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연천군 중면 최전방 GP 내무반에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 난사사건을 일으킨 김 모 일병은 최초 국방부의 우발적이었다는 발표와는 달리, 평소 선임병들의 잦은 인격모욕에 앙심을 품고 사건 이틀전 살해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총기난사 참극 김 모일병 치밀하게 사전 계획, 확인사살 하기도**
박철수 합동조사단장은 20일 국방부에서 중간수사 브리핑을 갖고 "사고자는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 및 욕설 등 인격모욕을 당한 데 앙심을 품고 선임병 등을 살해할 것을 지난 17일 결심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19일 최초 설명에서는 "김 일병이 자신을 괴롭힌 선임병의 자는 얼굴을 보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수류탄 1발을 선임병을 향해 던졌다"고 발표해, 군이 진상을 은폐하려는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낳았었다.
합동조사단은 그러나 이날 발표에서는 "현장검증 당시 그의 표정과 설명을 봐서는 무척 대담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사전에 동료들에게 소대를 뒤집어 보겠다, 혼을 내겠다고 말을 한점 등으로 봐서 그러하다"고 말해 책임 소재를 김 일병에게 돌리려 부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합동조사단 발표에 따르면, 김 모 일병은 사건 당일인 19일 새벽 2시 30분경 후방초소 근무중 후번 근무자를 기상시킨다는 명분으로 이 모 상병에게 보고 후 수류탄 1발과 25발이 들어있는 탄창 2개를 소지한 채 내무실로 이동했으며 내무실에 도착한 뒤 근거리 관물대에 있는 모 상병 K-1소총을 절취후 화장실로 잠입했다.
그는 화장실에서 소총에 탄창을 장전 조정간을 연발로 위치시킨 후 수류탄은 안전핀 3개 중 1개를 제거한 뒤 방탄복 좌측 주머니 휴대후 내무실로 이동했다. 그는 수류탄을 모 상병을 향해 투척후 내무실에서 나와 상황 근무자를 살해할 목적으로 상황실로 이동했다. 그러는 가운데 체력단련장에서 나오는 김종명 중위를 난사 사살했으며 상황실에서 나오는 신임소대장에게도 난사했다.
그는 그러나 상황실에서 무장한 근무자가 나올 것을 우려 상황실로 가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취사장쪽으로 향했으며 취사장에서 조 모 상병의 하지를 향해 난사한 뒤 쓰러진 피해자가 숨이 멎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 확인 사살하기도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무덤덤하게 확인사살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내무실로 이동해 내무반으로 25발 전량을 난사한 뒤 전방 초소로 이동했으며 전방초소에 근무중인 이 모 상병과 마주치자 사살하기 위해 사격했으나 실탄 고갈로 미수에 그쳤다. 그는 이 상병이 "너는 왜 여기에 왔느냐"고 묻자 태연히 "후방 초소에 근무하는 이 상병이 가 있으라고 해서 왔다"고 허위 답변한 후 원위치하라는 지시에 후방 초소로 복귀했다.
***평소 인격모독에 모멸감 느껴. 국방부, "구타 및 가혹행위는 전혀 없어"**
그러나 이같은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배경은 군 내부에 만연한 '폭력'이 근원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합동조사반에 따르면, 김 모 일병은 지난 1월 전입 후 선임병들로부터 빈번한 인격 모독성 언어폭력 피해를 당해 이같은 결심을 하게 됐다.
특히 김 일병은 범행 전날인 지난 18일 오후 3시경 농구 경기 당시 모 상병으로부터 "일병 달았으면 군생활 다 끝나는 거냐? XX 새끼야"라는 말을 듣고 범행을 결심했다.
