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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와 독감은 '하나'가 아니다"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32> 감기와 독감의 경계에서

이젠 추위가 한풀 꺾였지만 겨울이 가기 전에 한두번 한파가 올지 모릅니다.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면 여기서 콜록, 저기서 콜록, 감기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아지지요.

물론 날씨가 추워진다고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추운 곳에서는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들이 살 수 없어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극처럼 아주 추운 곳에서는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도시처럼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겨울이 되면 날씨가 춥고 건조해져서 사람들이 실내로만 모이게 되고, 환기도 나빠서 실내 공기는 금방 오염되어 버립니다. 이 중에 감기 환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오염된 공기는 삽시간에 퍼져 여기저기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지요. 따라서, 겨울철 감기 예방법 중 가장 간단한 것이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 것과 만약 이런 곳에 다녀왔을 때에는 집에 오자마자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입 속을 가글하여 행여나 붙어왔을지 모를 감기균을 떨구어내는 것입니다.

저런, 벌써 감기에 걸렸다구요? 지끈지끈 맹맹, 머리도 아프고 열도 나고, 콧물은 줄줄 흘러 휴지를 아예 달고 살고 기침과 재채기에 배까지 아프다구요? 그렇다면 도대체 이 감기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감기와 독감은 같은 것일까요?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독감과 감기는 다릅니다. 감기란 어떤 종류이든 하여간 바이러스가 기도(氣道) 주변에 염증을 일으켜 목이 아프고 열이 나며 콧물이 흐르고 기침이 계속되는 현상을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이렇듯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종류가 여러 가지이고 감기의 증상만을 봐서는 어떤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특별한 치료약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우리가 흔히 감기약이라고 불리는 물질은 무엇이냐구요? 감기약은 거의 대부분 감기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죽이는' 약이 아니라, '감기의 증상을 없애주는' 약일뿐입니다. 이렇게 병의 원인이 아니라 병의 증상만을 없애는 방법을 '대증 요법'이라고 하는데, 감기약은 대표적인 대증요법 치료제로, 기침이 나니까 기침을 줄여주고, 콧물이 흐르니까 콧물을 마르게 하고, 열이 나니까 열을 내리게 하는 작용을 할 뿐입니다.

그러나, 독감(influenza)은 다릅니다. 독감은 원인이 분명하며 예방 백신과 치료제(amantadine)가 존재합니다. 우리말로 독감이라고 하기 때문에 단순히 '독한 감기' 정도로 인식되지만,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기도 감염을 의미하는 말로 대부분 감기보다는 증상이 훨씬 심각하고 지독한 것이 특징입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유전자 타입에 따라, A, B, C, D 네 가지 타입이 있는데요, 이중에서 사람에게 유행성 독감을 앓게 하는 것은 주로 A형으로 그 해에 유행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최초로 발견된 곳의 지명을 따서 이름을 짓게 됩니다. 그러니까 만약 홍콩 A형 독감이라고 하면 홍콩에서 최초로 발생된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걸리는 독감이라는 뜻이지요.

이처럼 독감은 분명한 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예방 백신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가을이 되면 동네 의원이나 보건소에서는 독감 예방주사 백신을 들여놓고 사람들에게 주사를 놓아주곤 합니다. 그러나 독감 백신은 한 번 맞으면 평생 면역력이 지속되는 BCG(결핵백신)이나 간염 백신과는 달리 매년 맞아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심해서 해마다 조금씩 유전자 타입이 다른 돌연변이가 출연하기 때문입니다. 즉, 올해 유행하는 독감 바이러스와 작년 것은 다르기 때문에 예방주사도 다시 맞아야 하는 것이죠. 작년 가을에 일어났던 '물백신' 파동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온 사람들이 몰리자, 백신이 모자라게 된 일부에서 작년에 쓰다 남은 백신을 주사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었지요. 작년과 올해는 유행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자 타입이 다르기 때문에, 이는 효과가 떨어지는 백신이었고 이에 언론에서는 '물백신'이라 칭하며 이런 백신을 놓아준 의사들을 성토했었지요.

그럼 독감 백신은 어떻게 해서 만드냐구요? 독감 백신은 세계에서 발병된 독감 바이러스를 분석해 올 겨울에 유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리해내, 이를 수정된 달걀에 주입해서 이에 대한 항체를 얻어서 정제한 것이랍니다. 따라서, 백신을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 수정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달걀이나 닭고기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맞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급성 쇼크 현상으로 독감에 걸리는 것보다 더욱 위험해질 수 있거든요.

또한 백신이 체내에 들어와 완전한 면역력을 갖추게 되기까지는 2~3주가 걸리니까, 이왕이면 독감이 유행하기 전(9~10월)에 맞아두는 것이 좋답니다. 독감 자체는 치명적인 병이 아니지만, 노약자나 호흡기 질환이 있는 사람의 경우, 폐렴이나 호흡곤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접종을 해두는 것이 좋지요. 물론 건강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맞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답니다.

여기서 조금 역사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봅시다. 독감을 비롯한 질병과 인류와의 역학관계에 대해서 말이죠. 우리는 독감에 걸리면 며칠 앓고 나면 낫는다고만 생각하지, 독감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요. 그러나 독감은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무서운 병입니다. 설마 병자나 갓난아이가 아니고서야 독감 따위로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1918년, 최악의 인플루엔자가 전세계를 휩쓸었을 때에는 무려 2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하찮은 독감으로 사망했던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독감은 무시할 수 없는 병입니다.

1918년에 일어난 독감의 대유행은 곧이어 벌어진 1, 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를 모두 합한 수를 너끈히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기에 학자들의 관심과 투쟁의 대상이 되었기에 결코 가벼이 볼 질환은 아니랍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독감이 많이 유행한다는 소식도 전해지지 않고 있고, 한동안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사스도 별다른 소식이 없어 다행입니다. 그러나, 미래는 모르는 일이니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는 필수적이겠지요.

사실 감기든 독감이든 바이러스성 질환은 아주 간단한 생활 수칙만으로도 거의 대부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즉, 외출해서 돌아왔을 때는 손발을 깨끗이 씻고, 무리하지 않도록 컨디션을 조절하며, 수분과 비타민 C를 충분히 섭취하고 가능한 한 감기 환자와의 접촉을 피하는 것 말입니다. 그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성인들은 충분히 감기나 독감의 예방이 가능하기에 그리 겁낼 것은 없답니다.

그러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어린아이나 노약자, 혹은 호흡기 질환이 있으신 분들은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서 방비를 튼튼히 해두는 것도 좋습니다. 아주 드문 예이지만, 감기나 독감이 잘 낫지 않고 오래되면 폐를 침범해 폐렴을 일으킬 수도 있거든요.

다행히도 지금은 폐렴에 잘 듣는 항생제들이 많이 나와 있긴 하지만, 진행이 빠른 폐렴은 무엇이든 일어난 뒤에 대응하는 것보다 일어나기 전에 막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 여러분 모두 알고 계시지요? 얼마 남지 않은 올 겨울은 감기나 독감에 걸리는 일 없이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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