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중간고사를 몇 시간 앞두고 투실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새학기 들어서만 벌써 10번째 고등학생 자살이다.
***고1 학생 또 자살, 신학기 들어서만 성적 비관 자살 10번째**
지난 6일 새벽 4시쯤 수원 영통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이 아파트 17층에 사는 박모(16)군이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경찰은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박군이 평소 시험 시간이 되면 우울해했고, 죽기 전 현관문을 들락거리는 박군을 보았다는 여동생(14)의 진술이 있었다"며 투신자살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자살 소식이 알려지자, 박군이 다니던 학교와 주변 학생들 사이에서는 '내신 제도에 희생된 박군을 추모합니다'라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적 때문에... 대입 때문에..."**
3월 이후 신학기 들어서만 10명이 성적 또는 대학 입시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학생들의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30일에는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에서 중간고사를 치르던 고2 한모(18)양이 성적 압박감에 시달리다가 11층에서 투신해서 목숨을 끊었다. 한양은 반에서 성적이 3등 이내에 들 정도의 우등생이었으나, 중간고사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한 것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양은 "먼저 가서 미안하다.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겼다.
하루 전인 4월29일에는 서울 서초구의 한 고교에서 중간고사를 치르던 고3 김모(17)군이 목숨을 끊었다. 김군은 중간고사를 치르던 도중 부정행위로 의심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감독 교사에게 꾸지람을 들은 뒤 학교 화장실 장문을 통해 투신했다.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4월19일에도 경상남도 양산의 고3 정모(17)군이 아파트 17층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정군은 평소 성적이 떨어져 대학에 못 갈 것 같다며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3월14일에는 대구 수성구 한 아파트에서 고3 이모(17)양이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이양이 쓴 일기에는 '성적이 오르지 않아 괴롭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며칠 전인 3월9일에는 강원도 춘천에서 고1 어모(16)군이 역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그는 우울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우울증의 원인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성적 압박은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은 특수목적고 학생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4월27일에는 인천의 한 과학고 기숙사에서 이 학교 학생 고2 김모(17)양이 독극물을 먹고 숨진 채 발견됐다. 김양은 친구들의 이름과 "사랑했었다", "용서해다오" 등의 낙서 형태의 유서를 남겼다.
김양이 자살하기 며칠 전에는 대전의 한 외국어고에 다니는 고2 박모(17)양이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양은 중학교 때 전교 1ㆍ2등을 다퉜으나 외국어고에 진학해 성적이 중하위권으로 떨어져 괴로워했으며 결국 2학년에 올라와 치르는 첫 시험을 앞두고 목숨을 끊은 것이다.
4월10일에는 서울의 한 과학고 학생회장 고3 이모(17)이 역시 아파트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팔방미인이었던 이군은 과학고에 진학한 뒤에도 우수한 성적을 보였으나 2004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조기 진학에 실패한 뒤부터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투신하기 전 친구 3~4명에게 '먼저 간다. 잘 지내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어머니에게도 '마음 편히 사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더 늦기 전에 청소년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통계청에 따르면, 청소년 사망원인 중 자살이 자동차 사고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했다. 2003년 15~19세 청소년 10만명당 사망률은 자동차 사고 12.3명에 이어 자살이 8.2명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을 자살로 모는 가장 큰 원인은 성적 압박이다. 어느 때보다 예민한 시기의 청소년들이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성적이 자기 뜻대로 나오지 않을 경우 쉽게 상처 받고, 우울증에 빠져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같은 교육 현실이 개선될 기미를 안 보이는 것이다. 교육 당국은 "학교 중심의 교육을 실현하고, 내신 성적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겠다"며 상대평가제에 기반을 둔 내신등급제를 2008학년도부터 전격 시행할 뜻을 밝혔으나 정작 학생들은 '내신등급제 때문에 더 힘들다'며 하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1들이 중심이 돼 자살 학생들의 넋을 기린지 이틀도 되지 않아 중간고사를 앞둔 고1 학생이 목숨을 끊은 것은 단적인 예다.
3월 이후 신학기 들어서만 10명이 성적 또는 대학 입시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지난 3월 미국의 초등학생의 총기 난사 사고로 10명의 학생이 목숨을 잃은 것과 같은 숫자다. 이 정도면 '성적 난사' 또는 '시험 난사'라는 조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지난 7일 징계 위협에도 불구하고 광화문에 나와 촛불을 든 고1들은 "제발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을 요구했다. 지금이라도 '모두가 대학에 가야 하는 교육', 입시 중심 교육의 폐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때이다. 얼마나 더 많은 청소년들을 '시험 난사'로 하늘 나라로 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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