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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서 어울려 사니 좋다"

산골 아이들 <5> 어울려 살기(下)

***내가 아이들과 친구가 된다**

자연에서 아이들과 살기 시작하며,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지 않은 걸 걱정했다. 우리 마을에 아이들 또래가 한 명만이라도 있기를! 아니라면 옆 마을에라도 있나? 하지만 우리가 사는 마을 가까이에 탱이 또래는 한 명도 없었고, 상상이 역시 동갑 친구는 없었다. 아이들은 또래와 어울려 놀아야 한다고 생각해 상상이를 데리고 차를 타고 또래가 있는 집에 놀러가기도 했고, 멀리 있는 유치원에도 보냈다.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 있으면서 네 식구가 함께 하루를 보낸다. 그러면서 아이들도 나도 바뀌었다. 부러 또래 친구와 어울려 놀지 않아도 편안하다. 식구들과 지내다 자연스레 또래와 어울릴 기회가 오면 그때 어울려 논다. 이렇게 살아보니 생각지 못한 좋은 점이 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첫 번째, 내가 아이들과 친구가 된다. 엄마인 내게 가장 가까운 친구는 탱이. 탱이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 역시 엄마. 엄마와 딸이 서로 친구다. 배낭여행을 할 때 모녀가 가장 좋은 짝꿍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모녀는 입맛부터 취향이 서로 비슷하다. 서로 다를 때도 서로 다른 걸 알기에 받아들이는데 익숙하다.

햇살이 가득한 오전, 차 한 잔 마시며 둘이 수다를 떨 때도 있고, 초저녁 무슨 의논을 하다 그대로 드러누워 배꼽을 잡으며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한다. 옷장 정리를 하다 패션쇼를 하기도 하고. 의기투합해 손 많이 가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엄마인 나는 이리 좋은데, 딸인 탱이는 어떨까? 탱이는 집에서 지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혼자 하고픈 대로 하루를 보내다, 아무 때고 엄마하고 수다 떨고, 아버지가 하는 대로 따라서 해 보고, 그렇게 잘 지낸다. 엄마와 친구를 하다 보니 탱이는 아줌마 아저씨들, 처녀 총각들과 잘 어울린다. 또 동생들과도 맞상대를 한다. 그러다 한번씩 훌쩍 여행을 떠난다. 친구네 가서 지내다, 함께 여행도 하고, 거기서 배우고픈 게 있으면 한동안 머물면서 배운다. 탱이는 두루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다.

탱이를 보면 나이는 어리지만, 자기 마음에 평화를 얻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중심을 잡는다**

상상이는 자기 누나에 견주면 또래가 있다. 같은 나이는 아니지만 몇 살 아래 동생들, 여덟 살, 여섯 살이 하나씩, 그 아래 다섯 살, 네 살 동생은 줄줄이 있다. 우리 동네는 귀농한 젊은이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애들은 태어나기는 도시서 태어나 어릴 때 귀농해 자라 귀농 1.5세대라 한다면, 이 아이들 대부분은 귀농 2세대다. 부모가 모두 산골로 귀농해 살면서 낳은 아이들. 병원에 가지 않고 자기 집 안방에서 태어난 아이도 있다.

상상이는 집에서 막내이지만 동네에서 맏형이다. 동생들이 가끔 우리 집에 놀러오기도 하고, 상상이가 놀러가기도 한다. 마을에 일이 있으면 아이들이 모이니 놀곤 한다. 동네 아이들이 놀 때 보면, 작대기를 하나씩 들면 마당과 길을 마음껏 쏘다닌다. 그러다 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모래더미로 뭔가를 만든다. 놀잇감이 따로 없어도 놀이터가 없어도 잘 논다.

어른들 일을 돕는 게 놀이일 수도 있다. 동네 처녀가 땔감을 할 때 동네 아이들이 하나씩 들어다 주었다고 고마워하는 걸 들은 적이 있고, 내가 김장독 둘레에 돌을 까는 일을 할 때 아이들이 작은 돌을 날라다 주어 일을 수월하게 마친 적이 있다.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놀이삼아 하지만, 아이 손길도 일손이 된다.

상상이는 동생들과 놀다 보면 동생한테서 배우기도 한다. 뛰어놀다 피가 나면 무슨 풀로 어떻게 피를 멈추는지 배워 오기도 하고, 지난 여름에는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동생한테 모자로 물고기를 낚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이곳 아이들은 간단한 공구 부리는 법-톱질, 호미질, 삽질, 망치질을 할 줄 안다. 아이들은 이런 공구로 놀이감이나 놀이터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서로서로 배운다.

