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환경과 농업을 살리는 건강한 농지제도 개편을 위한 연석회의(농지제도 연석회의)'와 공동으로 최근 농지법 개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통해 촉발된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공론화하는 기획을 마련한다.
이번에는 10년 전 국립대학교 교수직을 벗어 던지고 변산에 둥지를 튼 '변산 공동체' 대표 윤구병 선생이 최근 '농지법 개정'이 갖고 있는 의미를 땅에 뿌리내린 농부의 경험에서 우러난 경험담을 통해 짚었다. 윤 선생은 지난 10년 동안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 비닐, 유기질비료를 안 쓰고 힘들게 지력을 회복시켜 놓은 땅을 지주(!)에게 빼앗기는 '불행'을 겪었다.
그는 "'부재지주'란 옛날에만 가증스로운 '지주놈'이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우리가 사는 시골구석까지 찬찬히 살펴보면 '서울 놈들' 땅이 절반이 넘고 이 땅은 수시로 임자가 바뀌어 농사꾼들은 해마다 땅 살릴 엄두는커녕 한 해만 빌어먹고 그만 둘 요량으로 땅을 마구잡이로 대한다"고 현실을 전해왔다. 편집자.
***"나, 원, 꼴 같지 않은 놈들 같으니라고!"**
올해로 농사짓기 시작한 지 꼬박 열 해가 넘었다. 아직도 풋내기에다 무늬만 농사꾼이지만, 열 살짜리 철든 농사꾼 있다는 말 들어 보았는가? 당연히 아직 철모르는 농사꾼이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조심이 앞선다. 더더구나 '낮말 듣는 새'나 '밤 말 듣는 쥐'보다 더 무서운 '짭새'나 '중앙정보부', '안기부'의 '프락쥐'들에 둘러싸여 살던 시절이 30년이 넘으니, 그러지 않아도 될 일에도 입조심이 버릇으로 굳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듣자하니 정부와 국회가 돈 많은 도시내기들과 짜고 들어 '부재지주'를 양산해 내서 '전 농민의 소작농화'를 꾀하고 있다는데, 내 경험을 본보기 삼아 이야기하면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나와 우리 '변산 공동체' 식구들이 전북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에 처음 터를 잡은 해가 1995년이다. 그해 5월부터 올해까지 10년 동안 우리는 부안 김씨 시조를 모시는 재실의 '재지기' 노릇을 하면서 재실 논밭을 부쳐 먹는 소작농살이(반은 종살이라고 해야겠지)를 했다.
대체로 유기농법을 '삼무농법'이라고도 하는데, 이 때 '삼무'는 공장에서 나오는 화학비료 안 쓰고, 제초제 안 쓰고, 농약 안 쓰는 '무화학비료', '무제초제', '무농약'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 '삼무'농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야말로 '오무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밭에 비닐 안 깔고(무비닐), 농협 같은 곳에서도 보급하는 축산퇴비 안 쓰는(무유기질 비료) 고집까지 부린 것이다(지금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화학 비료에 제초제에 농약에, 항생제, 방부제 섞인 사료로 빚어진 짐승 똥으로 만든 유기질 비료에, 비닐 멀칭에 죽고, 병들고, 썩어가는 땅을 되살리는 일에 들이는 품이 오죽이나 할까.
이렇게 해서 10년에 걸쳐 우리는 우리가 짓는 부안 김씨 대종회 재실 논밭을 보란 듯이 되살려 놓았다. 논에는 우렁이, 미꾸라지, 거머리가 되돌아오고 밭에서는 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운산리 인근 밭(어찌 운산리뿐이랴)이 병들어 요 몇 해 동안 고춧대가 다 말라 죽는데도, 우리 밭에서 있는 고춧대는 끄떡없이 푸르름을 지키고 있어 동네 안팎 어르신들이 '어허, 저것 좀 보소. 농사라고는 농짜도 모르는 젊은것들이 사시장철 땅바닥에 엎드려 있더니, 땅심을 되돌려 놓았구먼' 혀를 내두를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우리가 한 겨울에도 산에 올라가 부엽토 긁어모으고, 저수지 바닥 드러나기 무섭게 바닥에 쌓인 썩은 나뭇잎, 자루에 담아 나르는 일을 10년이나 해 왔는데, 그러고도 땅이 되살아나지 않으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겠지.
여기에서 글을 맺으면 '해피엔딩'인지,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았다더라'로 끝나는 '육전소설'인지가 되겠지. 그러나 '해피엔딩'이 아니라 '해피엔드'로 끝나고 말았다. 최민식이 나오는 영화 제목 '해피엔드' 말이다. 우리가 되살려 놓은 재실 땅에 욕심이 생긴 부안 김씨 가문 종친회에서 짜고 들어 하루아침에 '힘없는 재지기' 등 떠밀어내고, '종씨'한테 그 땅 내 줄 음모(?)를 꾸민 것이다. 버틸 만큼 버티고, 빌 만큼 빌고, 공동체 안식구들이 젖먹이 들춰 업고, 어린것 손 끌고 종친회 사무실이 있는 부안 읍내에까지 먼 길 찾아가서 애걸복걸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러니, 어느 시러베아들놈이 남의 땅을 되살리는 데 힘을 기울이려고 들 것인가. '부재지주'란 옛날에만 가증스러운 '지주놈'이 아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시골구석까지 찬찬히 살펴보면 '서울 놈들' 땅이 절반도 넘고, 이 땅은 수시로 임자가 바뀌어 농사꾼들은 해마다 '올해 땅을 떼이나, 내년에 떼이나'하는 걱정에 땅 살릴 엄두는커녕, 한 해만 빌어먹고 그만 둘 요량으로 비닐도 걷어내지 않고 '로타리쳐버리는' 일까지 생기는 판국이다.
'땅에 어찌 내 땅이 있고 니 땅이 있을소냐. 경자유전이라,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지을 힘이 있을 때까지만 벌어먹고, 힘겨우면 젊은것들한테 넘겨주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농사지어도, 요즘 세상 꼴이 예순, 일흔 넘은 늙은이 한 사람이 농사지어 도시에 사는 젊은것들 스무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나 몰라라 하는 판이다.
그런데, 이제 아예 드러내놓고 온 도시 놈들 '부재지주화'에, 시골 늙은이들 땅 빼앗고, 모처럼 귀농해서 유기농으로 땅 살리려는 갸륵한 마음마저 짓밟아, '온 농민 종살이화'도 모자라, 아예 '모든 땅 황무지화'가 빤한 짓에 발 벗고 나선단 말이냐? 네, 이 천벌을 받을 놈들아! 어서 옷 벗어라. 그리고 정부청사에서,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서 기어 나오너라. 나와서 이 늙은이하고 변산에서 땀 흘려 농사짓자. 농사지으면서 땅님에게 울고 불면서 잘못했다고 빌어도 시원찮을 판국이다. 나, 원, 꼴 같지 않은 놈들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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