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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적, 숲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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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적, 숲의 영혼

〈김봉준의 붓그림편지 12〉

숲에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평소 말수가 적습니다.
숲에 사는 동물처럼 조용히 삽니다.
때로는 동물들과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물고기가 하는 말도 듣고, 물고기도 사람 말을 알아본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넉두리를 잘합니다.
숲에 있는 모든 것은 사람이라며 말을 건냅니다.
숲에서 나무를 하거나 약초를 취하거나 낚시나 사냥을 하면서 삽니다.
노루 사슴 등 짐승을 잡으면 이웃들과 반드시 나누어 먹습니다.
숲속에 모든 짐승들과도 나누어 먹습니다.
이웃과 나누어 먹지 않으면 다음번 사냥이 안 된다고 믿습니다.
그는 때로는 먼 숲으로 사냥을 떠납니다.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남들은 유목민이라고 부르지만 흔히 말하는 초원의 유목민이 아닙니다.
양떼를 모는 베드윈족이나 대평원에서 말을 타고 멀리 가는 몽골유목민이 아닙니다.
이웃이 서로 싸우면 싸우지 말라고 조용히 낮은 소리로 타이릅니다.
그래도 싸우면 노래를 불러주어 사람의 영혼을 진정시켜줍니다.
슬프고도 단순한 그들 조상의 노래로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그러면 싸우던 사람들은 화가 누그러진답니다.
그는 숲에서 발자취만 보고도 무슨 동물이 지나갔는지 정확히 알아냅니다.
누가 언제쯤 지나갔고 어디서 쉬었다가 갔으며 다리를 다친 사람이 있었던 것까지도 알아맞춥니다.
노루는 소금기 땅을 좋아하지만 아카시아나무는 아주 싫어한다는 등 각종 동물의 생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안개의 흐름과 메아리 소리를 듣고 언제 쯤 비가 내릴 건지도 예감합니다.
시냇물소리를 듣고 멀리서 홍수가 밀려오는지 예측합니다.
바다에 배가 떠다니는 듯한 신기루는 자연의 그림자라고 여깁니다.
그가 말하는 그림자는 일종의 영혼입니다.
동물과 식물이나 바위, 물, 불, 구름 같은 모든 존재와 비존재에는 영혼(하냐라)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는 숲의 영혼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인간이 잠든 사이에 영은 육체를 벗어나 제멋대로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보고 듣습니다.
그것이 바로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미생물도 영혼이 육체에서 이탈한다고 봅니다. 똑같은 사람으로 보니까요.
신기루도 영혼이 떠돌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현대도시문명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랑이가 아닌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다시 숲으로 가겠다며 아내가 기다리는 산으로 뚜벅뚜벅 갔습니다.
그러다가 헤프츠일산 어귀에서 도시인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그는 연해주에서 살았습니다.
고구려와 발해, 금나라, 청나라가 있었던 곳이지만 당시는 러시아 땅입니다.
1907년 그곳에서 만난 러시아 탐험가 블라디미르 클라우디에비치를 만납니다.
그는 토착 종족 나나이족 사람이고 이름은 '데르수 우잘라'입니다.
나는 요즘 〈데르수 우잘라〉(김욱 번역, 갈라파고스 출판)라는 러시아 인류학자 블라디미르 크라우디에비치가 쓴 극동시베리아 탐사기를 읽고 그의 영혼에 매료되었습니다.

나나이족(고리드족, 여진족 또는 어피족이라 부르는데 모두 같은 종족)은 우데헤족과 함께 남방 퉁구스족 중 하나랍니다. 알타이어 계통으로 우리 겨레와 어순이 같고 혈족도 우리와 근친한 동북아 종족입니다. 고조선, 고구려, 부여족을 예맥족이라 하고, 몽골과 거란계를 몽골족이라고 하고, 여진과 말갈족 등을 숙신족 계통이라고 합니다. 중국 화족의 역사서에서는 이를 모두 동이족라고 불렀습니다. 동이족은 화족의 농경문화와 맞서서 동아시아의 세력다툼을 벌이면서 기원전 1만 년 전에서 5000년 전에 알타이에서 동진하며 청동기문화를 가지고 동북아로 정착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여진족과 말갈족과 고려족은 근친족입니다. 고구려와 발해를 같이 건국한 혈맹족이기도하고 국경을 긋고 적대하던 종족이도 합니다. 이들은 고대에는 옥저이고 여진으로 불리다가 후에는 청나라를 세우는 만주족의 시조족이 되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종족의 왕을 낳는다는 천손족 신화가 우리와 같고 죽으면 영혼이 하늘로 날아간다는 생각이 우리와 같습니다. 꿈을 꿀 때나 샤먼이 영매를 하면 영혼은 유체이탈하여 떠다니는 영혼-부혼浮魂으로 이승과 저승을 자유롭게 떠돈다고 봅니다. 데루스 우잘라는 죽은 아내를 맞이하러 불을 피우고 영매굿을 합니다. 평소에 아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아내의 영혼에게 던져줍니다.

