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 교회를 27년간 이끌며 역대 3번째로 긴 재위기간을 보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일 저녁 9시 37분(현지시간) 84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교황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서거 공식 발표**
호아킨 나바로 교황청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교황이 2일 저녁 9시 37분(한국시간 3일 새벽 4시 37분) 처소에서 선종했다”고 공식적으로 교황의 서거 소식을 발표했다.
성명은 이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6년 2월 22일 작성한 교황령인 ‘주님의 양떼’에 따른 모든 절차가 가동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교황령인 ‘주님의 양떼’란 바티칸이 교황의 죽음을 처리하는 절차와 후임 교황을 선출하는 규칙을 규정해 놓은 문서다.
교황청 국무차관인 레오나르도 산드리 추기경도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7만여 신자들에게 “우리 모두는 오늘 저녁 고아가 된 듯한 느낌”이라며 교황 선종 소식을 알렸다고 AP통신 등 세계 언론이 전했다.
바티칸측은 이어 “교황의 시신은 4일 오후가 지나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추기경회는 4일 오전 10시에 소집될 예정이며 이 회의에서 교황의 장례식 날짜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은 교황의 장례식이 6일에서 8일 사이에 거행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통신은 전했다.
교황은 최근 요로 감염에 따른 패혈성 쇼크로 심장과 신장 기능이 약화되면서 급격히 병세가 악화됐으며 2일 아침에는 고열이 시작돼 점차 의식을 잃어갔다. 그는 또 지난달 31일에는 중병에 걸린 신자들이 고통을 덜고 구원을 기도하기 위해 드리는 병자성사까지 받기도 했다.
교황청은 그러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신의 장례식과 안치될 곳에 대해 유언을 남겼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최근 몇 세기 동안 대부분의 교황들은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에 안치됐으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고국인 폴란드에 묻힐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각국 신자 및 정부 서거 소식에 애도 물결**
한편 교황 서거 소식과 함께 이를 알리는 조종이 바티칸 시티에 울리기 시작하자 바티칸 시티와 성 베드로 성당에 모여있던 신자들은 충격에 빠진 듯 침묵에 휩싸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베드로 성당에는 전세계 각지에서 온 가톨릭 신자들이 애도를 표하기 시작했으며 일부 신자들은 조용히 성가를 부르면서 교황의 서거를 추모하는 분위기다.
교황청 관계자들은 또 성베드로 대성당 앞 계단에 도열한 채 가톨릭 역대 성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위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성당앞에 모인 신자들은 이를 따라하며 애도 행사를 진행했다.
세계 각국 정부는 교황 서거 소식에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조기를 게양하는 등 교황의 마지막을 기렸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발표하고 “가톨릭 교회는 지도자를 잃었다”면서 “세계는 인간 자유의 옹호자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지칠줄 모르는 평화의 수호자인 교황의 서거 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으며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도 “세계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무신론자들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종교 지도자를 잃었다”고 추모했다. 아울러 이탈리아 정부는 3일간의 애도의 날을 선포했다.
***역대 3번째 긴 재위기간의 비이탈리아인 교황, ‘종교간 화해 주력한 보수주의자’**
교황이 서거하자 교황의 일생과 업적, 의미에 대해 세계 언론들은 집중 조명하는 분위기다. 1978년 10월 58세의 나이로 교황에 즉위해 로마 가톨릭 역사상 많은 의미있는 기록을 남긴 교황이기도 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우선 60세 이전에 교황이 돼 지난 1백30여년만에 최초로 60세 이전에 교황에 오른 인물로 기록됐다.
하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는 무엇보다도 비이탈리아인 출신 교황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었다. 비이탈리아인이 교황이 된 것은 4백56년만의 일로 근대 들어 항상 이탈리아인이 교황을 맡아왔다는 점에서 당시 상당한 놀라움으로 평가됐었다. 교황은 폴란드 태생으로 초초의 슬라브 민족 출신의 첫 교황이기도 했다.
교황의 26년간의 재위 기간도 성 베드로, 비오 6세에 이어 역대 3번째로 기록됐다. 역대 교황의 평균재위기간이 7.3년인 점에 비춰볼 때 4배에 가까운 기간동안 교황으로 봉직한 셈이다.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우선 1920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뒤 공산주의 치하에서 추기경으로 올라 유럽 공산주의권의 민주화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아울러 그는 90년대 들어서는 종교간의 화해와 과학과 종교간의 화해에 주력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실제로 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으며 99년에는 티벳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도 만났다. 게다가 동서 로마 분리와 함께 갈라섰던 러시아 정교회와도 화해를 모색했으며 2001년 5월에는 교황으로선 처음으로 시리아 수도 다마수크수의 이슬람사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또 재임 27년동안 1백여차례 해외 순방을 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 등에서 여러차례 살해위협을 받기도 했었으며 지난 1981년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암살범의 공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그러나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가톨릭 교회의 정통적 가르침을 지나치게 고수해 비판을 받기도 한 지극한 보수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피임과 낙태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대하는 자세를 취했으며 특히 사제결혼 및 여성 사제 등에 대한 각종 칙령은 진보적인 신자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차기 교황 선출 주목, 최초의 흑인 교황 탄생 가능성도**
한편 교황이 서거함으로써 차기 교황의 선출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교황 서거 시에는 사후 15~20일 사이에 성 베드로 대성당 내 시스틴 성당에서 80세 이하 추기경들이 참석하는 비밀회의(콘클라베)를 열어서 차기 교황을 선출한다. 콘클라베는 ‘열쇠로 잠근다’는 뜻의 라틴어로 실제로 회의가 시작되면 후임 교황 선출이 끝날 때까지 추기경들이 모인 건물의 청동문이 봉쇄되고 모든 문과 창문도 납으로 봉하던 전통에서 비롯됐다.
이번 콘클라베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1백17명의 추기경들은 과거에는 ‘나는 교황을 뽑는다’라고 적혀 있는 직사각형의 투표용지에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총투표 수의 3분의 2 이상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투표를 했었으나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규칙을 바꿔 30여차례의 투표에도 3분의 2이상의 득표자가 안나올 경우 과반수 득표자를 교황으로 선출하도록 했다.
투표 결과는 시스틴 성당에서 투표용지를 태울 때 나오는 연기 색깔로 알 수 있으며 검은연기는 선출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선출됐으면 화학약품을 섞어 흰 연기를 피워 알린다. 차기 교황이 확정되면 그는 ‘수용한다’는 말로 공식 확인하고 추기경단 의장은 성베드로 대성당 중앙 창문에 나타나 라틴어로 “하베무스 파팜(우리에게 새 교황이 생겼다)”라고 선언하고 신임 교황의 이름을 발표한다.
이런 절차에 따라 선출되는 차기 교황을 두고서는 현재 이탈리아 출신이 다시 교황직을 승계해야 한다는 주장과 가톨릭의 확산과 전인류적 포용을 위해선 더 이상 이탈리아인 교황에 연연해선 안된다는 목소리로 양분돼 있다. 가톨릭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교리해석에 보수적, 제3세계 출신, 60대후반 내지 70대 초반, 오랜 교구 목회 경험 및 교황청 내부사정도 잘 아는 추기경이 선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거론되는 주요 추기경들로는 최초의 흑인 교황으로 유력시되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프란시스 아린제 교황청 신앙성성 수장, 극도로 보수적이지만 사회적 부정에는 당당하게 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다리오 카스트리욘 오요슨 콜롬비아 추기경, 호르헤 마리오 베르호흘리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등 여러 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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