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趙紫陽) 중국 공산당 전 총서기의 장례식이 거행됐지만 유족과 당국이 '자오 재평가' 및 유골 안치문제로 이견을 보여 자오의 유골은 다시 베이징 시내의 자택으로 돌아가며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장례식 끝났지만 자오 유골 다시 집으로**
30일 <밍바오(明報)> 등 홍콩 언론에 따르면, 자오의 유족들은 “당국과 유골 안치문제에 합의를 보지 못해 장례식을 치룬 뒤 당분간 자오의 유골을 베이징 자택에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자오의 유골은 29일 장례식 이후 당초 안치될 예정이던 바바오산 혁명열사공묘에 안치되지 않고 자택으로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으며, 자오의 사후 평가 문제를 둘러싸고 자오의 유골 안치문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당초 혁명열사 공묘에서 장례식을 치른 뒤 자오의 유골은 공묘내 1실에 안치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당국이 이에 난색을 표시한 데다가 이날 중국언론이 자오를 혹독하게 비판하자 유족들이 분노, 유골을 자택으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자오가 1989년 톈안먼 사태로 실각당하기는 했으나 중국 지도자 반열인 공산당 총서기를 역임한 만큼 중국 지도자급들만이 있는 공묘내 1실에 안치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당국은 그의 ‘과오’로 인해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공묘내 1실은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이나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 국무원 부총리 및 공산당 정치국 위원 이상만 안치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이날 갈등은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자오를 엄중비판한 데 따라 발발했다.
이날 장례식이 끝난 뒤 신화통신은 자오 장례 소식을 5백자 정도로 간략한 보도했고, 중국 국영 CCTV 등 중국 대다수 언론도 통신 내용을 토대로 장례 소식을 했다. 신화통신은 보도에서 장례식 소식과 참석자 명단을 간략히 전한 뒤 자오가 병상에 있을 당시 쩡칭훙(曾慶紅) 국가 부주석이 당 중앙을 대표해 병문안을 했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그러나 이어 자오와 관련, “개혁개방 이전 시기에 자오 동지는 공산당과 국가의 중요 영도직책을 맡아 당과 인민의 사업을 위해 유익한 공헌을 했다”면서도 “그러나 1989년 봄여름사이의 정치풍파 기간에는 엄중한 잘못을 범했다”며 기존의 평가를 되풀이했다.
이 보도를 접한 유족들은 중국정부에 강력항의하며 유골을 자택으로 가져갔고, 이 소식을 접한 조문객들은 자오 자택에 조문을 오면서 중국당국을 긴장케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례식에 서열 4위 자칭린 등 참석. 中언론 “자오 엄중 잘못”**
한편 신화통신에 따르면, 장례식에는 중국 권력 서열 4위인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과 허궈창(賀國强) 정치국 위원, 왕강(王剛)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 화젠민(華建敏) 국무원 판공청 비서장 등이 참석했다.
아울러 공산당 중앙 판공청, 중앙 조직부, 국무원 판공청, 정협 판공청 등이 조화를 보냈으며 광둥성 및 쓰촨성 성위원회 등에서 보낸 조화도 눈에 띄었다고 <밍바오> 등이 전했다. 이외에 중국 당국의 조화 반대편에는 개인 명의의 조화들이 놓여있었으며 이에는 차오스(喬石) 전 전인대 상무위 위원장, 룽이런(榮毅仁) 전 국가부주석, 톈치윈(田紀雲) 전 전인대 부위원장, 아페이(阿沛) 등 당 원로들이 포함돼 있었다.
당초 예정보다 30분 빠른 오전 8시 반경에 시작돼 10시 반경에 끝난 유체고별의식에는 약 2천명 가량의 조문객들이 참석했으며 영결식장에는 ‘자오쯔양 동지를 침통하게 추모한다’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또 일부 조문객들은 “자오 아저씨 당신을 보러 왔습니다”라고 크게 울먹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장례식장 바깥에서는 자오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인파와 당국간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추모객들이 장례식장 입구에 모여 들어가려 했으며 삼엄한 경계를 펴던 경계경찰이 이들을 쫒아냈다. 경찰은 또 하얀색 전통 복장을 입은 일부 조문객들이 ‘자오즈양의 정신은 영원하다’는 글을 흔들자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기도 했다.
또 한 조문객은 “그는 우리의 좋은 총서기였다”며 “우리에게는 심지어 그를 애도할 권리도 없는데 중국에 인권이 어디에 있는가”라며 자오의 사진을 흔들기도 했다. 이밖에 일부 중국 대학생들도 바바오산 인근 전철역까지 왔으나 경찰들이 통제해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톈안먼 사태 당시 사망한 유가족들의 모임을 만들기도 한 딩즈린과 런완딩은 AP 통신에 “경찰이 아직도 집 밖에 있다”고 전해 중국 당국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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