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사장님!
이제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것이 가을의 느낌이 완연합니다. 오늘은 기업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인 회의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회의는 의사결정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는 경영의 과정에서 사내의 의견을 수렴하고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업무입니다. 따라서 회의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능력은 최고경영자는 물론 각급 간부들이 갖춰야 할 필수적인 경영자질입니다.
회의에서 그 조직의 문화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우리 기업들의 경영 현장을 들여다보면 잘못된 회의관행이나 소모적인 회의방식이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회의문화의 예로, 우선 우리 기업에는 불필요한 회의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 기업의 회의는 최고경영자의 의사 전달을 위해 소집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런 회의일수록 회의시간은 길지만 발언자는 적고 사전준비는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최고경영자의 일방적인 의사전달이야 굳이 회의의 형식을 빌려 참석자를 지루하게 하지 않더라도 요즘은 이메일로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습니다.
최고경영자가 처음부터 발언권을 쥐고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끝없이 이야기하고, 자신의 의견을 합리화하기 위해 참석자들을 질책하거나 토의도 없이 단선적인 지시로 끝나는 회의는 회의라고 할 수도 없고, 굳이 바쁜 사람들을 소집해서 진행할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참석자들이 발언하지 않는 회의는 이미 회의의 제 구실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참석자들이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참석하는 회의도 제 기능을 다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회의일수록 시간만 많이 들고 결론은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은 법이지요. 준비 없이 온 참석자들에게서 어떻게 심도 있는 토의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의제가 모호한 회의나 참석자가 많은 회의도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회의의 전형입니다. 의제가 모호하면 논의의 초점이 모아지지 않고 중언부언하게 되어 결론 내기가 어렵고, 참석자가 많은 경우엔 분위기가 산만해서 의견교환이 어려우며 의견개진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없어 회의가 목적하는 바를 달성하기 어렵게 됩니다.
회의를 위한 회의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상당수 기업의 정례회의는 많은 경우 주요 안건이 없어서 실상은 차 마시는 모임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요 사안은 사장님이 이미 결론을 내린 뒤라 추인하는 회의가 되거나 뒤치다꺼리를 위한 회의가 되는 경우도 빈번하죠. 장시간의 회의 끝에 내린 결정이 실행되지 않거나 사장님의 말 한마디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계획 자체가 아예 바뀌어 맥 빠지게 되는 경우도 우리 기업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회의(會議)는 회의(懷疑)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다 나올 정도이고 우리 기업의 구성원 중에는 회의에 대해 냉소적일뿐 아니라 아예 회의를 기피하거나 불신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일이 지금 이 시간에 사장님의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 회의를 할 수 있을까요. 그 열쇠는 회의를 주재하는 최고경영자 스스로가 쥐고 있습니다. CEO가 회의의 원칙을 정하고 그 룰을 철저하게 지켜나갈 때 그 기업에 바람직한 회의문화가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소기의 목적을 다 하는 회의가 되려면 다음과 같은 점들에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 회의의 빈도를 줄여야 합니다. 회의를 하고자 할 때 소집자는 그 회의가 꼭 필요한 것인지를 자문자답해봐야 합니다. 회의 이외의 방법, 예를 들어 이메일이라든지 전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회의를 소집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둘째, 회의하는 시간도 줄여야 합니다. 오래 논의한다고 해서 꼭 훌륭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전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결론은 짧은 시간에도 낼 수 있는 법입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바둑의 격언은 이런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저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55분이 이상적인 회의시간의 상한선이라 했고, 도요타자동차는 한 시간 안에 회의를 마칠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혼다는 사규에 회의시간을 두 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람직한 회의는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논의를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내에 결론을 내는 것입니다.
셋째,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의 숫자를 줄여야 합니다. 회의 참석자는 그 안건에 직접 관련이 있거나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으로 제한해야 합니다. 비관련자나 비전문가가 참석할 때 회의는 소모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회의에 참석하는 최대 인원은 다섯 명 정도가 적당하며, 부득이 많아지더라도 열 명은 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 회의안건은 참석자에게 관련 자료와 함께 미리 통보하여 충분히 검토하고 생각하게 하여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의견제시가 필요한 사항까지도 명확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회의가 진정한 의견수렴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다섯째, 회의 참석자는 전원이 반드시 발언하도록 하여야 하며 최고경영자는 가능한 한 말을 아껴야 합니다. 최고경영자는 말을 하더라도 참석자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한 뒤 최종 결론을 내릴 때 해야 하며, 서두에는 의견개진을 촉구하고 격려하는 발언 외에는 말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최고경영자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하면 다른 참석자들은 발언을 자제하게 되고, 특히 최고경영자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입을 닫게 됩니다.
여섯째, 회의 분위기는 격의가 없어야 합니다. 회의에서의 발언은 직급과 연령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오히려 젊고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 먼저 발언하게 하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일곱째, 결론은 반드시 도출되어야 합니다. 결론 없이 회의가 끝나서는 안 됩니다.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회의 주재자의 책임입니다.
여덟째, 회의의 결정사항은 공유되어야 합니다. 회의결과는 즉각 그 업무와 관계되는 사람들에게 자세한 배경설명과 함께 통보되어야 합니다.
아홉째, 회의의 결과는 반드시 업무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 실행이 안 되면 참석자들은 회의 자체를 불신하게 되고, 나아가서 그 회의를 주재한 최고경영자를 불신하게 됩니다.
열 번째, 회의의 결정사항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번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회의에서 결론이 난 사안을 최고경영자가 독단적으로 뒤집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열한 번째,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의 실행 결과는 관련자들에게 반드시 피드백되어야 하며, 그들로부터 공정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끝으로 열한 번째, 회의는 정시에 시작되어야 하고 중간에 이석자가 있어서도 안 됩니다. 많은 경우 최고경영자가 바쁘다거나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늦게 참석하고 일찍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회의 분위기 유지는 물론 회의도 비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경영자가 지각하거나 일찍 자리를 비워도 될 회의라면 아예 회의 자체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것이 얻고 잃을 것을 생각할 때 차라리 나은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최고경영자 스스로가 이러한 원칙을 지켜나갈 때 우리 기업에도 생산적인 회의문화가 정착 될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문화는 우리 기업을 명실공히 글로벌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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