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후소샤 교과서 채택 확산을 위해 일본 문부성 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교육위원회 등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공작을 펴온 사실이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에 의해 폭로됐다.
문부성은 그러나 이같은 규정 위반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양심세력을 비판하는가 하면 <산케이신문> 등 일본 극우언론은 이들을 '매국노'로 매도하는 등, 후소샤 교과서를 둘러싼 일본 정부 및 극우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특히 4년전과 달리 이번에는 일본의 집권자민당을 비롯해 도쿄도지사, 일본대기업들까지 일제히 나서 후소샤 교과서 채택을 지원하고 있어 그 파문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새역모 '후쇼사 교과서' 사전유출, 교육위원회 채택 로비**
교도통신 등 일본언론에 따르면, 다카시마 노부요시 류큐(琉球)대 교수와 우에스키 사토시 관서(關西)대 강사는 11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교과서 검정 주무부서인 문부과학성에 대해 새역모의 '후소샤 교과서'의 문부성 규정 위반 사실을 폭로한 뒤 후소샤 교과서에 대한 문부성의 검정 신청 수리 취소를 요구했다.
다카시마 교수는 “새역모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신청본(백표지본)이 문부성 규정을 위반하고 2개 현의 3곳 지방자치체 교육위원회 관계자에게 유출되고 있다”면서 “일부 관계자들은 후소샤로부터 받았음을 증언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일본 문부성은 지난 2001년 교과서 검정 당시 후소샤 교과서 등 교과서 검정 신청본들이 공개되면서 국제적 파문이 일었던 것을 의식, 2005년도 교과서 검정부터는 신청본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실시 세칙'을 규정했었다. 신청본을 '백표(白表)지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교과서 검정 심의관들에게 어느 회사 교과서인지 사전 정보를 주지 않기 위해 표지를 하얗게 칠하는 데서 연유했다.
그러나 후소샤는 교과서 신청 출판사 8개사 가운데 유일하게 이같은 규정을 묵살하고 사전에 교과서 채택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육위원회에 은밀히 교과서 채택 사전 운동을 벌인 사실이, 다카시마 교수 등의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된 것이다. 후소샤는 지난 2001년 0.04%에 불과했던 교과서 채택률을 이번에는 10%(13만권)으로 끌어올리고 10년내 '중학교 최다 역사교과서'를 만든다는 목표아래 보수성향의 교육위원회를 대상으로 맹렬한 로비활동을 펴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일본 우익의 간판격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후소샤 교과서 전폭 지지 입장을 밝히며 도쿄도 교육위원회에 새역모 회원과 지지자들을 대거 진출시킨 상황이어서, 일본 최대도시인 도쿄에서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들이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일본 최대그룹인 도쿄미쓰비시공업과 마루베니 등 1백여개 대기업이 새역모 후원자로 참여하고 있는 등, 그 위세는 결코 만만치 않다. 도쿄미쓰비시공업 등은 일본 군국주의시절 군수물자 생산 등을 통해 부를 축적했던 기업들로, 이들도 과거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짙은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이밖에 일본집권자민당도 얼마 전 지방의원 연맹에 공문을 발송해 후소샤 교과서 채택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는 등, 4년전과 달리 이번에는 일본의 지배세력이 후소샤 교과서 채택을 위해 전면으로 나서는 양상이다.
***문부성 도리어 "다카시마의 백지교본 공개 유감"**
다카시마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후소샤의 '문부성 규정' 위반 행위를 폭로한 뒤, “후소샤만 사전에 선전 활동을 실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면서 문부성에 대해 사실 관계 조사 및 검정신청 수리 취소를 요구했다.
다카시마 교수는 또한 자신이 입수한 후소샤 교과서 복사본을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보도진에 배포하고 “이 교과서는 각지 교육위원회에 유출된 것을 손에 넣은 것이며 연구자 등이 보기를 원한다는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지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일본내 양심세력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다카시마 교수의 기자회견에 대해 문부과학성의 한 간부는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백지교본이 공개된 것은 유감"이라며, 도리어 다카시마 교수의 후소샤 교과서 공개를 비난했다. 문부성은 후소샤의 사전 유출 행위 조사 등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했다.
이는 외견상 중립을 표방하고 있는 문부성이 내심 후소샤 쪽으로 경사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이는 내달초 검정 발표때 문부성이 후소샤 교과서의 역사왜곡 내용을 대폭 승인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낳고 있다.