동생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신나게 놀다 상상이 힘들어할 때가 있다. 네다섯 살 동생들이 따라다니면 떼놓고 싶어 할 때도 있다. 그 맘 때 아이들이 말귀는 못 알아들으면서도 눈치는 빨라 어디 호락호락한가? 답답해하면서도 어울리면 잘 논다.

아이들과 우르르 어울려 놀 때 보면 상상이는 흥분을 한다. 거기 견주어 혼자 놀 때는 평화롭다. 상상이 혼자 놀 시간이 많다 보니 혼자 노는 법을 터득했다. 상상이 혼자 노는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고, 여기서는 상상이에게는 '상상의 친구'가 여럿 있다는 것만 이야기 하겠다. 친구가 있다고 상상하면서 농구나 축구를 한다. 이렇게 상상으로 노니 자기 이름을 '상상이'로 했지. 상상이가 혼자 노는 맛을 알면서, 여럿이 어울려 놀다가 웬만큼 놀았다 싶으면 그만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상상이를 보면, 여럿이 어울려 놀건, 혼자서 놀건 중요한 것은 자기중심이 잡혀있는가에 있다는 걸 느낀다. 이게 두 번째 좋은 점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집에서 잘 지내니 나 역시 이웃집 마실을 적게 다닌다. 전에는 아이들 핑계 대고 서울까지 놀러 다니곤 했는데. 이제는 집에서 하루를 잘 지낸다. 집에서 식구들과 지낸 날 저녁. 하루가 꽉 찬 느낌을 받았을 때 그 놀라움이 지금도 생생하다. 식구란 게 이렇게 소중한 거구나.

아이들이 어릴 때, 식구들 사이에서 평화롭고 안온하게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부모가 가까이 있고, 집안의 기운이 편안하고 평화롭다면 아이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겠구나.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상상이가 어릴 때, 우리 집안의 기운이 평화롭지 못했다. 상상이 사회성이 '아직 좀~'인 거는 어쩌면 상상이 어릴 때 내가 제대로 못 해 주어서 일 수 있다. 시골 생활에 자리가 잡히면서 상상이가 많이 평화로워졌다. 식구들이 있으면 혼자 잘 놀고, 자기 욕구도 어느 정도 조절해 나간다. 상상이는 아직 식구들 품안에서 편안히 보내는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

***이웃사촌과 대가족으로**

식구의 소중함은 대가족으로 나아간다. 대가족의 발견,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좋은 점이다.

며칠 전에 옆 마을에 집들이가 있었다. 그날 우리 집은 김장 김치를 버무렸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다 버무리고 나니 늦은 시간에 가게 되었다. '갈 사람?' 하고 물으니 탱이도, 상상이도 나선다. 탱이는 열일곱 살. 부모 따라 다닐 나이는 아니지만 함께 간단다. 산 속에 새로 지은 집도 구경하고 싶었나. 집주인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가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나.

우리가 들어가니 마당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반긴다. 상상이는 어느새 동생들 속으로 휩쓸리고, 우리 부부와 탱이만 집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온 이웃들이 한 방 가득하다. 물론 아줌마 아저씨들이다. 탱이 또래는 있을 리가 없다. 몇몇은 벌써 술이 불콰하니 올랐나 보다. 집들이답게 팥죽이 있고, 떡이 있다. 그 사이에 끼어 앉아 막걸리를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사람들이 모두 탱이만 본다. 아줌마 아저씨들은 탱이를 보면 이야기가 나누고 싶은가 보다.

한창 탱이 덕에 왁자지껄 웃다가, 이야기가 흘러 여기서는 아이들이 저 알아서 자란다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아줌마 아저씨를 이모, 삼촌이라 부르며 삼촌 따라 차를 타고 놀러가기도 하고, 이모가 머리 깎아주면 머리를 깎는다. 산골에 와서 살아보니 이웃은 그냥 이웃이 아니라 이웃사촌이다.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이들은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는 물론 그 집 개 이름과 성격까지 모두 안다. 한마디로 대가족이다.

솔직히 어른들은 서로 피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아이들은 누구네 집에 가든 조카처럼 보살핌을 받는다. 우리 집에 놀러온 아이 입을 통해 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 집에 무슨 농사가 잘 되었는지 알기도 한다. 아이들은 차가 지나가는 것만 봐도 저 차가 뉘 집 차고, 왜 지나가는지도 알아 맞추곤 한다.

***필자 소개**

무주 산골에서 자급 농사를 하며 자연에 눈 떠가고 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맛을 나누고 생각이 서로 이어지는 이와 만나고 싶어 틈틈이 글을 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두루 할 수 있는 전인이 되고 싶다.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 펴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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