김 모 일병은 또 이날 오후 5시경에도 같은 상병으로부터 취사장 청소시 질책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이 상병은 취사장 하수구가 막힌 것을 보고 이를 삽으로 퍼내고 있었으나 김 모 일병이 그냥 지나가자 불러 세워놓고는 "고참은 바쁜데도 불구하고 문제를 시정하고 있는데 이 장면을 봤냐"고 질책했고 이에 김 모 일병이 "못봤다"고 답하자 욕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상병은 "X새끼야, 고참이 물을 퍼내는데 보고 그냥 가냐"며 욕을 했으며 2,3분 가량 '교육'을 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같은 언어 폭력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김 모 일병에 대한 구타 및 신체적 가혹행위는 전혀 없었다"며 "김 모 일병은 당시 평소 '갈굼'과 인격모독을 느껴왔는데 이 때 상당한 인격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또 사고자가 평소 내성적 성격이고 컴퓨터와 게임을 무척 좋아했었다"며 "대학도 스스로 적응하지 못해 중퇴하는 등 나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주책임을 김 일병에게 돌리려 급급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모 일병과 초.중학교 동기며 군대 동기이기도 한 천 모 일병도 진술을 통해 "그는 평소 내성적 성격과 느린 행동으로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을 받았다"며 "GP 투입후 3~5회에 걸쳐 '수류탄 까고 총으로 쏴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푸념이나 장난으로 판단,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부소대장인 최 모 하사의 진술에 따르면 김 모 일병은 전입시부터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동료한 화합을 이루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최 모 하사는 최초 면담시 그가 "열심히 하겠다"고 의지를 보여 관심병사로 분류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모 일병은 이밖에 선임병들의 언어 폭력에 대해 소원수리 절차는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GP 경계근무 기강 문란도 사고 직접 원인, 임의대로 경계지침 바꿔**
하지만 김 모 일병의 사전 계획여부를 떠나 부대내 GP 경계근무 기강 문란도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것으로 국방부는 인정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 부대는 경계 지침서를 임의 변경해 적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계 지침서 대로라면 GP 근무는 4교대로 밀어내기식으로 이뤄지지만 이날은 '작업이 많았고 어려웠으니 밀어내기식이 아니라 고정해서 근무하는 게 어떠냐'고 건의해 GP장은 이를 받아들여 전임초소와 후임초소에만 한 팀씩이 계속 근무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매주 토요일마다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상황병이 후임 교대조를 깨우러 내무반에 들어와야 했으나 후임초소에서 직접 내려와 후임을 깨우러 들어왔으며 상황실에서의 탄약수불절차를 했어야 했으나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아 수류탄과 탄창을 소지한 채 내무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와 관련 박철수 조사단장은 '이러한 점들을 과거에 발견하지 못했냐'는 질문에 "과거에 경계점검하며 조치한 사례가 있으나 다시 번복됐다"고 인정했다.
아울러 사고자인 김 모 일병이 붙잡히기까지 소대원들은 적군이 침입해 공격한 것으로 오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직후 GOP 대대 인사장교는 GP로 확인전화해 GP 상황병과 통화했으며 이 상황병은 "적으로부터 총격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GOP 대대 상황병도 "적으로부터 피격됐다"고 연대장과 사단장에게 보고했다. 후임 GP 장도 공격을 받고 상황실에 복귀후 연대 상황실에 "나도 공격을 받았다. 피-아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모 일병이 붙잡힌 시점은 이날 새벽 3시 경으로 신임 소대장이 "전투복을 입은 사람이 봤다"며 전투복 입은 병사 5명을 집합시킨 후 무장해제한 뒤 포병관측장교실로 집결조치했다. 이후 5명이 대기하던 가운데 전임초소와 후임초소에 있던 이병삼 상병과 이강찬 상병이 김 모 일병을 두고 설명하는 과정에 말이 어긋나자 김 모 일병을 추궁해 자백을 받아내고 체포했다.
한편 국방부는 이번 사고로 인한 징계수위와 관련 "육군은 이번 사태를 통해 너무나도 어이가 없고 국민여러분께 죄송하다"면서 "규정, 방침대로 엄벌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초 충동적인 범행이라며 문제를 은폐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던 국방부로서는 이번 사고로 평소 군대 문화와 기율 문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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