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와 뉴스툰(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도서출판 '시대의창'이 공동 기획해 제작한 <만화 박정희>가 5ㆍ16 군사 쿠데타 44주년을 맞이한 16일 출간됐다. 특히 이 책은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각, 좌익 경력, 군부독재 실상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어 논란이 일 전망이다.
***"박정희 시대 살아보지 않은 어린 세대에게 진실 알려주기 위해 출간"**
민족문제연구소와 도서출판 '시대의창' 등은 16일 오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만화 박정희> 출판 기념회를 열고 이 책을 펴내는 의미를 밝혔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양 극단으로 나뉜 박정희에 대한 최근 평가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어린 세대들에게는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정확하게 박정희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깊이 생각한 끝에 <만화 박정희>를 기획하게 됐다"고 출간 목적을 밝혔다.
임 소장은 "철저하게 사실과 증언을 토대로 구성해 사실의 혼동이 없도록 했다"며 "이 책의 출간으로 우리 민족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 영향을 미치는 한 '문제적 인물'에 대해 국민들이 냉철하게 판단하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이 책의 출간 의의를 설명했다.
<만화 박정희>를 각각 쓰고 그린 백무현, 박순찬 화백은 종합 일간지에서 만평, 만화를 그리는 현직 작가이다. 백무현 화백은 <서울신문>에서 시사만평을 맡고 있고 이미 1996년 8ㆍ15 해방부터 전두환ㆍ노태우 구속까지 50년사를 다룬 <만화로 보는 한국 현대사>(전3권)을 집필한 경험이 있다. 박순찬 화백은 <경향신문>에 만화 '장도리'를 연재하면서 종합 일간지 최연소 시사만화가 기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항일 유격대 토벌에 '요오시(좋다)' 외친 박정희"**
이번에 출간된 <만화 박정희>는 그간 금기시돼온 박정희 전 대통령 삶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박 전 대통령의 일제 강점기 때 친일 행적, 좌익 경력, 군부 독재 실상 등을 정면으로 묘사하고 있다.
1979년 10월26일 암살 사건으로 시작한 이 책은 곧바로 1942년 3월23일 박 전 대통령이 다카기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쓰고 입학한 만주 군관학교를 졸업하면서 "대동아공영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고 선서를 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재미언론인 문명자씨의 증언 내용을 토대로, 박 전 대통령이 일본제국군 소위로 임관한 뒤, 평소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조센징(항일 유격대) 토벌 나간다"는 명령에 벼락같은 목소리로 "요오시(좋다)!"라고 외쳐 당시 같은 동료들에게 "저거 좀 돈 놈 아닌가"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해방후 좌익으로 돌변, 위기 몰리자 미련 없이 동료-조직 배신"**
한편 그간 적극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의 해방 직후 좌익 행적에 대해서도 이 책은 한 장을 할애해 구체적인 실상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해방 후 춘천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던 중 당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와 남조선노동당(남로당)에 참여했던 셋째 형 박상희씨를 좇아 남로당에 입당한다.
1948년 10월 제주 4ㆍ3항쟁을 진압하기 위한 출병을 여수 주둔 14연대가 거부하면서 발생한 '여순 반란 사건'을 계기로 전 군에서 좌익 색출이 시작되고, 그 여파는 당시 소령이었던 박 전 대통령에게 미친다.
이 책은 "당시 박정희는 자신이 살기 위해 미련 없이 동료와 조직을 배신했고, 수사팀은 (박정희가 써준) 명단을 토대로 마치 고구마 캐듯 세포들을 색출해 나갔다"며 "박정희는 그 공으로 사형을 면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이기기 위해 반호남 지역감정 자극"**
이 책은 5ㆍ16 군사쿠데타 직후부터 18년간의 박정희 정권의 횡포를 집중 조명했다.
이 책은 우선 1961년 당시 32세의 나이로 사형을 당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에 대해 "미국이 박정희의 좌익 경력을 문제 삼을 것을 우려해 반공을 제1의 국시로 내세운 박정희 정권이 선명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억울한 희생양을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책은 계속해서 1964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1967년 재독 교포를 간첩으로 몬 동백림(동베를린) 사건, 영구집권을 꾀한 1972년 10월 유신,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색연맹(민청학련) 사건, 1975년 4월9일 형 확정 다음날 8명에 대한 사형을 선고한 재건 인혁당 사건 등 박 정권의 대표적인 폭압 정치 사례의 전후 맥락과 진실을 밝혔다.
특히 이 책은 박 정권이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파란을 일으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꺾기 위해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조장한 사실도 폭로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박 정권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선거 막바지 대구에 "호남인이여 단결하라", "호남에서는 영남인의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는 유인물을 뿌려 영남의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젊은 여성에게 술시중 장면 들키자 육영수 여사에게 잔 던져"**
이 책은 금기시돼온 박 전 대통령의 여성 편력도 다뤘다.
이 책은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유성온천에서 젊은 여성에게 술시중을 받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이 갑작스레 방문한 육영수 여사에게 "서울에 있으라면 있을 것이지 왜 내려 왔어"라며 술잔을 던진 일화를 소개했다.
이 책은 박 전 대통령의 '채홍사(기생을 징발하는 관리)'였던 박선호 중정 의전과정의 증언을 토대로 "주로 주간지 표지 사진이나 TV시청에서 (여성을) 골랐으며, 경호실장 차지철이 TV 보다가 30%쯤 골랐고, 궁정동 안가를 다녀간 연예인은 1백여명 정도 되고, 임신해서 낙태한 사람도 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이 책은 또 1970년 '정인숙 피살 사건'을 소개하며 "당시 26세였던 정인숙은 박정희는 물론 당시 정일권 총리와도 관계를 맺었으며 정인숙이 마포구 합정동 부근의 강변3로 승용차 안에서 총을 맞아 숨진 뒤 숨겨진 정인숙의 아들이 누구의 자식인지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박사모' "박정희 미화 만화 출판하겠다"**
여러 가지 논란거리를 안고 있는 이 책의 폭발력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은 지난 14~15일 충청북도 충주호리주트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만화 박정희> 출간을 '박근혜 죽이기'의 일환이라고 보고 이에 대응하는 <인간 박정희> 만화를 출판하기로 했다.
1990년대 후반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내용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조선일보사 펴냄)에 대항해 시사평론가 진중권씨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개마고원 펴냄)를 펴내 일방적인 박 전 대통령 찬양과 미화를 비판했던 것과 정반대의 대응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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