동북아시아는 전통문화적으로 공통의 샤만문화권입니다. 데루스 우잘라가 모든 존재와 비존재에 영혼이 깃들고 있다고 믿는 것도 우리 민속문화 전통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나이 마을에는 솟대와 장승을 세워서 액을 막고 샤만 나무에 소원댕기가 펄럭입니다. 연해주에 지금도 살고 있는 나나이족이나 우데헤족은 대부분 숲과 강에서 사냥과 낚시를 하며 삽니다.

데루스 우잘라도 동북아시아 숙신족입니다. 문화적으로는 샤만문화권 종족의 전형적 인물입니다. 책에서는 그 인물을 신비한 동양인으로, 때로는 문명인과 다른 야만인으로 묘사합니다만 유일신을 믿는 러시아 정교인의 눈으로 보니 그렇게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은 기본적으로 따듯한 관찰자의 시선이 있어 다행히도 근대주의 물결이 밀려오기 전 숲에 사는 동아시아족의 삶 양식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동북아시아인이 스스로 자기를 기록한 생활풍속기가 없으니 참 귀한 책입니다.

우리의 고대 문화양식은 어떠한 것일까. 동북아시아 종족들의 신앙과 사유체계는 또한 어떠한 것일까. 우리가 까맣게 잃어버린 조상의 문화를 찾아보려면 데루스 우잘라의 삶을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우리 조상들도 고대에는 대부분 숲에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문화는 도시의 거대문명을 만들며 살아온 종족이 아닙니다. 동북아시아 몬순 기후대는 위도가 높은 지구대에 있으면서도 숲이 무성한 대지입니다. 전통적으로 숲과 마을을 이루며 살았던 소사회 대자연 공동체를 '숲 문화'로 만들어 왔습니다.

동북아는 같은 북방의 유럽이나 중동과 다르게 빙하기 피해가 적었다고 합니다. 빙하기를 거친 뒤 유럽에 식물 개체수가 5000종일 때 동아시아에는 3만 종이나 존재했다고 합니다. 야생 채소가 천지에 널려 있어 동아시아는 풍부한 식물종 다양성으로 특유의 채집·농경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극동의 몬순기후는 가을을 길게 하고 겨울 혹한을 줄일 수 있어 활엽수와 초지가 무성한 지역입니다.

나는 10여 년 산골 숲에서 살면서 "예전에는 이 땅 거의 모든 마을이 숲으로 에워 싸인 마을이었겠구나!" 절감했습니다. 읍내까지 20리 길인 우리 마을은 오래된 흙길인데 언제나 풀과 나무가 제 세상인 듯 가로막아서 도로 숲으로 돌아가는 것을 매년 보고 살았습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없었던 그 옛날 이 땅에서는 언제나 원점은 숲이었습니다.

산골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보았던 모습과 데루스 우잘라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마을은 옛부터 사냥을 즐기고 사냥감을 잡으면 이웃과 꼭 나누어먹고, 대지의 모든 것에는 사람처럼 영혼이 깃들고 있다는 마음에 들에서 고사를 수시로 지냈답니다. 귀한 식물을 채집하거나 사냥을 하거나 농사를 시작하고 수확할 때마다 고사를 지내 온 마을 전설도 들었습니다. 하늘과 바람을 보고 날씨를 예감하고, 숲에서 먹을 풀과 독초를 잘 구분할 줄 아는 '숲의 슬기'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조상들이고 우리 민족의 주류민간문화사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국가주의 이후 개념입니다.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국민국가주의 내에서 또는 반식민지 투쟁 속에서 공고해진 것이 민족개념입니다. 그러다보니 민족보다 더 구체적인- 혈연적 지역적 소사회적인 인류족의 세밀한 이해와 국가와 국경을 넘는 광대한 유관성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통치의 영토적 개념 안에 인류족의 문화를 가두어서 본다면 민간의 정주와 이주의 역동적 문화사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동북아시아 소사회 종족공동체문화는 몇가지 섬세한 연구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들 사유체계의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영혼주의, 종족간의 국제민주주의 제도인 화백회의, 지역간 소량생산품의 물물교환으로 시작한 종족간의 우호적 유통망인 호혜시장, 자연과 인간의 영혼을 모두 '사람의 영혼'으로 보는 숲 문화(풍류)를 오늘의 학제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수 만년 숲에서 살다가 이제는 도시를 이룬 동아시아의 현대문명마저 숲을 인간의 독점적 소유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숲에 있을 때는 누구도 독점 할 수 없었던 대지와 숲을 대상화하면서 하루아침에 인간은 자연마저 사유화합니다. 그러나 숲은 하늘의 공기와 마찬가지로 공생하는 것이지 결코 인간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데루스 우잘라는 서양인이 본 동아시아의 야만인이 아니라 우리가 버린 우리의 위대한 조상입니다. 러시아 문호 고리키는 그 책을 읽고 데루스야말로 '우리가 이룩한 문명에 대한 심판자이며 감히 넘볼 수 없는 예술의 본질을 일깨운 선구자'라고 평합니다. 숲의 영혼을 알았던 동아시아족의 슬기는 데루스 우잘라처럼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연해주 동아시아의 숲에서는 그 위대한 정적이 살아 있습니다. 그 숲의 영혼이 숨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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