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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인 매듭이 풀려나가듯이..."

산골 아이들 <10> 산속 생활 이모저모

***꼬인 매듭이 풀려나가는……**

여름 저녁이면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멧돼지 일가가 어슬렁거리는 산골. 거기는 내게 새로운 세계였다. 자연도 새로웠고 거기 사는 사람들도 뜻밖이었다. 우리가 가서 살던 그 동네는 서울서 살다 자연을 찾아 내려온 사람이 꽤 있었다. 우리랑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삼거리 소 키우는 아저씨는 알고 보니 남편 대학 선배, 우리 주인집, 탱이 친구 현이네는 서울 살다 몸 요양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집이다. 시골 사람만 시골서 사는 줄 알았던 내게 나 같은 도시 사람이 산골에 살고 있다는 건 놀라운 발견이었다.

아이들 자라는 모습도 모기 좋았다. 탱이 어릴 때 소, 염소, 토끼 모두 책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진짜 소를 보게 되면, "자 봐, 저게 소야. 그 책에서 본 소 그거." 이제 상상이를 키우면서는 살아있는 소를 오며가며 본다. 그러다 어느 날 책에 소가 나온 걸 본다. 아이가 사물을 인식하는 순서가 제대로다. 꼬인 매듭이 하나하나 바로 풀려나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산골 이웃들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인상 깊은 자매가 있다. 우리 옆집에 살았는데 그 자매는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미국 기독교방식의 홈스쿨링을 했다. 나는 홈스쿨링을 하는 집을 처음 보았을 뿐 아니라, 집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독학을 하고 검정고시를 본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건 가정형편이 어려워 어쩔 수 없어서이지, 자기 선택에 따라 집에서 공부를 할 수도 있구나!

그 집은 말 그대로 홈스쿨링을 했다. 시간을 정해 오전 몇 시간 공부하고, 점심에 쉬고 오후에는 음악과 노작(집안일과 농사일)을 했다. 아이들은 우리 집에 놀러왔다가도 시간 맞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교재는 미국서 가져오기도 하지만 주된 교재는 성경이라고 했다. 그때 사학년이었던 작은애 공부 과목을 살펴보다 '내 몸'이라는 과목이 있어 무릎을 치며 공감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집 큰애는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켰다. 가까이 바이올린을 가르칠 선생님이 보이지 않아 어떻게 배웠냐니까 <바이올린독본> 책을 보여주며 책에 다 나와 있단다. 악기도 혼자서 배울 수 있구나! 그때까지 나는 악기는 누군가에게 배워야 하는 줄 알았던 거다.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도시로 나가니, 친구들이 수영을 배우더란다. 촌에서 자란 자기는 걸음마 하듯 물에서 수영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부잣집 아이일수록 수영을 돈 내고 배우더라고. 전에는 그 말을 흘려들었는데 내가 바로 수영을 돈 내고 배우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 집 큰애가 중2 나이였을 거다. 우리 집 수도에 이상이 있다니까 그 애가 나를 데리고 수도관을 따라 물을 처음 받기 시작하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물길을 점검해 주었다. 자연에 살려면 우리가 받아먹는 물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걸 그 아이가 가르쳐 주었다. 그때 그 아이가 얼마나 커 보였는지.

한번은 상상이가 다쳤다. 피가 철철 흐르는 애를 차에 태워 병원에 다녀오니, 상상이 이불이 깨끗이 빨려 널려있다. 그 아이가 빨아 널었단다. 정말 사람이 달라보였다. 요즘 중2 아이가, 아니 내가 중2때라면. 생각도 못할 일을 그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그 자매와 이웃해서 산 기간은 얼마 안 되지만, 내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아이들은 나이가 차면 학교에 가서 배워야 하고, 아이 때는 철없다가 결혼해 자기 살림을 살아야 철이 조금씩 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당연할 때는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조차 몰랐다가, 이제야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알게 된 거다.

우리가 이루려 했던 공동체가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다. 정부가 특성화고등학교(보통 대안학교라 함)법을 만들면서 인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산골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자던 우리는 대안학교 교사인 직장인이 되어야 했다. 그 학교는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며 굴러갔지만 우리는 처음 우리가 꿈꾸던 삶을 찾아 그곳을 떠나기로 했다.

