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국내에 전격 공개된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교수의 서한은 황우석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을 둘러싼 진위 논란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번 서한은 황 교수의 논문에 대한 피츠버그 의대의 입장이 이미 상당 부분 정리됐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미적거리는 사이에 황 교수 논문에 대한 '검증'이 국외에서 이미 진척되고 있는 것이다.
***'논문 취소' 권고…피츠버그대 사실상 '부정적 결론' 내려**
섀튼 교수가 12일(현지 시간) 〈사이언스〉에 보낸 서한에서 특히 눈여겨 볼 점은 황우석 교수를 비롯한 논문의 다른 공동저자들에게 '논문 취소'를 권고한 사실이다.
이렇게 피츠버그대의 연구정직성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섀튼 교수가 〈사이언스〉 측에 자신의 이름을 공동저자 명단에서 빼줄 것을 요청하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자로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논문 취소'까지 황 교수에게 요청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런 정황은 피츠버그대와 섀튼 교수가 황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대해 사실상 '부정적 결론'을 내린 것을 의미한다. 섀튼 교수는 이런 조치의 배경으로 △논문의 수치·표들을 재검토한 결과 논문의 정확성에 큰 의구심을 갖게 됐고 △실험에 참여했던 누군가로부터 논문의 일정 부분이 조작됐음을 들었다는 사실 등을 제시했다.
섀튼 교수는 황 교수 논문의 '결정적 문제'를 발견하고 김선종 연구원을 비롯한 황우석 교수팀 연구원들의 증언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내용은 연구정직성위원회에 그대로 즉각 보고됐고, 피츠버그대 차원에서 대책회의를 한 결과물이 바로 섀튼 교수가 이번에 〈사이언스〉에 보낸 서한인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피츠버그대는 황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대해 잠정적으로 '부정적' 결론을 내렸고, 현재의 상황에서 섀튼 교수를 보호하고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 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사이언스〉엔 아직 제대로 정보제공 안돼…美줄기세포 연구계 눈치도 봐**
그렇다면 〈사이언스〉는 왜 이런 섀튼 교수의 요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까?
피츠버그대 측에 확인한 결과, 〈사이언스〉에는 섀튼 교수의 서한 외에 연구정직성위원회에서 확보한 별도의 증거들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섀튼 교수의 서한 외에는 '판단의 근거'가 될 만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사이언스〉로서는 표지 논문으로 게재한 황 교수의 2005년 논문을 보호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사이언스〉가 피츠버그대와 섀튼 교수의 주장을 수긍하는 순간 이는 자신의 논문심사 과정에 큰 문제가 있었음을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더 미묘한 문제도 있다. 현재 미국은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찬반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문제점이 발견되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줄기세포 연구자들에게는 큰 악재다. 기본적으로 이들과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는 〈사이언스〉 입장에서는 일단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문제가 없다'는 것을 믿고 싶고, 가능하다면 그를 보호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호' 역시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피츠버그대가 정식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경우 〈사이언스〉 역시 황 교수를 마냥 보호할 수만은 없다. 계속 황 교수를 보호하다가는 이미 훼손될 대로 훼손된 〈사이언스〉의 권위가 나락으로 추락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섀튼은 '살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어…황우석 교수팀 '순진하다'**
물론 국내 일부 언론들이 줄기차게 지적하는 것처럼 섀튼 교수의 행보에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주목 받을 만한 논문의 '교신 저자'를 선뜻 수긍해놓고서 이제 와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그의 처신은 특히 우리 입장에서는 얄밉기 짝이 없다.
하지만 바로 이런 섀튼 교수의 행보야말로 역설적으로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방증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황 교수와의 협력은 섀튼 교수에게도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만약 '사소한 문제'였다면 섀튼 교수 역시 황 교수와의 협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그는 이번 사안을 자신의 연구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으로 받아들였고, 지금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섀튼 교수의 처신과 비교하면 황우석 교수를 비롯한 국내 연구자들은 '순진'하기 짝이 없다. 〈프레시안〉이 확인한 결과, 황우석 교수팀 내에서도 현재 〈사이언스〉 2005년 논문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인지했고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황 교수는 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없어…황우석 교수가 모든 것 밝혀야**
이미 피츠버그대가 사실상 검증에 들어가 '부정적 결론'을 내린 정황이 드러난 이상 이제는 시간이 없다. 수개월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대의 자체 조사 결과를 기다릴 시간도 없다. 이미 세계 각국의 언론과 과학계가 이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황우석 교수와 국내 과학계가 공동으로 만신창이가 된 다음에야 나설 것인가? 더 늦기 전에 황우석 교수 본인이 직접 모든 의혹을 밝혀야 한다. 더 이상 침묵하다가는 황 교수와 우리 과학계가 함께 공멸할 수 있다.
지금 황 교수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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