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의 주요 언론이 31일 발표한 하토야마 내각 지지율은 20%를 밑돌거나 겨우 넘겼다.
후텐마(普天間) 공군기지 이전지가 총리의 공약과 달리 오키나와(沖縄) 현 내 이전으로 귀결되면서 이를 결사반대했던 사민당이 연립정부 이탈을 선언했고 여론도 '하토야마 퇴진'을 외치고 있다.
후텐마의 늪…당내서도 '총리 퇴진' 목소리
<아사히신문>이 지난 29~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하토야마 내각 지지율은 직전 조사(15~16일)에 비해 4%포인트 하락한 17%로 나타났다. 민주당 정당 지지율도 3%포인트 하락해 21%로 나타났다. 하토야마 정권 출범 이후 <아사히> 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이 10%대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서도 내각 지지율은 지난 조사(7~9일)에 비해 5%포인트 빠진 19%로 나타났으며 <마이니치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도 각각 20%, 22%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9월 집권 당시 70~80%에 이르렀던 내각 지지율은 조사 때마다 하락했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특히 후텐마 기지 이전과 관련해 총리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하토야마의 목을 조였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대등한 외교를 내세우며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현 바깥으로 옮기겠다고 공언했던 하토야마가 '꼬리를 내리고' 결국 오키나와 나고(名護)시 헤노코(邊野古) 이전이라는 2006년 합의로 돌아간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각종 언론 여론조사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하토야마가 사임해야 한다는 여론은 적게는 46%에서 많게는 63%까지 나타났다. 이른바 '하토야마 심판론'이 대두된 것이다.
후텐마 문제의 좌절은 실제로 내각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사민당이 민주당·사민당·국민신당의 3당 연립정부에서 빠지기로 30일 결정한 것이다.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사민당 당수는 지난 28일 후텐마 기지 이전 각료회의 의결에 서명을 거부하면서 소비자담당상 직에서 파면됐다. 사민당은 이전부터 "후텐마 기지 문제에 타협은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기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사민당은 중의원 7석, 참의원 5석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어서 연정 이탈의 파급력은 크지 않다. 그러나 3당 연정이 깨지면서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참의원 선거 전략에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됐다.
더불어 민주당의 실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浪) 간사장이 후쿠시마 사민당 당수에게 "(후텐마 문제와 관련) 당신이 옳다"고 말하는 등 민주당 내부에서도 하토야마에게 불만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소속인 와타나베 고조 전 중의원 부의장은 총리 퇴진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 후텐마 기지 현내 이전에 반대하기 위해 집회를 연 오키나와 주민들 ⓒEPA=연합뉴스 |
그러자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당의 간판을 바꿔 7월 선거에 도전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힘과 인기를 소진한 하토야마를 얼굴로 내세워서는 참의원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갈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절한 인물이 없거니와, 당수를 교체해도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을 획득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에 일단 하토야마 퇴진 없이 선거를 치른다는 관측이 더 우세하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어차피 총리를 바꿔야 한다면 선거 후에 구체화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총리 퇴진 카드는 선거 후, 특히 민주당이 참패했을 경우가 더 유용하다는 것이다.
하토야마로 계속 가는 또 다른 이유는 '후텐마' 이견으로 불화설이 불거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하토야마와 오자와의 '팀플레이' 체제가 굳건하고 당의 실세인 오자와가 이 구도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 ⓒ뉴시스 |
또한 오자와 간사장 역시 정치자금 스캔들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기 때문에 하토야마가 물러날 경우 본인까지 퇴진해야 하는 '물갈이' 요구가 나올 가능성을 오자와는 우려하고 있다.
이처럼 하토야마 내각이 현 상태 유지라는 차악의 카드로 참의원 선거를 치를 경우, 결과는 아무도 승리하지 않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전문가들은 민주당 단독은 물론 국민신당의 의석을 합해도 과반을 차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자민당 역시 '민나노(다함께)당', '일어서라 일본' 등으로 사분오열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론조사를 봐도 자민당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보다 높게 나오기 시작했지만 1%포인트 정도로 높지 않다.
승자 없는 선거로 끝날 경우, 하토야마는 총리로 연명할 명분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민주당 집권체제 자체는 그럭저럭 생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민주당은 중의원에서 단독으로 과반이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번 선거는 참의원 총 242석 가운데 121석을 결정하는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선거는 민주당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실망을 그대로 보여줄 것이고, 당에 내적인 타격은 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따라서 과반 획득의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패배의 충격을 줄일 수 있도록 그나마 남은 지지율을 관리하는 것이 민주당 지도부로서는 최선의 길이다.
"천안함, 총리의 실책을 가릴 국제적 사건"
이처럼 지지율 관리에 부심하는 하토야마 정권에 어부지리로 작용한 것이 천안함 사태라는 의견도 나온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동북아 안보가 위태롭다는 지적이 힘을 얻게 됐고, 따라서 후텐마 기지를 총리의 기존 약속 대로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토야마의) 실책을 가릴 국제적 사건"(진창수 소장)이 터진 셈이다.
게다가 워낙에 여야를 막론하고 반북정서가 강한 일본 정가와 일반 국민 여론을 고려할 때 북한을 규탄할 수 있는 기회는 국내정치적으로도 총리의 리더십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원덕 교수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강경 대응이 일본 국민 정서에 맞다"며 "(하토야마가)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은 국내 지지율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하토야마 총리는 29~30일 제주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는 물론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천안함 세일즈'에 열을 올리고 있다.
29일 대전 현충원에서 천안함 희생자 묘역을 참배한 하토야마는 31일 원자바오(溫家寶)중국 총리를 도쿄에서 다시 만난 자리에서도 "한국이 천안함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것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어 "일본은 북한에 의한 어뢰 공격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라는 조사결과를 지지한다"며 "북한은 국제사회의 룰에 따라 강력하게 비난받아 마땅하며 이런 일이 두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방한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29일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아 천안함 희생자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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