여러 사람의 기대 속에 태어난 대안학교. 정부의 인가까지 받은 그 학교를 만든 사람으로 그곳을 떠나는데 어찌 아쉽지 않았겠는가. 어쩌면 서울을 떠날 때보다 더 아쉬워하며 떠난듯하다. 그러나 우리 길이 아닌 데야. 사람에게는 사람마다 자기 길이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면소재지 학교에서의 새로운 생활**

산청에서 생활은 2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앞으로 어찌 살아갈까 하는 이정표를 정할 수 있었다. 말로 정리하면, 자급자족, 삶이 곧 교육이다, 전인. 이런 마음을 먹었기에 자급자족 농사를 하고 살아갈 땅을 찾았다. 자연으로 이사는 처녀총각이 결혼하는 것과 비슷한 듯하다. 인연이 닿아야 하는 거리라.

지도책을 들고 전국을 돌아보다 이곳 무주에서 땅을 소개받았다. 난생 처음 와 본 곳이지만 단 한번 먼발치에서 보고 계약이 되었다. 논 1천평. 농사지을 우리 땅이 생겼다. 우리 사정을 안 마을 아저씨 도움으로 마을 빈 집을 빌려 살 수 있게 되었다.

탱이는 4학년 올라가 다시 한번 전학을 해야 했다. 이곳은 초등학교가 면소재지에 있고 학교에서 노란색 버스를 보내 아이들을 실어 나른단다. 탱이는 전학 다니기 싫어했지만, 어차피 분교가 없어져 본교로 옮겨가야 하던 때라, "다시는 전학하는 일 없기"로 약속하고 받아들였다.

분교시절 아이들이 발야구라도 하려면 전교생이 다 모여야 했다. 그러나 탱이가 새로 옮긴 면소재지 학교는 한 학년이 두 반인 전교 12학급인 시골서는 큰 학교였다. 2년만이지만 분교에 다니다 와서 그랬는지 반 대항 시합이 열릴 수 있다는 게 무척 감개무량했다. 학교 안에는 컴퓨터실도, 급식 실도 있다. (지금은 새로 지어 실내 수영장까지 갖추었다.) 앞뒷문에 문방구겸 구멍가게가 있고, 조금 걸어가면 중․고등학교도 있다.

전학을 가려면, 누구나 긴장을 하기 마련이다. 탱이 역시 아이들이 어떻게 대할지 긴장을 했다. 그런데 막상 부딪쳐 보고는 친구들이 모두 친절하단다. 담임선생님이 나이 지긋한 여선생님으로 따뜻이 보듬어 주셨다.

그때 있었던 일 하나.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탱이가 친구네 집에서 잠을 잤다. 그때 우리 부부는 새롭게 살아보려 했기에 이사도 우리 힘으로 했다. 이삿짐부터 우리 힘으로 옮기기로 했다. 새 학기가 이미 시작되었으니, 급한 대로 간단한 가재도구만 챙겨 무주 집으로 옮긴 뒤 이웃의 1톤 트럭을 빌려 짐을 옮겼다. 한번에 못해 몇 차례 움직였다. 탱이는 새로 전학한 학교를 빠지기 싫다고 친구네 집에서 잠을 자보겠단다. '그러면 됐다.'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시골 학교를 다녀보니, 경쟁이 심하지 않고 엄마들 치맛바람도 별로 없다. 선생님 말씀이 한글을 못 깨우치고 오는 아이가 있어 도시 학교와 달리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단다. 뜻을 함께 하는 집이 몇 집 되면 학교 운영위원에 참여해 작은 학교의 장점을 살릴 수 있겠다.

우리 면은 산골 면 가운데는 꽤 큰 곳이다. 서울로 가는 직행버스가 서고, 오일장이 서며 작지만 할인마트도 있다. 탱이네 반 친구는 반 이상이 면소재지에 살았다. 부모님이 장사를 하거나 직장을 다니시는 아이들이다. 농사를 짓는 집은 손꼽을 정도고 거기서 반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아이다.

알고 보니 우리 집은 탱이네 반에서 가장 멀고 외진 곳이었다. 하루에 면까지 버스가 네 차례 다녔는데 버스조차 없는 산골에 있다 여기 오니 버스가 다니는 대처 같았지만, 면에 사는 사람들 눈에는 외지고 서글픈 곳이었다. 탱이는 여기서도 꽤 별난 부모를 둔 아이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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