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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전략, 한국이 '뻥축구'를 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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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전략, 한국이 '뻥축구'를 하게 하라

[프레시안 스포츠] 동독 스파이가 '오토 대제'에게 준 선물

60년대 '카테나치오(빗장수비)'의 위력을 전 세계에 알린 이탈리아 인테르나치오날레의 감독 엘레니오 에레라. 극단적 수비와 효과적인 역습으로 유럽 무대를 휩쓴 그는 '1-0 감독'으로 정평이 났다. 이탈리아 언론은 그의 축구를 '이탈리아식 축구'로 칭송했다.

한국과 남아공 월드컵 첫 경기에서 맞붙는 그리스 오토 레하겔 감독의 축구철학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독일 베르더 브레멘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을 때만 해도 공격축구를 지향했지만 그리스로 온 뒤로는 실용적인 '선수비 후역습' 전략으로 전환했다. 그리스 축구의 인적 자원으로는 이 전략만이 통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레하겔은 이 방식으로 2004년 그리스를 유럽축구 정상에 올려 놓았다. 그리스는 그를 '오토 대제'로 부르기 시작했다.

벨라루스 전에서 나온 '뻥축구'

레하겔 감독은 5월 30일 한국과 벨라루스의 경기를 직접 지켜봤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헤딩능력이 뛰어난 귀중한 중앙 수비수 곽태휘를 잃었다. 그는 무릎인대 파열로 4주 진단을 받아 월드컵에서 뛸 수 없게 됐다.

곽태휘를 잃은 것만큼 아쉬운 점은 한국이 중요한 약점을 칠순을 넘긴 노회한 레하겔 감독에게 노출했다 것이다. 이날 한국의 부진은 궃은 날씨와 긴 잔디, 그리고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몸이 무거웠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자주 '뻥축구'를 했다는 게 그 주원인이었다.

왜 한국은 '뻥축구'를 해야 했을까? 한국 축구는 개인기가 없어서 또는 박지성과 이청용의 돌파가 잘 안 돼서 등의 답변도 일리는 있지만 핵심은 '중앙 무력화'에 있었다.

기성용, 신형민은 벨라루스의 압박에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중원에서 뭔가 기회를 만드는 동작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자연스레 한국 수비수들은 중원으로 공을 패스할 수가 없었다. 패스 성공률이 떨어지는 롱 킥이 자주 나오는 이유다. 공중볼 경쟁에서 신장이 좋은 벨라루스 수비진을 따돌리고 좋은 기회를 잡을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았다. 마치 2006년 독일 월드컵 때의 안 좋은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 오스트리아 쿠프슈타인 슈타디온에서 30일 열린 한국 대 벨라루스의 평가전에서 1대0으로 패한 한국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빠져 나가고 있다. ⓒ뉴시스

독일 월드컵 '뻥축구'와 조재진의 머리

4년 전 한국은 독일 월드컵에서 상당히 운이 좋았다. 적어도 스위스 경기 이전 까지는 그랬다. 경기내용에 비해서 토고, 프랑스와의 경기결과가 좋았다. 독일 월드컵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선수 한 명을 꼽으라면 골은 못 넣었지만 조재진을 꼽고 싶다.

한국은 스트라이커 조재진의 머리에 매우 많이 의존했었다. 당시 한국은 중원에서 볼을 돌리기가 힘들었다. 자주 흐름이 끊겼다. 김남일, 이호는 안간힘을 다했지만 중원 싸움에서 졌다. '두 대의 진공청소기'라는 별칭의 두 선수들은 상대를 제대로 압박 못 했고,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도 할 수 없었다. 전기코드가 빠진 진공청소기나 다름없었다.

수비수들의 옵션은 직접 드리블과 롱킥 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조재진은 상당히 많은 롱킥을 받아주는 역할을 해야 했다. 대회 기간 중, 한 영국 언론이 조재진을 '정통 잉글랜드 스타일의 스트라이커'라고 평가한 것도 이런 그의 활약이 바탕이 됐다. 그의 머리는 프랑스 경기에서 박지성의 동점골을 도왔다.

동독 스파이가 오토 대제에게 보여 준 '무언의 조언'

벨라루스의 베른트 슈탕게 감독은 현대사의 격동과 함께 했던 재미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한때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를 위해 일했었다. 주로 축구 선수들의 자본주의적 이적행위를 밀고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는 2002년 이라크 축구의 사령탑으로 부임했고, 전운이 감돌던 이라크로 용감하게 향했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직전에 안전상의 문제로 이라크를 떠났다. 하지만 그가 만든 이라크 축구가 올림픽 4강에 올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슈탕게 감독은 한국과의 평가전이 끝난 뒤 "한국은 날카롭지 못했다. 월드컵이 얼마나 힘든지 알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단순한 얘기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수비수 곽태휘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더 아픈 건 그와 벨라루스가 그리스 레하겔 감독에게 준 '무언의 조언'이다.

강한 압박으로 중원을 고립시켜라. 그러면 한국은 '뻥축구'를 할 수 밖에 없고 제공권이 강한 그리스는 유리한 경기를 할 수 있다. 장신 선수를 총동원해 코너킥이나 프리킥 상황에서 골만 넣을 수 있다면 한국을 잡을 수 있다. 그리스가 선제골만 넣으면 잠그는 축구는 자신있다.

레하겔 감독의 머리 속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리스는 힘으로 거칠게 한국을 밀어붙이겠다는 기본 전략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 26일 그리스와 북한의 평가전을 통해 그리스의 약점은 느린 수비수에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제 한국과 그리스는 피장파장이다. 그래서 더 승부가 재미있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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