실제로 현재의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상은 자민당내 극우의원 모임인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의 좌장으로, 후소샤 교과서의 전폭적 지지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6월 이 모임 집회에서 "후소샤 교과서는 일보전진"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역사교육연대 "日문부성, 후소샤 비호 의혹"**
이와 관련 11일 새역모의 개정판 교과서를 공개했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도 기자회견에서“새역모는 2001년 자신의 교과서 채택률이 저조한 이유를 사전정보 유출에 있다고 판단, 문부성에 신청본 사전유포를 엄격히 금지하도록 요구했었다"며 "그러나 새역모측은 그후 판단을 바꿔 2005년도판 교과서 신청본을 후소샤 영업사원을 통해 전국 각지에 배포했다”고 밝혔다.
요컨대 후소샤 교과서 개정본의 사전 유출을 통해 국제적 논란을 야기함으로써 홍보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일본내 우익들의 반발을 초래해 교과서 채택률을 높이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 제기다.
연대측은 “이는 문부성의 규정에 어긋난 행위이지만 문부성은 후소샤 직원에 의한 신청본 유출에 어떤 대처도 하지 않고 있다”고 문부성의 묵인행위를 비판했다.
***<산케이신문>, 日양심세력을 한국과 내통하는 매국노로 매도**
<산케이신문>은 12일 “다카시마 교수 등의 행위는 외압을 재촉하는 정치활동”이라고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신문은 “신청본 복사본을 국내외 언론에게 나눠준 것은 난폭한 행위”라며 “이는 마무리단계에 있는 교과서 검정에 외압을 넣으려는 검정 방해 행위이며 교과서 검정 제도 그 자체를 파괴하려는 위험한 정치활동”이라고 비난했다.
신문은 또 11일 한국 역사교육연대의 후소샤 교과서 내용 공개 및 기자회견에 대해서도“한국과 중국이 후소샤 교과서의 검정 불합격을 요구하는 내정간섭을 실시했다”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이날 또다른 기사를 통해서도 “한국 언론이 이미 반일 켐페인을 시작했으며 일본내 일본교원노동조합계 단체나 지식인과 함께 비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면서, 일본내 양심세력을 매국노로 몰아갔다.
신문은 “한-일 공투(共鬪) 움직임이 활발하다”면서 “각종 세미나 등에서 일본 학자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초청돼 한국과 함께 후소샤판 교과서 비난이나 일본 정부 비판, 일본의 애국심 교육 등을 비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신문은 또 “일본내 새역모 반대세력은 한국의 반일 감정을 이용해 검정 및 채택에 압력을 가하는 데 있어서 2001년 이상으로 한국으로의 '정보 통보'가 눈에 띈다”며, 일본내 양심세력을 계속 매국노로 매도했다.
신문은 이어 한국에서의 후소샤 교과서 비판에 대해서도 “고압적인 비난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한 뒤, “한국에서는 이밖에도 독도를 둘러싼 영토 문제에서의 반일 감정도 고조되고 있다"며 일본국민을 자극했다.
***<아사히>외에는 한국의 거센 반발 보도조차 안해**
이처럼 <산케이 신문>이 일본우익을 선동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내 양심언론으로 평가받는 <아사히 신문>은 “한국 언론이 11일 ‘2006년부터 사용되는 중학 교과서의 검정에 후소샤의 역사 교과서 내용이 밝혀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며, 한국 사회의 들끓는 역사왜곡 비난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교과서 내용이 식민통치를 미화하고 있고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음을 보도한 뒤 “후소샤 교과서는 변함없이 자국 중심주의적 사관에 입각해 지극히 유감스럽다. 과거의 잘못을 합리화해 이웃 국가의 역사를 얕보고 있으며 역사인식문제해결을 향한 지혜를 짜내는 노력을 보다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대책반을 통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 나갈 것"이라는 한국 외교통상부 당국자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최대부수를 발행하는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 신문>은 후소샤 개정교과서에 대한 한국의 거센 반발을 보도하지 않고 이날 다카시마 교수의 기자회견 내용만을 간략하게 보도했고, <마이니치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아사히 신문> 한곳만 '외로운 사실 보도'를 하고 있는 양상이다. 일본사회의 우경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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