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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홍콩 각료회의 폐막…간신히 파국만 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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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홍콩 각료회의 폐막…간신히 파국만 면해

선진국들, 2013년까지 농업분야 수출보조금 폐지키로

18일 세계무역기구(WTO) 홍콩 각료회의가 엿새 간의 일정을 마치고 149개 회원국 전원이 동의 아래 선언문을 채택했다.

***"성공은 아니지만 파국은 면했다"**

난항을 거듭하던 WTO 홍콩 각료회의가 선언문 채택에 극적으로 합의한 것은 미국이 해외 식량원조 용도의 농산품에 대해 지급하는 보조금을 없애지 않는 한 유럽에서도 농업에 대한 수출보조금을 없앨 수 없다고 고집해 온 유럽연합(EU)이 17일 밤 그 간의 입장에서 물러나 보조금 철폐에 동의한 결과였다.

이로써 홍콩 회의는 1999년 샌프란시스코 회의, 2003년 칸쿤 회의에서와 같은 파국은 면했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양 편에서 '마지못해' 합의한 것일 뿐, 내년 12월이 시한으로 설정돼 있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의 시한 내 타결 가능성은 오히려 희박해졌다는 것이 이번 회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체적인 평가다.

파스칼 래미 WTO 사무총장은 "우리는 다시 본궤도에 접어들었다"며 "한달 전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가능해졌다"고 폐막소감을 밝혔다. EU 무역담당 집행의원인 피터 만델슨도 "(이번 회의는) 성공이라 하기에는 충분치 않지만 실패를 막는 데는 충분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홍콩회의는 유럽의 농업시장 개방, 개도국의 공산품시장 개방 등과 같은 핵심 사안들을 비켜갔고, 이로 인해 내년에 계속 진행될 DDA 협상에서는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래미 사무총장은 "DDA 협상의 목표 중 60%밖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홍콩 회의의 미진함을 지적했다.

농산물과 공산품의 관세 및 보조금 삭감 공식을 마련하는 시한은 내년 4월 30일로 정해졌다. 하지만 이 공식의 구체적인 합의를 위한 다음 각료회의를 언제 어디서 열 것인지는 미정이다.

***선진국들은 2013년까지 농업 수출보조금 폐지하기로**

이번 홍콩 각료회의에서 협상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선진국들의 농업 수출보조금 전면폐지 시한은 결국 2013년으로 결정됐다(선언문 6조). 미국, 브라질 등 20개국 그룹(G-20)과 최빈개도국(LDC)들은 2010년을 폐지시한으로 주장해 왔으나 EU가 2013년을 고집해 관철시켰다.

일각에서는 농업 수출보조금 폐지는 지난해 7월에 이미 합의된 사항임에도 그 폐지시한을 정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30~40개 주요국 각료들만 따로 모이는 '그린룸 회의'가 열린 100시간 중 약 20%가 보조금 폐지시한을 정하는 데 쓰였다.

또 보조금 폐지시한만 정해졌을 뿐 이행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한편 개도국들은 식량안보, 생계안보, 농촌개발 등을 기준으로 적절한 수치의 민감품목, 특별품목을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다. 또한 개도국들은 수입량과 발동가격(덤핑조사를 발동시킬 수 있는 기준가격) 등을 기준으로 특별 긴급수입제한조치(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특정 상품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동할 권한도 가지게 되었다(선언문 7조).

미국이 2006년까지 면화에 대한 수출보조금을 전면 폐지하기로 한 것도 주요 진척사항 중 하나다(선언문 11조). 베닌, 차드, 말리 등 서아프리카 최빈국들은 연간 40억 달러로 추산되는 미국의 면화 수출보조금이 자국의 면화 생산자들을 죽이고 있다며 비난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면화 수출보조금 폐지를 언제 시작할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

***비농업과 서비스 분야는 구체적 진척 없어**

농업부문의 협상에서는 비교적 구체적인 진전이 있었지만, 비농업 부문에서는 공산품 수입관세 감축 등에서 이렇다할 진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국은 이미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의 섬유제품에 대한 수입관세는 폐지할 수 없다고 못박은 바 있다.

한편 수산자원 남획을 유발하는 수산업보조금을 폐지하자는 안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금융, 보험, 통신, 법률서비스 등 서비스 분야와 관련해서도 시장개방 및 자유화를 해야 한다는 원칙만 재확인됐을 뿐 구체적인 진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비스 분야에서 개도국들은 현 GATS(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 하에서 개방의 분야와 시기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보유하기를 바라는 반면 선진국은 이런 자율성을 없애고 전면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빈개도국은 2008년까지 '무관세·무쿼터' 특권 획득**

최빈개도국들이 이번 홍콩 각료회의에서 얻은 성과는 '선진국은 2008년까지 최빈국에게 무역특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조항(선언문 47조)이다.

이에 따라 연간 1인당 소득이 750달러 이하인 국가들은 2008년까지는 97% 이상의 수출품에 대해 '무관세·무쿼터'로 선진국 시장에 접근할 권리를 갖게 됐다.

***전세계 반응…대부분 불만족**

미국과 EU 등 선진국들은 이번 회의 결과에 대체적으로 불만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롭 포트먼 무역대표는 "홍콩 협상은 미미한 진전만 이뤘을 뿐"이라면서 EU가 농업시장 개방에 협조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을 내비쳤다. EU의 무역담당 집행위원인 피터 만델슨도 "협상이 핵심 부문에서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 영미권 언론들은 홍콩 회의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는 데 일단 의의를 두면서도 "어려운 협상들은 다 내년으로 미뤄졌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110개국에 달하는 개도국과 최빈국들이 연합해 '새로운 그룹'을 형성함으로써 선진국들로부터 민감품목, 특별품목에 관한 양보를 얻어냈다"며 "이런 협상결과에 대해 선진국들이 불만스러워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편 2013년 농업수출보조금 철폐 시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브라질과 인도 등 주요 농업수출국들은 홍콩회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브라질 외무부 장관 셀소 아모림은 이 선언문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인도 상공부 장관 카말 나쓰도 "회의 결과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쿠바, 베네수엘라, 케냐 등은 브라질과 인도가 각각 농업 시장접근권과 서비스 아웃소싱을 얻어내는 대가로 다른 개도국들을 배신했다며 비난했다. 미국과 WTO 등과 불편한 관계를 가져왔던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회의 종료 5분전까지 금융·통신 등 서비스 관련 조항에서 자국을 빼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WTO 주도의 무역자유화를 반대해온 옥스팜(Oxfam), 남반구포커스(Focus on the Global South) 등 국제 비정부기구들은 선진국들이 겉으로는 농업수출보조금을 폐지한다면서 실제로는 그린박스 규정을 이용해 대부분의 주요 농산물에 보조금을 준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영국의 〈BBC〉 방송도 "EU가 2013년까지 농업수출보조금을 철폐키로 했다지만 이것이 농업보조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가 채 되지 않는다"고 상기시켰다. 〈BBC〉는 최빈 49개국에 부여된 관세면제 혜택도 전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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