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학년도 대입 제도에 대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대규모 촛불 집회가 될 것으로 우려됐던 집회가 애초 계획된 '촛불 추모제'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7백여명의 학생들은 "제발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을 간절히 호소했다.
***7백여명 모여 촛불 추모제 열어, "내신등급제도 본고사도 싫다"**
7일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이 주최하는 입시 교육 경쟁에 희생당한 학생들의 넋을 기리는 촛불 추모제가 6시부터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추모제는 처음 1백여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했으나, 추모제가 끝날 무렵에는 7백여명의 학생들이 광화문 정문 앞 인도를 꽉 메우고 촛불을 들었다.
이날 행사는 애초 기획된 대로 추모제 형식으로 치러졌으며, 교육 당국이 우려한 2008학년도 대입 제도에 대한 고1 학생들의 대규모 불만 표출은 없었다. 주최측도 교육·인권단체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라인을 만들었으며, 학생 외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추모제에 참석한 대부분의 학생들 역시 촛불을 들고 단상의 얘기를 경청하는 등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을 보여 교육 당국의 염려를 무색케 했다.
7시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추모제는 7시45분경 '자율 발언'에서 가장 분위기가 고조됐다. 단상에 오른 학생들은 입시 교육 중심의 학교 교육을 비판하면서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현재의 교육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를 고3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내신등급제 때문에 성적에 대해서 더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고1 후배들이 너무나 불쌍하다"며 "오늘 이렇게 모인 것이 시작이 돼서 교육부가 꼭 우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자"고 지적했다.
'한국청소년모임'의 신지혜 위원장(16)도 "우리는 내신등급제도 본고사도 원하지 않는다"며 "내 옆에 있는 친구를 밟아야 하는, 물건에 점수 매기듯이 우리들에게 점수를 매기는 이 전쟁터같은 학교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발언한 부천에서 온 학생은 "내 친구를 돌려 달라"고 외쳐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주최측은 이날 참석한 학생들로부터 의견을 적은 쪽지를 모아 교육부에 전달하기로 하고, 교육부에 6월7일까지 성실한 답변을 줄 것을 촉구했다.
***"이번 집회로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였으면…"-"좀더 많이 모였어야 했는데…"**
한편 이날 참석한 학생들 중에는 고1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6일 중간고사가 끝났다는 서울 강북의 한 고1 학생(16)은 "약간 무섭기는 했지만 친구들과 교보문고에서 약속해서 만난 후 집회에 참석했다"며 "이것으로 내신등급제가 폐지되지는 않겠지만 우리 목소리에 어른들이 귀 기울이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고1 학생(16)도 "같이 오기로 했던 친구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빠져서 속상했지만 아무도 안 모이면 어른들이 우리 목소리를 무시할 것 같아서 단짝 친구와 같이 왔다"며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다니는 학교는 분위기가 정말 살벌한데, 이렇게 3년을 다닐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고 내신등급제에 대한 부담을 털어놓았다. 그는 "친구들과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읽고 싶은 책도 마음껏 읽는 그런 고등학교 생활은 정말 불가능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경기도에서 친구 셋과 함께 촛불 집회에 참석한 고2 학생(17)은 "오늘 중간고사가 끝난 후 대학로에 올 일이 있어서 서울에 왔다가 광화문에 들렀다"며 "우리도 성적 때문에 부담이 큰 것은 마찬가지지만 고1 애들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로 불쌍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집회를 계기로 학생들 입장에서 대입 제도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실망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의 고1 학생(16)은 "한 1만명은 모일 줄 알았는데 너무 속상하다"며 "원래 계획된 추모제와 같이 하는 바람에 고1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작아진 것도 아쉽다"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경기도에서 온 다른 학생(16) 역시 "이렇게 적게 모일 줄 알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다음 주에도 두발 규제 폐지 행사가 있는데 그 때는 좀더 많이 모였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그는 "하지만 오랜만에 우리 목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은 좋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장에는 김지하 시인,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지하 시인은 "프랑스 사회 전체를 뒤흔든 1968년에도 고등학생들이 최초로 문제를 제기했고 그것을 대학생, 지식인, 노동자들이 받아 안은 것"이라며 "이번 고등학생들의 목소리에서 그런 기운이 느껴져서 현장에 한번 와 봤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들이 좀더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너무 틀에 짜인 분위기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교육 당국-경찰 초긴장 경계, 일부 학생 발걸음 돌리기도**
추모제가 열리는 광화문 인근에는 행사 시작 전부터 서울시교육청 및 각 학교 관계자들 1백여명과 경찰 60개 중대 6천명 가량이 행사장을 에워싸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버스로 폴리스 라인까지 만들어놓았던 경찰은 7시경 대부분의 병력을 철수했다.
한편 이런 경계 때문에 광화문을 찾은 학생들이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행사장 길 건너편에서 만난 고1 학생 셋은 "횡단보도를 건너다 학교 선생이 보여서 여기에 서 있는 것"이라며 "집회에 참석하지 말라는 학교 지시 때문에 친구들이 많이 참석을 포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집회장 뒤편에 서 있던 고1 학생 둘도 "행사장에 들어가면 사진이 찍힐 것 같아서 여기 서 있는 것"이라며 "사진이 찍혀서 학교에서 알기라도 하면 진짜 '찍힌다'"고 집회 참석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주최측은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집회 참석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을 경우 즉시 연락을 취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희망'측 관계자는 "학생들이 혹시 이 일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는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안도, 다음주 토요일 집회설 경계하기도**
한편 애초 내신등급제 등 새 대입 제도에 대한 고1 학생들의 대규모 불만 촛불 집회로 번질 가능성을 염려했던 교육부 등 교육당국은 모인 학생 수가 적은 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다음주 토요일에 또다시 촛불 집회가 열릴 가능성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분위기다.
실제로 5일부터 일부 고교생 사이에 '중간고사가 완전히 끝나는 14일에 집회를 하자'는 문자 메시지가 퍼진 적이 있고, 14일에는 두발 제한 폐지 문화제가 같은 장소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부산, 대구, 대전 등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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