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와 박종혁 연구원이 지난 12월 말 나누었다는 전화통화 내용 때문에 언론이 또 다시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진위와 관련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 문제의 통화 녹취록에서 황 교수 등은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수정란 줄기세포'를 언급하며 류영준 연구원이 자신들을 속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과학계는 이에 대해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황-박 전화통화 내용 보도'는 하나마나한 소리…줄기세포 실체를 보여 달라"**
13일 밤의 SBS 뉴스와 14일자 〈조선일보〉 등은 일제히 12월 26일 황우석 교수와 박종혁 연구원의 전화통화 녹취록을 근거로 "류영준 연구원이 2003년 수정란 줄기세포를 만들어 놓고서 이를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복제 배아 줄기세포라고 주장한 것 같다"며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황우석 교수와 박종혁 연구원은 모두 류 연구원에게 속은 셈"이라고 새로운 의혹을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의혹 제기는 "하나마나한 소리"라는 것이 과학계의 중론이다. 이 보도를 접한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한 조사위원은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류영준 연구원이 만들었다는 이른바 수정란 줄기세포가 존재해야 한다"며 "하지만 조사위원회가 황우석 교수팀이 성립시킨 모든 줄기세포를 확인해봤지만 그럴 가능성을 시사하는 줄기세포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 조사위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교수가 그런 주장을 펴려면 '류 연구원의 수정란 줄기세포'가 존재했다는 과학적 데이터부터 제시하는 것이 과학자의 주장으로서 앞뒤가 맞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다른 관계자도 "류영준 연구원이 만드는 데 관여한 줄기세포는 이미 '처녀생식'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명됐다"며 "만약 류 연구원이 수정란 줄기세포를 확립해 황 교수와 박 연구원을 속였다면 현존하는 1번 줄기세포가 난자 제공자 B로부터 유래된 것임을 확인한 조사위원회의 DNA 지문분석 결과는 도대체 뭐냐"고 되물었다.
그는 "황우석 교수 측이 흘린 이런 '비과학적인 언론 플레이'에 휘둘리는 언론들이 정말 딱하다"고 덧붙였다.
***황우석-박종혁, 논문 조작 적극 공모했나**
이번에 공개된 황우석 교수와 박종혁 연구원 사이의 전화 통화 녹취록은 오히려 이 두 사람이 2004년 논문 조작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을 역으로 시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황 교수팀의 사정을 잘 하는 한 관계자는 "류영준, 이유진 연구원이 미성숙난자로 체세포 핵이식 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문제의 줄기세포를 성립시키자 그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황 교수와 박 연구원이 이들 몰래 2004년 논문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상적인 연구 책임자라면 류 연구원으로부터 받은 줄기세포의 DNA 지문분석 결과가 체세포와 난자를 제공했다는 A(2003년 2월 3일 제공)의 그것과 다르면 이것이 어찌 된 경위인지를 당사자에게 확인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제 이번에 조사위원회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이 줄기세포는 같은 시기에 난자를 제공한 B(2003년 2월 9일 제공)로부터 유래한 것이었기 때문에 꼼꼼한 확인 절차만 거쳤다면 굳이 논문을 조작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
하지만 황 교수는 류 연구원에게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A의 체세포를 이용해 DNA 지문분석 결과를 조작한 뒤 이 줄기세포를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로 '둔갑'시켜 논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조사위에서 증언한 또다른 관계자는 "황 교수 자신을 포함해 연구팀의 어느 연구원도 당시 연구에 사용된 미성숙 난자의 정확한 공여자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번 조사위에서 확인됐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황 교수는 '류 연구원이 사실은 수정란에서 수립된 줄기세포를 갖고 속이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공개된 전화 통화 녹취록에서 두 사람이 12월 말까지 류 연구원이 만든 '처녀생식에 의한 줄기세포'를 '수정란 줄기세포'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은 이런 가능성을 말해준다"면서 "어쩌면 이 두 사람은 류 연구원이 암묵적으로 '조작'에 공모했다고 '착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류영준, "최근까지 줄기세포 실체 믿어…DNA 지문분석 '불일치'에 원인 적극 규명"**
한편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와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류영준 연구원은 황 교수나 박 연구원과 달리 최근까지도 이 줄기세포가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라고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조사위 보고서에 따르면 류 연구원은 줄기세포의 DNA 지문분석 결과가 체세포와 난자를 제공했다는 A의 그것과 다르게 나오자 스스로 당시의 연구과정을 추적해 같은 시기에 난자를 제공한 B로부터 유래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류 연구원의 주장대로 이 줄기세포는 B의 난자로부터 유래한 '처녀생식'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서울대 조사에 참여한 한 조사위원도 "류영준, 이유진 연구원은 이 줄기세포가 체세포 복제 배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소개하며 "그러나 조사위의 DNA 지문분석 결과가 나오자 아주 놀라며 그 원인을 규명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도 바로 이 두 사람"이라고 밝혔다.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두면 류 연구원은 최근까지도 이 줄기세포가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라고 믿었고, 자신의 '믿음'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자 '진실'을 규명하는 동시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셈이다.
황 교수팀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런 정황을 종합해보면 2004년 논문 조작은 연구 성과 조작에 익숙한 황 교수의 실험실 문화와 엉성한 그의 실험실 관리가 빚어낸 하나의 해프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상당한 과학적 가치가 있는 처녀생식 줄기세포를 확립해 놓고도 논문 조작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 황우석 실험실의 분위기는 곧바로 미즈메디병원 줄기세포를 이용한 2005년 논문 조작으로 이어지는 초석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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