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입장을 밝힌 데 이어, 믿었던 미국마저 오는 9월 안보리 가입 문제를 매듭짓자는 일본측 주장에 부정적 견해를 밝히자 일본 정부에 초비상이 걸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는 이에 당초 북방 4개섬 갈등 문제로 불참을 밝혔던 러시아 승전 60주년 행사에 참가를 검토하는 등 상황 반전을 위해 부심하는 분위기다.
***미국 "안보리 개혁, 인위적인 시한 설정에 반대"**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시린 타히르 켈리 국무장관 선임보좌관(유엔개혁담당)은 이날 유엔총회 연설에서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이 제시한 유엔개혁안과 관련, 유엔 안보리 이사국 확대에 대한 '기한 설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난 사무총장은 이에 앞서 오는 9월 유엔 정상회담에서 안보리 이사국 확대를 비롯한 모든 개혁안을 일괄타결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일본은 이에 전폭적 지지 입장을 밝혔었다.
타히르 케리 선임보좌관은 아난 총장이 제시한 개혁안중 안전보장, 인권, 테러, 대량살상무기 등에 대해서는 전폭적 지지 입장을 밝혔으나, 조급한 안보리 개혁이나 부채탕감, 최빈국 원조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특히 안보리 확대와 관련, "인위적인 기한을 설정하는 것에 반대하며 안보리 확대는 총회에서의 투표 결과가 아니라 '콘센서스(합의)'에 기초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날 중국의 왕광야(王光亞) 유엔 대사가 유엔 총회 연설에서 안보리 확대와 관련, ▲모든 지역 그룹과 각 회원국의 이익을 고려한 합의에 의한 계획 결정 ▲안보리 개혁에 인위적인 기한 설정이나 합의가 결여된 제안을 투표로 결정하지 말 것 등을 요구한 것과 상당 부분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미국이 중국의 반대를 의식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지원하던 종전 입장에서 한걸음 후퇴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닛케이(日經)>신문은 이와 관련, 미국측이 기한설정에 반대의사를 내놓은 것은 유엔 개혁안 처리에 신중한 중국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사히(朝日)>신문도 일본이 중국과 한국 등 이웃나라와의 관계가 악화된 데다 미국이 소극적 자세를 보임에 따라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전략이 큰 타격을 받게됐다고 분석했다.
***아난 총장도 "한-중-일 당사국들이 해결하기를 희망" 발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7일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유럽봅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한국-중국 등이 반대하고 있는 것과 관련, "당사국들이 해결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일본의 <지지(時事)통신>이 전했다.
그는 아시아 각국 사이에 문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일본의 상임이사국 가입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사무총장이 아니라 가맹국들"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달말 안보리 개혁안을 제출하며 "상임이사국에 아시아에서 두 나라가 새로 들어온다면 그중 한 나라는 일본이 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일본 가입 지지 입장을 밝혀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종전 입장에서 한걸음 후퇴한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비상 걸린 고이즈미, "러시아 승전 기념식에 참석하고 싶다"**
이처럼 기류가 미묘하게 변화하자, 미국의 절대지원을 믿고 당초 9월 상임이사국 진출을 자신하던 고이즈미 일본 정권에 초비상이 걸렸다. 자칫하다간 상임이사국 진출에 제동이 걸리면서,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생명에도 일대 위기가 도래할 지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8일 일본의 <마이니치(每日)> 신문에 따르면,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내달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러시아 승전 60주년 기념식 참가여부와 관련,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가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종전에 국회 일정을 이유로 불참을 밝혔던 것과 180도 달라진 태도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동안 러시아에 북방 4개섬 반환을 요청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2개섬만 반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승전 60주년 기념식 불참을 통고해 러시아를 불쾌하게 만들었고, 이에 푸틴 대통령은 당초 예정됐던 상반기중 일본방문 계획을 하반기로 늦추는 등 양국간에는 북방 4개섬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따라서 고이즈미 총리의 급작스런 입장 변화는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러시아를 진정시키는 동시에, 조지 W. 부시 미대통령등 세계 주요정상들이 대거 참석하는 60주년 행사에 참석해 '9월 가입' 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다목적 포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미국의 전폭적 지원과 '돈의 힘'만 믿고 한국-중국-러시아 등 주변국과 영토분쟁 및 왜곡교과서 분쟁을 서슴치 않아온 일본이 부메랑을 맞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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