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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살아서 살려야 할 생명이 많습니다"

[기고] 한 환경운동가가 지율 스님에게 보내는 편지

지율 스님이 지난 9월부터 시작한 단식을 100일가량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율 스님은 지난 2003년부터 38일, 45일, 58일, 100일 총 241일에 걸쳐 단식을 해왔다. 지난 2월 100일 단식을 끝낸 지 불과 7개월 만에 다시 끝을 알 수 없는 단식을 시작해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12월 초까지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서 단식을 하던 지율스님은 현재 장소를 알리지 않은 채 모처에서 100일가량에 이르도록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2월초 그의 건강상태를 살폈던 의료진은 오랜 단식으로 신장의 기능이 거의 멈춘 상태라는 소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다른 비구니들이 지율 스님의 수발을 들고 있으며, 유일하게 거처를 알고 있는 동생도 '스님의 뜻'이라며 일절 거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율 스님은 평소 "내가 죽어야 천성산이 산다", "이미 마음을 비웠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해왔다. 이제 그는 '극단적 행동'으로 수조 원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지 모르는 국책사업을 막는다는 비난을 의식한 듯 조용히 자신의 '생명'을 천성산으로 대표되는 산천의 스러져가는 '생명'에 대한 속죄양으로 내놓으려 한다.

이런 스님의 단식을 지켜보면서 평소 그가 던진 '생명'에 관한 질문을 깊이 성찰해오던 초록정치연대 우석훈 정책실장(경제학 박사)이 지율스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우 실장은 "〈프레시안〉을 통해 글을 내면 지율스님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주위의 의견을 듣고 어렵게 펜을 들었다"며 "외로운 단식을 진행하는 지율스님의 결심을 번복하는 데 작은 몸짓이라도 보여야 할 것 같아서 글을 썼다"고 밝혔다.

지율 스님은 최근 펴낸 자신의 책 〈초록의 공명〉(삼인, 2005)에 우 실장의 '지율 스님의 질문을 이 사회는 어떻게 이해했을까'라는 글을 포함시켜 그에 대한 신뢰를 내비친 바 있다.

***〈지율 스님께 보내는 생명의 편지〉**

눈이 빗발치는 겨울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단 한번 뵈었던 스님의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예의 그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중입니다.

스님이 일전에 〈녹색평론〉에 두 번째 단식인가를 끝내고 쓰셨던 "피부병 걸린 쥐"라는 질문은 제가 세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천성산의 바로 그 도롱뇽이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건 바로 우리들의 아이가 될 것이고, 언젠가 피부병에 걸린 쥐가 괴로워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아이들이 괴로워하는 시기가 올 것이고, 그게 바로 지금 우리들의 내린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 아닐까 하고 제 어리석은 생각으로 가늠해보게 됩니다.

***지율 스님의 '단식'에서 친구 한열이의 '죽음'을 떠올립니다**

언젠가 법륜 스님이 하셨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게 봅니다.

"천성산이 죽어가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지율이 죽어가는 것은 보이더라…."

지금 제 생각이 딱 그렇습니다. 어디선가 지금쯤 조용히 곡기를 끊고 조금씩 조금씩 숨이 사그러지고 있을 스님을 생각하면서 과연 이 직면한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 제 100m 앞에서 이한열이라는 제 친구가 최루탄에 쓰러졌고, 저는 병상 옆에서 그의 죽음을 맞고 시체를 지켰던 경험이 있습니다. 좋아하고 그리운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기다리는 일은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지난 3년을 다시 돌아봅니다. 생명이라는 말과 평화라는 말을 새로 배운 제 삶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지난 3년 동안 이 사회가 얼마나 생명과 먼 길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삼보일배 행렬의 뒤를 지켜보면서 격렬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2년째 계속되고 있는 도법 스님의 탁발순례, 그리고 지율 스님의 연이은 단식을 보면서, 그리고 제가 감히 '지율 스님의 질문'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스님의 책에 제 부끄러운 글이 실리게 되면서 과연 어리석은 저 자신이라도 스님의 질문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해보게 됩니다.

저는 이제 40을 바라보고 있고, 박사학위를 받고 10년 동안 달려오면서 살아온 제 삶을 반성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의 의미, 그리고 생명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곰곰이 다시 고민하고 있습니다. 반성한다는 것은 언제 해도 늦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의미를 일깨워주신 스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지금도 깊게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문득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스님과 〈프레시안〉이라는 작은 인터넷 매체가 가졌던 인연, 스님과 제가 짧게 가졌던 인연, 그리고 저와 〈프레시안〉과의 또 다른 작은 인연을 생각하면서,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저의 나머지 삶이 또 얼마나 번민에 가득 찰 것인가를 생각하고, 남은 사람들이 갖게 되는 짐의 무게감을 생각하면서 감히 펜을 들어본 것입니다.

***'생명'이라는 말의 무게**

생명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경우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천성산의 도롱뇽이라는 상징적인 하나의 생명과 지율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또 하나의 물리적 생명, 그리고 '지율의 질문'에서 도룡뇽이라는 상징으로 표현된 생명들….

과연 천성산이 뭐간데 생명을 접으려 하시느냐고 말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어렵게 한 말씀 드린다면, 스님이 살아서 살려야 할 생명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온생명"이라는 말을 쓰자만, 천성산도 온생명의 한 부분이고, 더 큰 생명과 더 많은 생명이 아직 스님의 어깨 위에 얹혀 있지 않을까요?

이제 그만 천성산도, 스님을 향해 빗발쳤던 세상의 손가락질도, 야멸치게 몰아치던 동료들의 질타도, 그리고 야속하리만치 매몰차게 죽음으로 향해가는 세상의 거대한 기운도 잠깐 내려놓으시고 생명의 길로 돌아오실 수 있기를, 그런 희망으로 어리석은 제가 자그맣게나마 소리를 울리겠습니다. 스님의 표현대로 그 '초록의 공명' 말씀입니다.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참 진리를 내려놓는 길이 깨달음의 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생명을 위해서, 그리고 스님의 질문에 대한 마지막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서 건강한 예전의 웃음으로 다시 생명을 보듬어안을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돌아서 잠깐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면 답답하고, 또 앞으로 저희가, 그리고 저희 아이들의 세대가 살아야 할 세상이 무섭고 두렵기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6조 혜능이라는 분을 매우 좋아합니다. 평생을 숨어서 설법을 펼치면서 지금 조계종의 뿌리에 해당하는 선종의 기틀을 만드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명의 공명은 아직은 어둡고 음습하고 답답한 길에서 울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욕망과 탐욕, 그리고 '우치(愚癡)'가 하늘 끝까지 울리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생명을 깨달은 스님이 무지한 저희들보다는 먼저 아프고 먼저 괴로우시겠지요.

설령 천성산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온생명 속에 진실한 생명이 서로의 울림을 펼칠 수 있는 생명으로 가는 선각자와 구도자의 길을 가시는 스님이나 저나, 아니면 또 다른 제자들이 언젠가 이 어두운 날들을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스님,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스님,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시고, 저희들과 같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실 수 있기를 어리석은 제가 죽음에 대한 떨리는 무서움을 딛고 희망합니다.

삭풍은 춥지만, 삭풍 뒤에는 새로운 희망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 날이 춥습니다. 어디선가 이 추위에서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떨고 계실 스님을 생각하면서 저도 부끄러움에 온 몸을 떱니다.

2005년 12월 26일 우석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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