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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휴식'이 같은 건가요? 다른 건가요?

미술 형식의 인권보고서 "그 속에 내가 눕다"

실업자 87만 명, 청년실업자 33만6000명, 비정규직 870만 명, 이주노동자 40만 명….

청와대는 지난 5일 '고용·직업훈련 전문가'를 노동비서관에 임명해 일자리 창출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런가 하면 우리 사회의 다른 일각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여의도의 겨울 칼바람 속에서 비정규직법안의 국회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도 노동권을 인정해달라며 명동성당 앞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어딘가에 고용되어 일정한 보수를 받는 것이 특권이 되어버린 오늘의 현실에서 '일하고 쉴 권리는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모두의 인권'이라고 호소하는 사진, 비디오, 그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새사회연대(대표 이창수)가 주최하고 인권단체연석회의,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후원하는 〈제2회 오늘의 인권전 "그 속에 내가 눕다"〉가 바로 그것.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 제57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 전시회는 서울 조흥갤러리에서 6일부터 12일까지 계속된다. 참여 작가는 강홍구, 박용석, 박병상, 손성진, 양철모, 이원·김선주, 이제, 인효진, 임흥순, Area Park(박진영) 등 모두 11명이다.

(사진1) 전시회포스터

***그 속에 그냥 누워 있으라고?…함께 깨어 일어나자!**

전시회 주제 "그 속에 내가 눕다"에는 일차적으로 자본주의 생산 체제에서 노동권을 빼앗긴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실업자, 노숙자 등의 고단한 현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전시회장에 노동권을 주장하며 시위하는 종래의 '익숙한' 장면들이 작품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손성진 작가는 '계약직 근로자 손씨'라는 회화 작품을 통해 아주 낯설게 타자화된 한 인물을 보여준다. 언뜻 보면 언제든 길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지만 강렬한 붉은 색 배경 앞에 그를 배치해 낯선 표정을 극도로 부각시키고 있다. 손 씨는 이 '평범함'과 '낯섬' 사이의 미묘한 대립을 통해 "당신도 이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말하자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이분법을 극복하자'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낸 양철모 작가는 방글라데시인 마붑과 한국인 매닉의 '파트너십 파티' 사진을 제시하며 '우리도 이렇게 좀 하자'고 유쾌하게 주문한다.

'남과 다른 것'에 대해 유독 배타적인 한국사회에서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냥 거기 누워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들의 애정이 여러 작품들에 녹아 있다.

(사진2-1) 손성진 '계약직 근로자 손씨'
(사진2-2) 양철모 '파트너쉽파티'

***'일하지 않을 권리'도 인권**

하지만 '그 속에 그냥 누워 있는 것'은 노동권을 박탈당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하는 젊은이,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없는 중년, 퇴직 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종묘공원을 찾아야 하는 노인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강홍구 씨의 '그린벨트-공터', 박병상의 'Untitled #1 from the Series Old People', 박용성의 '경동빌딩 옥상' 등 여러 전시품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듯 보인다.

특히, 박병상 씨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경제개발로 이어지는 굴곡의 근대사 속에서 '노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노인들이 어떻게 종묘공원에서 자신들만의 놀이문화를 만들어내는지에 주목해 눈길을 끈다.

전시회를 주최한 '새사회연대'의 이창수 대표는 "사람들은 주로 '일자리를 가질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권리,' '선택하지 않은 일은 안 할 권리,' '쉴 권리', '놀 권리'도 우리 모두가 향유해야 할 인권"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평생 일하지 않는 삶을 선택할 권리'도 인권이라고 주장한다. '일할 권리' 만큼 '일하지 않을 권리'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진3) 박병상 ''Untitled #1' from the Series Old People'

***"휴식은 노동재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렇듯 '일'과 '휴식'이라는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모티프들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두고 이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휴식은 노동재생산을 위한 것'이라는 기업 중심의 자본주의 논리를 경계해야 한다. 휴식은 휴식 자체로서 가치를 갖는 인권'이 아니겠냐."

그런 점에서 그는 7일 노동부가 밝힌 '저소득 근로자 문화·여가비 지원책'에 대해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정책은 저소득 근로자가 민간이 운영하는 문화·체육·숙박시설을 이용할 경우 그 비용의 80%를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정책의 성패 여부를 떠나 '문화·여가'를 노동자의 권리로 인정하고 이를 정책화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것이다.

(사진4) '평생 놀고 먹을 권리'를 주장하는 이창수 대표.
(사진5) 전시장을 찾은 조영황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인권단체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러한 행사를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시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www.hrart.net/에 나와 있다. 문의전화는 02-925-0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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