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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위기'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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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위기' 대처법

[시론]최근의 '난자 논란'에서 배워야 할 교훈

황우석 교수팀의 난자 문제와 관련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우려와 분노는 상상 외로 큰 듯하다. <프레시안>, MBC 등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해 온 언론매체에는 "황 교수의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 정도 윤리 문제로 발목을 잡으려 하느냐"는 항의성 댓글이 빗발친다.

특히 심각하게 제기되는 것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려다. 며칠 전 TV 토론에서 토론 참석자들이 난자 의혹 관련 문제를 제기하자, 한 종합일간지 의학 담당기자 겸 논설위원은 즉각 "교각살우의 가능성"을 거론하며 반박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교각살우.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게 되는 어리석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황 교수팀의 연구윤리 관련 문제를 제기하고 진상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 과연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일일까? 이번 사태의 성격을 제대로 읽고 올바른 대처방향을 찾으려면 먼저 이 문제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에게 '황우석'은 어떤 의미인가**

황우석 교수란 존재 그리고 그 팀의 연구 업적을 소에 비유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적절해 보인다. 우선 황우석 교수와 소는 아주 깊은 인연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소는 나의 운명"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도 누런 소 즉 '황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수의학과를 택하게 된 것도 소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복제에 성공한 동물도 소였다. 1999년 2월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키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는 과학자로 떠올랐다.

전통적으로 우리 농촌에서 소가 점하는 위상은 우리 국민들에게 황 교수팀의 존재가 어느 정도인지 잘 말해준다. 그의 공로로 한국의 생명과학은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섰고 연구결과가 향후 산업화됐을 때 얻어지는 경제적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없는 집에 소 들어온 격이다.

정신적 측면의 의미는 더 크다. 과학 분야에서도 이제 우리가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으며 국민들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주었다. 태극전사들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낸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는 희망의 등불이다. '황우석'이란 단어에는 이미 그들의 비원(悲願)이 짙게 스며 있다.

***윤리 문제 제기는 쇠뿔 아닌 외양간 고치려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황 교수팀의 난자 입수경로와 관련 국내외에서 윤리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문제가 과연 소의 뿔을 바로잡는 정도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뿔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소의 생존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위다. 거추장스러우면 잘라내기도 한다. 하지만 연구윤리는 다르다. 거북해도 잘라낼 수 없다. 연구자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중요한 수범인 것이다. 연구윤리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뿔을 바로잡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연구의 기본을 문제 삼는 것이다. 연구윤리상 하자가 있는 연구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고 그런 논문은 권위 있는 학술지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다. 결국 교각살우란 말로 근래 제기돼 온 윤리 문제를 적당히 덮고 지나갈 순 없다는 얘기다.

굳이 소와 연관해 비유한다면 연구윤리는 뿔이 아니라 외양간 같은 것이다. 외양간은 소를 가둬놓고 안전하게 키우는 공간이다. 연구윤리라는 게 그렇다. 과학연구라는 소를 일정한 틀 안에서 안전 관리하는 장치다. 연구자가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연구 관련자들에게 혹시 미칠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특히 황 교수팀의 연구 분야는 생명과 인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연구 대상자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자못 심각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분야보다 규제가 훨씬 까다롭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싶을 정도로 심하게 까다롭다. 꼭 필요한 사항만이 아니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사전에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한 예가 연구원의 난자 기증 문제다. 정말 순수한 동기로 100% 자발적으로 자신의 난자를 기증하고자 하는 연구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허용할 경우 이후 원치 않는 다른 연구원에게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그런 부담 때문에 연구원으로 참여할 자격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 참여를 포기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내부 관계자의 실험대상 참여를 금지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엄밀하게 규제해야만 편의주의로 인한 폐해 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연구윤리는 이미 국제사회의 보편적 룰로 자리 잡았다. 나라별 상황 차이와 문화적 특수성을 내세워 피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선진국일수록 내외에 적용하는 윤리 규정이 까다롭고 엄격하다는 정도다. 이번 일로 국내에서 연구윤리 문제가 본격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우리의 과학수준이나 사회의식이 발전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황 교수팀의 윤리 관련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외양간이 허술함을 알려 더 늦기 전에 고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안에 있는 소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당장은 황 교수 연구에 타격이 있을 수 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장의 피해가 두려워 언론, 전문가, 국가기관 등 아무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국제 학계에서 한국은 외양간(윤리 규제 시스템)이 부실한 나라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러면 한국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는 일단 의심부터 사게 되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힘들게 된다. 심하면 국제 과학계로부터 고립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잃게 되는 국익은 당장 황 교수 연구에 미치는 타격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진다.

***허술한 윤리 규제 시스템이 이번 사태 핵심**

연구자라면 누구나 갑갑한 외양간에서 벗어나 좀 더 편한 길로 빨리 성과를 내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때로 아주 힘들 땐 그런 유혹과 타협하기도 하는 게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연구윤리 준수 여부를 심의ㆍ감독하는 규제기관의 역할이다. 심의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면 연구자는 논문 제출 등에 필요한 심의 확인서를 받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윤리규정을 준수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의 초점은 황 교수 등 연구자들의 자세가 아니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우리 사회의 윤리 규제 시스템에 맞춰지는 게 옳다. 대학, 기관윤리위원회(IRB) 등 심의 감독 기관이 평소 제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미연에 막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1월 17일자 <네이처>가 사설로 "한국의 규제기관이여, 제발 일어나라"(Will the Regulator Please Stand Up)고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은 명백히 위기다. 한국의 생명과학이 앞으로 세계적 입지를 굳히려면 지금의 윤리 위기, 신뢰성 위기를 확실하게 극복해야 한다. 특히 줄기세포 연구는 각 나라마다 허용 여부를 둘러싼 생명윤리 차원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사안이다. 난치병 환자들이 희구하는 대로 이 분야 연구가 계속돼 그 성과가 나타나려면 대중적 지지, 그리고 국제 공조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당면한 연구윤리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는 일이 필수적이다.

연구 책임자로서 황우석 교수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한 사람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 대학, 정부 등 이번 문제에 책임 있는 기관이 나서서 진상 조사, 책임 소재 규명, 심의 관리 시스템 정비 등 세계 과학계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분명한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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