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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울리는 선택진료제, 이젠 무덤으로 보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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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환자 울리는 선택진료제, 이젠 무덤으로 보낼 때"

[기고] 선택진료제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

최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선택진료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의 강한 질타를 받았다. 과거에 특진이라고 불렸던 선택진료제는 지난 수년간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지속적인 폐지 요구를 받아 왔다.

환자가 특정 의사를 선택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이 제도가 사실상 병원이 진료비를 부당 청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계속 병원계의 눈치를 보면서 이 제도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병원계도 중요한 수입원인 이 제도에 대해 완강하게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고액ㆍ중증 질환자를 비롯한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2004년부터 선택진료제 폐지 운동을 주도해 온 강주성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다시 한번 선택진료제 폐지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강 대표는 이 글에서 "의료계의 수가인상 요구를 편법으로 수용하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는 환자에게 불합리한 이중, 삼중의 부담을 지우고 있으므로 꼭 폐지해야 할 제도"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강 대표는 "복지부는 선택진료제의 '보완'이 아닌 '폐지'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며, 병원계 역시 선택진료제를 포기하는 대신 수가를 변동시켜 수입을 보전하려는 식의 접근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편집자>

얼마 전 대구에 사는 어느 기초생활수급자의 진료내역을 본 일이 있는데, 놀랍게도 전체 의료비(약 1700만 원) 중 선택진료비가 무려 700만 원에 이르는 것이었다. 전체 진료비를 감안하면, 그 간에 내가 선택진료비와 관련하여 본 적이 있는 영수증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선택진료비가 청구된 경우였다. 내가 본 환자들의 영수증 중 1000만 원이 넘는 고액의 중증 환자 진료비 내역을 들여다보면 선택진료비가 100만~200만 원이 넘는 경우가 흔하다.

이 선택진료비는 환자들의 불만사항 중 가장 비중이 큰 민원들 가운데 하나로 이미 자리매김돼 있다. 경제적인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선택진료제에 대한 환자들의 심적 저항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야 두말 할 필요 없이 선택진료제 자체의 논리적 허구성에 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선택진료제**

지난달 하순에 건강보험 체계와 관련해 대만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애초의 방문 목적은 문서로만 보아 왔던 대만의 '중대상병보상제'를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중대상병보상제와 관련된 글을 읽고 대만의 선택진료제에 대해 모 기관에서 나온 짤막한 문서도 읽은 터라 나로서는 그 실상을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대만에 도착해 처음 만난 사람은 현지에 사는 화교 가이드였다. 나는 밥을 먹다가 그 가이드에게 "혹시 대만에 선택진료제'라는 게 있는데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가 '선택진료'라는 개념을 모를까봐 '특진제도'라고 다시 설명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고 했다. "이상하다. 한국에서 본 자료에는 '있다' 고 씌어 있었는데 왜 모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의문은 바로 그날 대만 국립대학의 의료관리학 교실을 방문해 대만의 의료제도 설계에 깊이 관여한 모 교수를 만나면서 일부 풀렸다.

이 교수도 역시 선택진료제라고 해서는 이해하지 못했고, 우리가 '특진'이라고 고쳐 말해주니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진이 있긴 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만의 특진은 대학교수급 의사들이 일부 부유한 환자들에게 진료를 해주고 치료비 전액을 비급여로 요구하는 것이어서 대만 의료제도에서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도 제도로서 확립된 것이 아님을 전민건강보험총국(우리의 건강보험공단)을 가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건강보험과 관계없이 극히 일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환자들(사업가나 정치가들)이 자신이 선택한 병원과 의사를 찾아가서 진료를 받을 때 진료비 전액을 본인이 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환자를 만나고부터는, 우리나라에 알려진 바와 달리 '대만에는 사실상 (우리나라와 같은 방식의) 선택진료제는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신장장애환자협회에 가 봐도, 백혈병 환자들의 모임인 골수이식협회에 가 봐도, 그리고 루프스 환자 모임과 각종 암 환자들이 모인 모임에 가 봐도 어떤 환자든 '선택 진료' 또는 '특진'이라는 말 자체를 알지 못했다.

