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지 보도를 통해 지난달 29일부터 시행된 '5%룰'에 강력반발했던 외국계 자본들이 '5%룰'에 따른 재신고에서 자금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등 불성실한 신고로 일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국계, "5%룰'에 노골적 저항**
3월29일부터 마감일인 지난 2일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재보고 접수 현황에 따르면, 재보고 접수건수는 1천4백76로 접수비율은 93.1%였으며 관리종목을 포함한 1백9개사가 아직 재보고를 하지 않았다. 이들 경영참가 목적 보고자의 투자 대상 기업은 유가증권시장 6백88개사, 코스닥시장 8백97개사 등 모두 1천5백85개사였다.
국내 특정 기업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주주는 2천8백여명으로 그 중 외국인은 약 2백40명이다. 이번에 외국인 71명, 즉 전체의 30%가량가 이번에 경영 참가 의사를 밝혔다.
특히 지난 2년간 SK(주)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하며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아왔던 소버린은 지난 2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5%룰’ 개정에 따라 새로 신고한 주식 등의 대량보유 상황보고서를 통해 SK와 LG전자, LG 등에 투자한 목적을 ‘수익창출’에서 ‘경영참가’로 정정해 재보고해 주목을 끌었다.
SK 14.85%를 취득한 데 이어 올들어 LG와 LG전자 주식을 각각 7% 이상 매입한 소버린자산운용은 이번 보고에서 “LG와 LG전자의 주주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법으로 경영에 영향을 줄 의사를 갖고 있다”며 (주)LG와 LG전자의 경영참가를 분명하게 선언했다. 소버린은 SK에 대해서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이사회에 권고하거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등 주주로서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행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소버린은 관심을 모아온 투자 자금의 성격과 관련, ‘자기 자금’이라고만 밝혀 구체적인 출처보고를 거부했다. 소버린은 “LG의 주식 1천2백7만9천2백주(7.0%)와 LG전자의 주식 1천6만6백60주(7.2%)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식 취득자금 9천7백49억4천5백만원은 모두 자기자금”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증권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해 3월29일부터 특정회사 주식을 5% 이상 매입할 때 투자 목적과 함께 자금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도록 제도를 강화했다. 기존의 '5%'룰은 자금의 출처와 관련해 종전까지는 자기자금과 차입금, 기타자금을 구분하고 차입금에 대해서만 출처를 밝혔지만 자기자금과 기타자금에 대해서도 출처와 조성경위를 공개하도록 했는데도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주가조작 혐의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영국 현지조사까지 받는 등 물의를 빚고 있는 헤르메스 연금운용의 경우는 투자목적을 애매하게 기술해 투자자들에게 오히려 혼란만 주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헤르메스는 지난해 12월1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물산이 외국인 투자자들에 의해 적대적 M&A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삼성물산 주가가 폭등하자 불과 이틀만에 보유중인 삼성물산 주식 7백77만2천주(5%)를 주당 평균 1만4천6백4원에 전량 매각해 주가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투자회사다.
헤르메스는 7.03% 지분을 가진 현대산업개발 이외에도 현대해상화재보험. 한솔제지. 솔본 등에 대해서도 경영참가용 지분보고서를 냈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경영참가 관련 10가지 세부항목 모두에 대해 의사가 '없음'이라고 밝혔다.
대한해운 주식을 21.09% 보유하고 있는 네덜란드계 골라LNG와 사이퍼러스 소재 투자회사인 게버렌트레이딩(현대상선 8.9%), 템플턴자산운용(현대산업개발 18.53%) 등 3개 외국인투자자도 재보고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외국계에서는 영국계 투자사인 슈로더투자신탁운용만 이번에 한샘 등 20개 거래소.코스닥 상장사에 대해 `경영참가 목적용' 지분보유 보고서를 제출했다. 특히 슈로더투신운용은 한솔홈데코의 지분을 27.7%나 보유하며 최대주주인 한솔제지(45%)에 이어 2대주주에 올랐다. 슈로더투신운용이 지분(잠재지분 포함)을 5%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서 경영참가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밝힌 상장사는 한샘. 빙그레. 단암전자. 우영. 코콤. 인터엠. 아비코전자. 네패스. 케이스. 삼진엘앤디. 대창공업. 뉴인텍. 대현. 쌈지. 한솔홈데코. 태평양제약. 제이엠아이. 데코. 우리별텔레콤. 모아텍(이상 20개) 등이다.
***외국계 30%만 '경영참가' 변경보고**
이처럼 외국자본 신고가 불성실한 것은 현행 '5%룰' 자체에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재보고 미이행의 경우 지분분산으로 5% 이상 주주가 없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5% 이상의 지배적 대주주가 보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제재대상이 된다. 또 이번에 공시하지 않은 대주주는 단순투자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만일 경영참여를 하고 싶다면 투자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꾸어 금감원에 다시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대형 글로벌 펀드 가운데 보유목적을 '단순투자'로 그대로 유지해 보고한 캐피털그룹, 템플턴 에셋매니지먼트, JF에셋매니지먼트, 피델리티, 모건스탠리IMC 등이 향후 보유목적을 변경하더라도 뒤따르는 제재는 미약하다. 5일간 의결권 행사가 제한되는 것 이외에 다른 제재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또 보고를 누락했거나 허위 보고한 것으로 드러나도 지분 처분명령을 받거나 징역 1년 또는 5백만 이하의 벌금형의 형사처벌에 그친다.'단순투자'로 신고한 후 경영에 참가해도 이를 명확하게 입증하면 허위 기재 혐의로 처벌할 수 있지만 그나마도 실질적 입증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헤르메스처럼 보유목적을 '경영참가'라고 변경해 놓고도 10개 세무항목 모두 '없음'이라고 기재한 경우 나중에 '기재사항 변경' 신고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이번 재보고 내역을 분석한 결과 자금 출처 등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고 판단, 제도 보완을 검토하고 있어 향후 대응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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