주셨던 신부님들이 삭발을 한다고 하니 마음이 무겁다"면서 "이명박 정부는 수도승이 소신공양을 한 것도 모자라, 사제들이 삭발까지 하게 만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수도승이 소신공양을 하고, 사제들은 삭발까지 했지만…". ⓒ프레시안(선명수) |
이날 수원교구·의정부교구 사제연대와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김문수 모세 도지사는 6·2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외면하고, 4대강 사업을 예정대로 밀고 가야 한다며 대국민 협박을 일삼고 있다"면서 "4대강 사업 중단에 대한 거센 국민적 요구가 확연해진 상황에서, 이제라도 정부는 한 발 물러서 4대강 사업을 중단하고 재검토 해야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날 <한국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전국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6·2 지방선거 이후 '4대강 사업의 속도를 조절하고, 규모를 축소해야한다'는 의견이 46.8퍼센트,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32.6퍼센트로, 80퍼센트에 가까운 국민이 4대강 사업에 부정적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천주교 사제들, 경기도청 앞에서 '릴레이 기도회' 시작
이날 사제들은 "우리 사제들은 삶의 터전인 강과 땅이 죽어가고, 하느님께서 주신 고귀한 생명이 유린되는 세상의 죄를 복음의 빛으로 제도하지 못한 책임에 통감한다"며 "하여 오늘부터 이곳 도청 앞에서 베옷을 입고 단식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김문수 모세 도지사가 당장 '죄의 길'에서 돌아와 생명을 선택할 것을 기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삭발식에는 최재철 신부 외에도 의정부교구 조해인 신부가 참여했다. 경기도내 교구 신부들이 사회 문제를 이유로 삭발식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수원·의정부교구 사제들은 이날부터 경기도청 앞에서 무기한 '사제 릴레이 기도회'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오는 14일에는 강우일 주교 등, 천주교 주교단이 참여한 가운데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성당에서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 유기농지 보존을 위한 생명·평화 미사'가 열린다.
▲ 조해인 신부(왼쪽)와 최재철 신부가 경기도청 앞에서 팻말을 들고 기도하고 있다. 뒤로 경찰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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