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흑적 대연정'의 발표가 있은 후 독일 정가는 현재 구체적인 조각작업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일단 총리직 및 핵심 각료직들을 둘러싸고 두 당 간의 분배원칙이 확정되었고, 현재는 신정부의 각료진에 합류할 구체적인 인물들이 한 사람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필자가 느끼는 인상적인 점 한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신정부는 지난 '적녹 연정' 2기(2002~2005) 때 기존의 경제부와 노동부를 통합해 신설된 '경제노동부'를 다시 '경제부'와 '노동부'로 나누기로 했다. '성장과 고용의 문제를 일원화해서 해결하겠다'는 슈뢰더 정부의 야심찬 계획을 반영했던 두 부처 통합 전략은 사실 큰 성공을 보지 못했다. 경제노동부 장관이었던 클레멘트는 두 문제 모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면서 재임기간 내내 과중한 정치적 짐을 짊어져야 했다. 따라서 신정부가 두 부처를 분리하기로 한 것은 지난 정부의 실패를 거울삼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정 최고실세가 '노동부 장관' 자청…독일식 권력안배**
그런데 이러한 결정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대연정을 주도하는 두 정치세력 간 권력의 균형이라고 하는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정의 주체들은 두 부처를 단순히 분리한 것만이 아니었다.
새로이 독립된 노동부의 명칭을 '노동사회부'로 변경했고, 노동사회부 장관직에는 사민당(SPD) 쪽의 최고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뮌터페링 당수가 취임하기로 결정됐다. 더불어 그는 메르켈 내각의 부총리직도 겸임하기로 했다. 경제부의 경우 메르켈 총리가 속한 기민연(CDU)의 자매당인 기사연(CSU)의 당수이자 바이에른 주의 주지사인 슈토이버가 취임하기로 정해졌고, 재정부 장관직은 사민당 소속의 슈타인브루흐 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주지사가 맡게 되었다.
이렇게 두 세력은 총리ㆍ경제를 기민/기사연이, 노동ㆍ재정을 사민당이 맡는 방식으로 연정 주체들이 권력을 나눠갖게 되었다. 대연정을 꾸리는 신정부의 일원으로서 노동조합의 정당인 사회민주당이 노동부를 책임지는 모습은 그리 의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노동사회부 장관의 부총리직 겸임은 간접적으로 경제부로부터 독립된 노동부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효과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결정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단적으로 그것은 세계화 시대에 독일의 노동사회가 당면한 위협과 위험들을 연정국면을 맞아 경제논리 위주로만 풀지 않겠다는 사민당의 강한 정치적 의지를 관철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대연정에 참여하면서 총리직을 기민당에 내주기로 한 사민당이 노동조합을 의식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너희 편이고 연정에서 그렇게 꿀리고 들어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정치의 일환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러한 권력의 배분이 향후 행정의 퍼포먼스에 있어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지는 전적으로 운영자들의 정치적 역량에 달려 있겠으나, 여하튼 이번 조각을 통해 신정부하에서 노동부의 위상이 알게 모르게 증대될 것으로 예견된다.
***경제부처 권력 집중된 우리나라와 비교돼**
독일의 신정부 초기에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부처 간의 권력조정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떠올리게 된다. 연정을 하면서 총리직을 내준 당이 부총리직을 맡는 것은 상식적일 수 있겠으나, 부총리급 실권자가 한 행정부처의 장관직을 겸임할 때 경제부가 아니라 노동(사회)부를 담당하는 모습은 어쩐지 신선하다. 언제나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혹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의 직함에만 익숙해서일까?
한국에서는 민주화 이전이든 이후든 언제나 경제부처에만 막강한 '자율권력(autonomous power)'을 부여해 왔다. 행정부 내에서 노동부의 위상이 강화된다고 곧장 그 사회에서 노동의 위상이 강화되는 것은 결코 아닐 테지만, 노동의 위상이 강한 사회에서 노동부의 지위와 역량이 함께 높아질 개연성은 매우 크다. 실지로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화의 진전과 노동운동의 확장에 따라 제도권력 안에서 노동부의 위상과 역량 역시 어느 정도 증대돼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래 전부터 '경제의 논리'가 '노동의 논리' 위에 서는 것이 당연시되어 온 우리 사회의 풍토에 비추어 보았을 때 '부총리 겸 노동사회부 장관'이라는 직함은 아마도 당분간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낯선 표현일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의 일, 일터에서의 사회적 관계, 그리고 일하는 자들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이고, 사회가 정녕 구성원들의 노력에 의해 바람직한 사회로 진보하는 것이라면, 언젠가 우리도 경제의 가치 위에 노동의 가치를 둘 줄 알게 되어 그런 방향으로의 '경로수정(path-correction)'을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