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집회를 방해하면 강력히 대응한다고 했다던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시위를 한다는 원칙을 지킬 것이다. 다른 나라의 단체들과 연대하는 것 자체가 가장 강력한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네들은 왜 시위의 폭력화 가능성에만 관심을 갖나."
"한국 투쟁단은 전부터 폭력시위를 해온 사람들인데, 우리가 어떻게 다른 데 관심을 갖겠는가?"
"그것은 그만큼 한국 농민들의 처지가 절박하고 분노가 커서 그렇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시위는 한국에서와는 다를 것이다. '합법적', '평화적'이라는 우리의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자살을 비롯한 극단적인 의사표현 계획도 있나?"
"그렇지 않다. 홍콩 언론이 오히려 그런 행동을 주문하고 부추기는 것 같다."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개막을 하루 앞둔 12일 오전 홍콩 빅토리아 파크의 밴드스탠드에서 홍콩 현지 언론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가진 'WTO 각료회의 저지를 위한 한국민중투쟁단' 사람들은 시위의 수위에 대한 홍콩 언론의 '집요한' 관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홍콩 정부와 언론, '한국 농민들의 시위'에 예민"**
〈로이터〉, 〈아사히신문〉, 〈AP〉, 〈블룸버그〉 등 외신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익스프레스 위클리〉, 〈애플데일리〉, 〈오리엔탈 프레스그룹〉, 〈넥스트 매거진〉, 〈포닉스 위성 TV〉 등 홍콩 언론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투쟁단에 "경찰에 집회신고는 제대로 했는지", "집회와 시위에 대한 허락은 명확하게 받았는지", "폐막일로 갈수록 투쟁강도를 높인다는 말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기자회견에서 양경규 민주노총 공공연맹 위원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곳 언론과 정부가 훨씬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며 "시위도 그 사회의 문화와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 만큼 이번에 우리는 최대한 평화적인 시위를 할 것"이라고 거듭 답변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양 위원장은 "그러나 홍콩 경찰의 태도에 따라 우리의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고 분명히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주제준 투쟁단 상황실장은 참가단원들에게 "한국에선 경찰과 밀고 당기고 하는 몸싸움이 보통이지만 여기선 그렇지 않으니 유념해달라"며 "홍콩 언론이 자꾸 '제2의 이경해 사건이 난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할 거냐'는 등 유도성 질문을 던지니 주의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예약했던 호텔의 갑작스런 '숙박 거부'로 당황**
한편 130여 명의 민주노총 참가단은 11일 오후 홍콩에 도착했으나 사전에 예약한 메트로폴 호텔(Metropole hotel) 측이 갑작스럽게 방을 내주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급히 전농의 숙소로 옮기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호텔 측은 표면적으로 '공사 중'이라는 이유로 댔지만 사실은 홍콩 경찰의 압력 때문일 것"이라며 "다른 호텔을 잡아주지도 않고 갑자기 예약을 취소하면서도 홍콩 상법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니 황당할 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밤 11경에는 한국 참가단과 함께 인천 발 아시아나항공 편으로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한 영국인 기 테일러(Guy Taylor) 씨가 '반세계화 시위 경력'을 이유로 홍콩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걸려 1시간 반 동안 신문을 받은 뒤 풀려나는 일도 벌어졌다.
강병기 민주노동당 농민위원회장은 "홍콩 언론들의 질문 내용을 보면 우리에 대한 홍콩 정부와 언론의 조바심과 우려를 알 수 있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나 조희연 교수(성공회대)는 홍콩의 언론과 경찰이 두려워 하는 한국 농민들이 900여 명이나 이번 홍콩 반세계화 시위에 참여한 것을 높게 평가했다. 조 교수는 "이번 홍콩 투쟁은 한국 농민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점에서 칸쿤이나 시애틀에서 열린 WTO 반대시위, 또는 브라질이나 인도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과 다르다"며 "한국 정부 대표단이 아닌 한국 농민들의 현장 목소리가 그대로 WTO 각료회의장에 전달된다는 점에서 이번 투쟁의 의미는 각별하다"고 말했다.
한국민중투쟁단은 WTO 각료회의 개막일(13일)에 빅토리아 공원에서 비아 캄페시나 등 다른 나라 시민단체들과 함께 대규모 집회를 열고 시위행진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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