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다.
농촌에 살면서 한겨울에도 약초 캐어서 내다 파는 가난한 할머니보다 내 마음을 더 을씨년스럽게 하는 것은 도심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몇 푼이라도 있어야 얼어 죽지 않고, 굶어 죽지 않는다.
시골에서는 돈이 없어도 군불을 지필 수 있는 나무를 구할 수 있고, 얼어붙은 겨울 밭이라 할지라도 캐어낼 수 있는 먹을거리가 있다. 그래서 도시빈곤층의 삶이 더욱 을씨년스럽게 다가온다." (2005년 1월 15일)
귀농을 생각하면서 농촌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때 일기입니다. 귀농이란 농을 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작금의 한국농업의 현실에서는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당장은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최소한 3~4년의 전력 투구 기간이 지난 뒤에도 겨우 농사를 통해 먹고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지요.
설혹 빈집과 땅을 빌린다 하여도 최소 3년 정도는 쌓아둔 돈이 없다면 다른 품을 팔아서라도 생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작금의 '귀농'이란 집을 짓고 땅을 사고, 몇 년을 견딜 수 있는 적지 않은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일용노동자든 식당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도시 언저리에서 사는 것이 차라리 나은지도 모릅니다.
"넌 절대 나처럼 살지 말거라. 농사꾼에게 시집가지 말고 편하게 살아야 한다." 예전에 농사를 하던 엄마들은 자신의 딸에게 신신당부를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말한 엄마의 마음은 가난한 농사꾼의 아낙네로 산다는 것이 힘겨웠던 것이지요.
그렇게 도시 삶을 시작했던 사람들, 그렇게 도망 나온 빈곤은 여전히 세대적 빈곤의 되물림으로 혹은 신용불량자로 '빈곤의 족쇄'에 갇혔습니다. 이들은 그나마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제도를 알고 '근로 능력이 있는 자'로 소위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한시적이든 지속적이든 '농사꾼'이 되어야 했습니다.
내가 맡고 있는 영농사업단은 수도권 지역으로 경기도 시흥시에 있습니다. 전국을 통틀어도 여기 영농사업단 같은 곳이 없을 겁니다. 구성원이 30~50대의 여성들입니다. 대체로 여성 가장들입니다. 저의 팀원 중에서 농사일에 일품을 팔았던 30대 중반의 여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농사의 경험이 없는 이들입니다. 물론 팀장인 저조차도 농사의 경험이 없습니다. 생태운동이니 농업정책이니 하는 이론적 경험 외에는 흙을 만져본 경험이 없습니다.
도농복합지역이라 하지만 아파트 단지를 옆에 두고 저까지 포함하여 11명의 여성들이 집단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을 보고 주위사람들은 '이상한 나라'를 보듯이 합니다. 더더욱 삐뚤삐뚤한 밭고랑들에다가 친환경을 한답시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치지 않는 것을 보고 '힐끗힐끗한 눈'으로 농장 옆을 지나갑니다. 주거만 같이 하지 않은 '집단 농장'입니다. 팀원 각각 과거의 경력이 무엇이든 지금은 생활수급자들이고 농장은 이들의 일터입니다.
"어이구, 내가 농사를 지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소똥? 그렇게 찰진 것 세상에 처음이에요. 이제 똥이니 벌레니 익숙해요."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나 분무기를 짊어지고 액비를 뿌리는 일을 할 때나 삽과 곡괭이를 들고 딱딱한 땅을 일구고, 20kg이 넘는 퇴비 자루를 들고 나르는 일을 할 때는 에어컨이 설치된 빌딩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제일 부러운 것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영농사업단에 참여한 지 한 해가 되어가는 이들, 이들은 이제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농사꾼'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합니다. 농업 생산의 어려움을 알고, 작은 수확량이지만 노동의 기쁨을 누려보고, 친환경농업이 자신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섬기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라는 것을 체득해가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그녀들은 3~4년 후에는 경제적 자립의 '영농 공동체'만이 아니라 농의 가치를 실현하는 삶을 스스로 실현해낼 것이라 확신합니다.
경제적 자립을 조건으로 시작한 영농사업단, 3~4년 동안은 농사의 초보자들이지만 농으로부터 경제적 자립을 하기 위해 모든 실험을 다 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른 이들의 귀농과 다릅니다. 비록 제도적으로 정해진 최저 생계비를 받지만 입에 풀칠은 하면서 도시에서 귀농에 필요한 가능한 모든 것을 훈련받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주어지지 않은 자기 계발의 기회가 여기서 제공될 것입니다. 영농사업을 하려면 경리도 필요합니다. 경리 업무를 보고 회사를 만들 수 있는 회계도 배웁니다. 유통의 흐름도 알고, 현재 농업 관련 유통시장의 문제점을 알고 창의적으로 대안을 마련해나가는 일을 할 것입니다. 설득의 기술도 배울 것입니다. 우직한 농사꾼으로만이 아니라 '농경영체'에 필요한 모든 업무를 훈련받습니다.
이들은 '농'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농'으로부터 삶의 가치도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상품시장의 문제를 바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알지 못한 상품이라는 것의 이면들을 속속히 알게 되면서 소비중심의 도시생활에서 자급자족의 검박한 생활을 체득하게 나가며, 이들의 자녀들에게 그렇게 학습효과를 전해줄 겁니다.
도시의 빈민들, 이들이 모인 자활영농사업단은 더없이 소중한 농업 인력입니다. 이들은 농을 통해 자기계발만이 아니라 농업경영체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특히 시흥 이곳의 여성들은 농사란 남녀가 함께 하는 것이라는 틀을 깨고 여성들이 집단화되어 여성농업인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제가 어쩌면 꿈을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 꿈은 나만의 꿈만이 아니라 저의 팀원들의 소망입니다. 3~4년 뒤에 다시 일거리를 찾아다니고, 신세타령만 하는 여성으로 있고 싶지 않습니다. 이들은 '농'을 통해 자기 계발과 집단, 조직생활을 배우고, 한편으로는 농업 경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 모두 농업 생산을 배우고 그 다음에 각자의 잠재 능력들을 농에 기초한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농사만 짓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전념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김치를 만드는 일을 할 것입니다. 올 겨울에는 생리대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해보기도 할 것이며, 천연염색도 배울 것입니다. 더 안정적인 토지가 마련되면 농막도 직접 만들 것입니다. 관수시설을 직접 했는데 그것인들 못하겠습니까?
이들은 삶의 가치를 농(農)으로부터 배울 것이며, 새로운 전환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발 농사꾼한테 시집가지 말거라. 너만은 고생하지 말거라." 이전에 우리 어머니들의 고통스런 말을 이제는 아이들에게 행복한 표정으로 전해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도 밭에서 일할 때 최고 행복하단다." 실제로 여기 모인 팀원들은 밭에서 일할 때가 가장 편하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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