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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난 아이, 불안했던 시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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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난 아이, 불안했던 시절들"

산골 아이들 <13> 학교를 떠난 탱이를 보면서

'탱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지난해까지'를 어찌 쓸까 머릿속에서 생각을 가다듬는 사이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 어디서 탱이에게 학교를 그만 두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탱이가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쓰는 걸 지켜보았다. 바로 내가 쓰려고 하는 내용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나는 나대로 글을 쓰려니 '나는 왜 그리고 어떻게 글을 쓰나?', 하는 생각해 본다.

내 글은 처음에도 밝혔듯이 내 이야기. 자연에서 살아가는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내가 겪고 느낀 이야기다. 대학 입학 철에 보면, 누가 바라던 대학에 입학을 못하면 당사자보다 그 부모가 더욱 상처를 받는 걸 보곤 한다. 나 역시 그런 면이 있다. 탱이는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편안하고 담담하게 써내려 간다. 누가 정리해 달라니 자기 삶의 여유로 글을 쓴다. 나는 어떤가? 컴퓨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있는 힘을 다해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글 쓰고 읽기 좋게 탱이와 상상이 이야기를 나누어 써 보겠다. 필자.

***내 안에 있는 작은 학교**

그러나 학교 문은 학교 정문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 마음속에 내 뼛속 깊이 새겨 있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지만,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잘해야 한다는. 아니,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더욱 잘해야 내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찌 해야 하나? 시계가 째깍째깍 돌아가듯 우리 삶도 알차게 째깍째깍 돌아가야 할 텐데……. 학교에 보낼 때처럼 긴장을 풀지 않고 뭔가를 찾아 헤맸다. 내가 자라면서 귀에 딱지가 앉게 세뇌당한 게 무엇인가. 공부 잘하는 애는 촌음을 아껴 써 쉬는 시간에 노는 게 아니라 전 시간에 배운 걸 복습을 한다, 뒷간에서 볼일 볼 때 영어사전을 외워 영어사전 한 권을 다 외웠다……. 이런 신화를 부러워하며 자란 사람답게 내 머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돌아갔다. 째깍째깍.

학교를 그만 둔 다음날 우리 식구와 이웃 몇을 초대해 탱이 '집학교' 입학식 비슷한 걸 했다. 기념으로 라일락도 옮겨 심고, 이웃 덕담도 들었다.

학교는 다니지 않지만 탱이가 늦잠을 자거나, 놀면서 지내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할 텐데……. 그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탱이와 나는 겨울방학 때 하던 걸 살려 함께 공부를 했다.

느즈막히 아침을 먹고 치우고, 햇살이 좋은 마루에 앉아 공부를 했다. 마음에 드는 영어책을 골라 함께 읽었다. 집에서 학교를 연 셈이니 숙제가 빠질 수가 있나. 오늘 읽는 대목을 한번씩 써 보라든가, 문법 풀이를 해보라거나……. 철저한 선생노릇을 했지. 탱이가 나중에 하는 말이 그때 '엄마가 오늘은 안 잊어버리나' 했단다.

사교육을 해보니 교육효과는 정말 좋았다. 영어 실력이 부쩍부쩍 늘었고, 얼마 안 가 탱이는 영어동화를 읽어나갔다. 이렇게 공부해 나가면 명문대 입학은 따 놓은 당상일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가 사교육 선생이 되고 집이 학교가 되는 게 순리일까? 그래서 신문에 나오게, 최연소 대학 입학이라든가, 아니면 명문대 입학을 바라는 건가? 아니었다. 그건 아니었다. 한발 물러서서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탱이에게 혼자 공부하고 그걸 정리해 내게 들려달라고 했다.

그때 함께 공부하며 인상 깊었던 것 하나. 탱이가 수학에서 함수를 공부할 때다. 탱이가 혼자서 공부한 함수를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탱이 설명을 들으며 나는 도대체 함수가 무엇인지 그걸 알고나 있나 싶었다. 그래서 내가 탱이에게 "함수가 뭐야?", 하고 물었다. 아, 황당한 질문! 문제풀이법을 물어보았으면 술술 대답할 수 있을 텐데 엉뚱한 걸 묻네 하는 얼굴로, 탱이는 "그런 이야기는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아요", 우리는 교과서를 뒤적여 보았다. 단원 맨머리에 함수란 무언지 쓰여 있었다.

탱이는 지금까지 그동안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교과서에 나온 문제를 열심히 풀었지, 그 단원에서 무엇을 배우는 건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발견했다.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긴 하는데 왜 하는지는 모른 채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 째깍째깍 시계가 돌 듯 공부도 째깍째깍 해나가려 했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걸 어찌 막으랴. 우리는 바뀌기 시작했다.

***다시 판이 짜이고**

가만 보자. 내가 학교에 다닌 게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탱이 초등학교 6년. 모두 22년. 내 인생의 반 이상을 학교에 다니며 보냈고, 직접 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때도 늘 학교와 관계를 맺고 살아왔다. 그런 사람이 자식이 학교를 그만 두었다고 하루아침에 바뀔 수가 있겠나.

탱이 외가에 가면 낮은 목소리로 걱정을 하신다. "공부에 지장은 없게 잘 하고 있냐?", 심지어 탱이를 서울로 올려 보내라고 말하신다. 그러니 탱이는 어른들이 걱정 안 하시게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서울을 갈 때면 가방에 책을 넣어가 보란 듯이 공부를 한다.

그러나 방학 전에 아무리 공부계획을 세워도 사흘을 못 가 흐지부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대세는 이미 바뀌었다. 다만 사람이 그걸 모르고 안달복달을 할 뿐. 하루 시작부터 바뀌었다. 전에는 시간 맞춰 일어나야 했지. 하지만 이제는 절로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잘 수 있다. 일찍 깨면 나하고픈 일을 하면 되고, 늦잠을 자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다. 안방에서 시계가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 불안한 눈길로 시계부터 보는 게 아니라 새소리를 들으며 이불 속에서 뒹굴거나 산나물을 하러 뒷산을 한 바퀴 돌고 올 수 있다.

아이들 역시 늘어지게 자곤 했다. 그래도 너무 늦게 일어나면 게으른 습관을 들여 주는 게 아닌가 싶어 큰소리로 말하거나 쿵쿵 소리를 내곤 했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가 실컷 자게 두게 했다. 그리고 내가 늦잠을 방해하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 덕에 아이들은 늦잠을 잘 수 있었다. 탱이 키가 쑥쑥 자랐다. 한 달에 일 센티씩. 작은 키였던 탱이 얼마 뒤에 키가 큰 아이가 되었다.

하루 시작이 바뀌었듯 우리 집 우리 식구가 바뀌었다. 그걸 어찌 말로 설명하나? 결혼 전하고 결혼하고 나서 바뀌지. 하루 일과도 인간관계도 생각도 사회적 위치, 경제력……. 그만큼 커다란 변화. 어쩜 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거다. 처녀 총각이 아닌 남편과 아내, 다시 엄마 아버지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듯 우리 앞에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 소개**

무주 산골에서 자급 농사를 하며 자연에 눈 떠가고 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맛을 나누고 생각이 서로 이어지는 이와 만나고 싶어 틈틈이 글을 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두루 할 수 있는 전인이 되고 싶다.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 펴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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