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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 "저임노동자들의 노동, 존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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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 "저임노동자들의 노동, 존중해야"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1> 영국 의회, 청소부 최저임금 인상 캠페인

그 동안 <프레시안> 지면에 부정기적으로 세계적인 시야에서 우리나라 노동문제를 살펴보는 글을 기고해왔던 윤효원씨(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국제담당 및 <노동사회> 편집실장)가 앞으로 정기적으로 칼럼을 연재한다.

이 연재는 지난 10여년에 걸쳐 유럽 및 아시아의 노동조합, NGO, 학계의 여러분과 관계를 맺어오며 노동문제에 관심을 쏟아온 저자의 활동을 바탕으로 다른 지면에서 볼 수 없는 노동 관련 글로 채워질 예정이다. 특히 우리나라 노동문제를 보는 안목을 기르는데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는 국제 노동 동향 및 외국 전문가들의 가감 없는 목소리가 소개될 예정이다. 편집자.

***토니 블레어,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을 존중해야 한다"**

화이트칼라 노동조합들의 국제상급단체인 UNI의 소식지 <UNI info> 봄호를 받아보니, 지난 2월 TGWU라는 영국 노조가 의회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청소부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지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의회 청소부들은 시간당 4.85파운드인 임금을 6.7파운드로 인상하고(하루 8시간 일한다고 할 때 1백50만원 정도의 월급을 2백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이야기), 병가수당과 연금을 보장하며, 적당한 휴일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영국 의회에는 3백 명의 청소부가 일하는데, 1백 명은 의회가 직접 고용한 이들이고, 나머지는 용역업체 소속이다. 물론 영국 의회의 청소부들이 받는 시급 4.85파운드는 법정 최저임금이다. 지난 5월 초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집권 3기를 맞이한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는 집권 1기 시절 노동조합의 요구를 받아들여 전국최저임금제(The National Minimum Wage)를 도입한 바 있다.

법정최저임금이라도 받으니 다행이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고, 민주주의의 고향인 영국 의회가 법을 지키긴 지키는구나 생각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2천8백40원인데 영국은 그 세 배가 넘는 9천원이나 되니, 역시 영국은 잘사는 나라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국에서도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이었나 보다. 흑인들이 다수인 의회 청소부들이 들고 일어난 걸 보면 말이다.

영국 의회의 청소부들이 캠페인을 벌이고, 그들이 속한 노동조합인 TGWU가 나서자 영국의 정치권도 입장을 냈다. 5월 총선을 몇 달 앞두고 있던 토니 블레어 총리는 노동당 총회에서 "청소부 같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수백만 명에 달하는 데, 이들의 노동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피터 하인 하원의장도 "나라면 청소부들의 임금으론 도저히 살 수 없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1백 명이 넘는 하원의원들도 청소부를 위한 동의안을 영국 의회에 정식으로 제출했다. "이들의 근로 조건은 21세기 영국에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끄러운 것으로 의회 사무처와 용역업체들은 청소부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주 내용이다.

***과천청사 청소부들의 '23년만의 반란'**

우리나라도 얼마 전 과천종합청사에서 일하는 청소부들이 파업을 한 적이 있다. 노동일간지인 <매일노동뉴스>는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 제목을 '과천청사 청소노동자들 23년만의 반란'이라 뽑았다. 과천청사를 청소하는 '미화원'은 여성이 75명, 남성이 20명인데 대부분 오십대로 재향군인회 소유의 용역업체가 이들의 고용주다.

이 업체는 1982년부터 과천청사 청소 용역을 독점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말 계약방식이 입찰경쟁으로 전환돼 낙찰가가 17억원에서 14억5천만원으로 낮아지자, 이를 이유로 80만원씩 하던 청소부 월급을 66만원으로 깎아 버린 것이다.

물론 정부의 공개입찰이나 용역업체의 임금삭감이 현행법상 불법은 아니다. 더구나 깎인 청소부들의 임금이 법정최저임금에서 정한 월급 수준인 64만원보다 2만원이나(!)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용역업체가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하지만 과천청사에서 일하는 어느 공무원도 자신의 월급으로 64만원은커녕 80만원을 받는 이가 없고, 해당 용역업체나 재향군인회의 정규직원이나 관리직 가운데 1백만원 밑으로 받는 사람이 없음을 감안할 때 참으로 옹졸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파업 며칠 후 과천청사 청소부들은 용역업체와 합의에 도달했다. 합의문은 임금 삭감을 당초의 14만원에서 절반 수준인 7만원 정도로만 하고, 파업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며,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따위의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7만원이 깎여 앞으론 대략 73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 동안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해 온 50대 아줌마 아저씨들의 '첫 투쟁' 치고는 성공적이었다.

***이런 고관대작은 없을까**

과천청사의 청소부들이 파업을 벌이는 동안 청사에서 일하는 공무원 노조원들이 응원 방문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허나 같은 청사에서 일하는 장관들이 들렀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정치적인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고, 장관 체면이 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찾아오지 않은 진짜 이유가 "같은 50대지만, 나는 많이 배웠고 더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1천만원 가까운 월급을 받아도 되지만, 당신들처럼 청소부로 살아가는 데는 월 60만원에서 8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UNI info> 봄호를 읽으며,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일하는 사무실을 매일 쓸고 닦는 힘없는 청소부를 위해 "나라면 이 월급으론 살 수 없다"며 말이라도 한 마디 해주는 고관대작이나 CEO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몽상(夢想)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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