한국에서 외국인들은 100% 환자본인 부담으로 진료를 받아야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유의미한 의료제도라고 여기지 않듯이, 대만에서 선택진료제는 건강보험제도 밖에서 운영되는 일종의 범칙금 성격을 지닌 예외였던 것이다. 이것은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이 제도와 관련해 보건산업진흥원에 연구용역을 주었다고 하는데, 이 기관도 아마 우리나라와 유사한 선택진료제를 다른 나라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환자들은 '봉'? 종별 가산금에 선택진료비까지 내라니…**

우리는 그간 선택진료제에 대해 여러 차례 개선이 아닌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 환자들도 이미 각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고, 이런 소송을 기초로 이 제도 자체에 대한 위헌 법률심판을 조만간 청구할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대학병원과 같은 3차 의료기관에 대해 의원이나 병원보다 더 높은 건강보험 수가를 인정하고 있다. 이름하여 종별 가산금 제도다. 건강보험 수가가 결정되면 대학병원은 그것보다 무려 30%를 더 받는다(종합병원은 25%, 병원 20%, 의원은15%의 종별 가산금이 붙는다). 그런데 이렇게 종별 가산금을 더 내야 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대학병원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고 추가적인 의료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이중삼중의 부담인 셈이다.

둘째, 선택진료비는 2000년에 의료계의 수가인상 요구를 정부가 편법적 제도로 해결해준 것이다. 따라서 선택진료비는 '환자에게 의사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비용'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말은 정치적으로 사용된 허구적 표현일 뿐 본질은 수가 보전책인 것이다. 이는 이미 정부와 의료계가 인정하고 있다.

셋째,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세계 여러 나라들을 살펴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선택진료제와 같은 예는 없다. 대만에서는 'VIP진료(특진)'라고 하여 국내외 부유층에 속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제도가 있을 뿐이며,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주치의와 상의하지 않고 환자가 일방적으로 병원과 의사를 찾아가 진료를 받는 데 대한 일종의 범칙금 성격으로 운영되는 것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여러 나라들이 이와 같은 선택진료제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해서 환자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보고는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가 드높고 제도 자체가 이렇게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폐지가 아니라 개선에 그 무게를 두고 있다. 선택진료제의 폐지냐 개선이냐를 논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택진료제의 폐지는 논의조차 하지 않고 개선 쪽으로 방향을 틀어 연구와 논의를 진행하려는 것은 선택진료제에 대해 분노하는 국민들을 우롱하는 행태다. 우리는 정부가 '현실적 이유'를 들이대며 '개선'이라는 애매한 현실적 타협을 하게 될 경우 자칫 또 다른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선택진료제도개선위원회의 활동에 깊은 우려감을 갖고 있다.

***정부는 '폐지'로 방향 잡아야…'폐지' 대신 '수가인상' 안 될 말**

이제 병원계 쪽에 중요한 이야기를 한 가지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폐지를 전제로 하는 일부 수가인상 논의를 하는 게 어떻겠는가'하는 생각을 했고, 모 언론에도 이런 생각을 한번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생각을 진전시키면 시킬수록 그 생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택진료제는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만약 다른 제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면 의료의 질 관리에 대한 보상과 지원 차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택진료가 실질적으로 병원의 수가 보전책으로 시행되었다 하더라도 외면상으로는 의료의 질적 차별성을 인정하자고 하면서 의료의 질에 대한 국민적 선택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그런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진료수가 자체를 변동시켜 선택진료 수입을 보전해주는 것은 국민 전체의 입장(개개인이 아니라)에서 보면 조삼모사 식의 똑같은 지출이 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면 수가 변동에 따라 그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 운영되고 있는 종별 가산금에 얹어 운영해도 마찬가지다. 사실 선택진료제와 관계없이 종별 가산금제도는 매우 문제가 심각한 제도다. 따라서 선택진료비를 연계해 운영하는 것은 오히려 이를 더 강화하는 것이어서 국민들은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이렇게 했을 때 현재의 상대수가 체계의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나는 선택진료제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폐지를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공급자와 가입자 간에 얼마든지 추후의 대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급자와 가입자의 중간에서 의료계와 국민 양쪽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하는 정부로서는 결국 서로에게 각각의 반발을 빌미 삼아 양쪽을 잠재우려 할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결국 제도를 축소(선택진료 의사 수나 선택진료 적용항목 축소 등)하거나 규정을 보완(타과 의뢰시 자동으로 부과되는 선택진료를 합법화하는 것)하여 지속시키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입자와 공급자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새로운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냥 두어봤자 향후 정부가 내놓을 안으로는 가입자와 공급자 양쪽에 남을 것이 별로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선택진료제는 국민의 저항을 받고 있고, 방향이야 어떻든 폐지로 가는 도상에 이미 서 있다는 것이다. 편법은 결국 불법을 낳는다. 이런 제도는 당장 좋을지 모르지만 의료계가 국민 속에 자리 잡는 데는 장기적으로 무조건 불리하다. 그동안 해 왔던 양태로 보면 앞으로 정부가 내놓을 제도 개선안에 대해서도 환자와 일반 시민들의 항의와 공격이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 뻔하다. 함께 사는 나라를 가꿔나가려면 '정도에 기초한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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