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제정구 의원을 비롯한 수십명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안기부(현재의 국가정보원)가 대북공작 차원에서 운영한 '위장 간첩단'에 의해 북한의 조선노동당에 입당돼 당원번호까지 받았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제정구 의원 등 자신도 모르게 조선노동당 입당돼"**
22일 발간된 <시사저널> 최근호는 "나는 정보부가 만든 위장간첩이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정과 안기부가 양성했다는 북한간첩조직 책임자 조모씨(63)(첩보명 '천보산')가 이같이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조모씨는 1970년과 1973년 두차례에 걸쳐 중정의 지령을 받고 북한에 넘어가 간첩 밀봉교육을 받은 뒤 다시 내려와 15년간 중정과 안기부의 요구에 따라 움직임 위장간첩조직 총책으로, 1970년 밀북당시 평양 근교 초대소에서 조선노동당 입당식을 갖고 당원번호 867번을 부여받았다.
조씨가 1970년대 초반부터 중정의 협조아래 꾸려서 북에 보고한 '위장간첩망'은 크게 노동운동계, 빈민운동계, 부산지역 책임자 및 경남지역 책임자 등으로 구성됐으며, 조씨는 1970년대 중반이후 중정의 묵인아래 본인 모르게 이들 운동권의 남한측 인사 수십명을 조선노동당에 현지 입당시켰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조씨가 서울에서 현지 입당시킨 당원 번호는 890번부터 이어졌으며, 여기에는 1999년 작고한 빈민운동가 출신의 고 제정구 의원을 비롯해 한 제약회사에서 노조운동을 하던 김모씨와 또다른 후배 홍모씨 등이 포함돼 있다. "제정구 의원의 경우 조씨의 고교동창으로 친구들끼리 가끔 경조사나 술자리에서 만났다는 것외에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고 조씨는 밝혔다.
조씨는 또 당시 신진자동차에 입사해 노동운동을 하던 고교동창 김모씨와 광주 대단지에서 빈민운동을 하던 또다른 김모씨도 자신도 모르게 북한노동당에 입당시켰다고 밝혔다.
***"북한, 박지만 납치계획 사전 차단"**
조씨는 이밖에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중정 지시로 북한 위장간첩이 된 후 북한이 내린 여러 지령을 중정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북한이 자신에게 내린 첫번째 임무는 통일혁명당 재건 서울시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은 김종태씨를 구출하라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당시 평양에서는 김종태씨를 구해내는 데 골몰하고 있었다. 비밀작전으로 당시 국민학교 6학년이었던 박대통령 아들 박지만군을 납치해 김종태씨와 교환협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때만 해도 육영수 여사가 아들을 서민적으로 키우겠다며 지나친 경호를 붙지 않도록 해서 납치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 이유였다"고 밝혔다.
조씨는 중정에 김종태구출계획(박지만군 납치계획)을 보고하자, 이후 박지만군에 대한 경호가 강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은 "조씨의 공작활동은 1985년까지 계속되었다"며 "그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중정-안기부와 함께 수많은 사회운동 관련 공작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열기를 주저했다"고 전해 조씨가 국내 용공조작에도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씨는 이와 관련, "국가는 나를 버렸지만 나는 아직 국가를 버리지 않았다. 내 모든 공작기록은 당시 중정 2국과 8국에 보관돼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씨는 이어 "천보산 공작망을 포함해서 중정이 북파한 다른 모든 위장 공작원도 정보사의 '북파 첩보원 보상특별법'에 준해 똑같이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 이같은 폭로가 보상과 무관히 않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사저널>은 이같은 사실을 보도한 뒤 "조씨 주장은 중정과 안기부가 공작실적을 올리기 위해 조작간첩을 무수히 양산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며 "'남한내 북한 고정간첩 5만명이 활동중'이라는 황장엽씨의 망명 일성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지적이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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