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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주면 공부는 저 알아서"

산골 아이들 <3>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

***아이들 공부 지도는 어떻게 하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 있는다면 사람들은 부모가 아이들을 잘 지도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집에 있고난 뒤 오히려 나는 아이들을 '지도할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시간 맞춰 일어나게 '지도할 일'이 없다. 밥 늦게 먹어도 되지. 세수 안하고 하루를 살아도 어떠랴. 옷도 편하게 걸치면 된다. 아이한테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할 게 줄어든다. 지금은 그저 아이들과 함께 살아주기만 하는 것 같다. 함께 먹고 자고 늘 곁에 있어주고,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럼, 공부는? 대번 질문이 날아온다. 그럼 나는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묻는 공부는 학과목 공부다. 그 질문에 직접 대답을 한마디로 하면 '잘 모른다.' 어떻게 부모가 그런 걸 잘 모를 수 있나? 지금이 어느 땐데. 고등학생 나이 자식을 둔 엄마가 아이 공부를 잘 모르다니……. 내가 생각 해 봐도 어이없지만 사실인 걸 어쩌랴.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를 모범생으로 마친 탱이는 집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모범생이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얼마 아니지만 자기대로 규칙을 정해 공부를 하곤 했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흐르면서 공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학과목 공부가 작은 원이라면 동심원이 넓혀져 왔다. 지금도 탱이는 성실하게 공부한다.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 만화책을 볼 때도 있고, 편지를 쓸 때도 있다. 그런 일도 공부라고 받아들인다. 자기가 필요해서 보는 거고, 쓰는 거니까. 팝송을 들으며 그 가사를 받아 적을 때도 있다. 그것도 공부라 이름 붙이면 공부다. 가마솥에 메주를 끓일 때 하루 종일 불을 지키기도 하고, 겨울이면 도끼질을 하기도 한다. 그것도 공부다.

초등학교 3학년 나이인 상상이에게는 가끔 한번씩 참견을 하곤 한다. '너, 공부 좀 해라. 하루 한번 조금이라도 공부를 해야지.' 내가 상상이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아직 상상이를 탁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상상이는 그런 소리를 안 하면 정말 공부를 안 할지 몰라. 우리말 쓰기를 배워야 하고, 산수는 해야 살아갈 텐데......'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상상이는 탱이처럼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제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잘 하지 않는다. 어떨 때는 꿈쩍도 안 한다는 기분이 든다. 대신 한번 마음이 내키면 한달음에 달려간다. 한번은 수학 교과서 한 권을 다 풀도록 모르고 지나간 적이 있다. 수학 교과서를 붙잡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한번 물어보지 않고 한 권을 다 풀다니……. 나중에 들여다보니 가끔 틀린 곳은 있지만 기본 원리는 알고 넘어갔다. 재미가 들려 자기가 문제를 내고 풀고 한다. 그러다 벽에 부딪치면 한 동안 수학책은 들여다보지 않으려 한다. 솔직히 상상이 이런 행동을 짐작하지 못했다. 탱이와 다르고, 나 어릴 때와 다른 새로운 모습이다.

집에서 공부하는 집 가운데 부모가 아이 하루 일과와 공부 양을 정해 지도하는 집이 있다. 그 집에는 공부시간도 있고, 방학도 있다. 한마디로 홈스쿨링을 하는 거다. 집이 학교고 부모가 교사. 우리는 거기 견주면 '저 알아서' 집안이다. 저 알아서도 좋지만, 너무 내버려 두는 건 아닌가? 아이들이 하루 한 시간도 공부를 안 해도 괜찮은가? 그러고도 속이 편한가?

***식구 서로서로 책을 돌려 읽으며**

공부 이야기를 하려니 어려워 몇 번을 썼다 지웠다를 한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우리가 지금 이렇게 공부하는 건 우리가 살면서 찾은 우리에게 맞는 방식인데,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내년에는 또 달라질 텐데……. 우리 식구는 책을 읽으면서 지식 공부를 한다고 하면 답이 될까?

우리 아이들은 시간이 많으니 책을 많이 읽는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책 좀 읽어라' 소리가 없다. 오히려 '날이 이렇게 좋은 데 방구석에서 책만 읽나? 나와 봐라.' 한다. 그러면 탱이는 '우리 엄마 같이 말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을 거야. 다른 엄마 같으면 책 읽어라 할 텐데…….' 궁시렁궁시렁하면서 마지못해 밖으로 나오곤 했다.

상상이는 남자애라 그런지 좀더 몸 움직이고 운동하는 걸 좋아하지만, 마당에서 뛰어노는가 싶은데 금방 방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마음에 드는 책을 잡으면 한달음에 끝을 낸다. 책 한 권을 붙잡으면 끝장을 본다. 도서관에서 책을 3권씩 빌려준다. 책을 빌려오면 상상이는 언제 그렇게 읽었는지 하루 만에 다 읽고, 다시 도서관에 갈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곤 한다.

요즘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가. 교과서부터 만화, 인문·사회·자연과학 교양서까지. 자기 호기심이 끌리는 대로 책을 읽으며 지식 공부를 한다. 집에 있는 책, 동네 마실을 다니며 이웃집에 있는 책, 그리고 도서관. 그래도 다 못 구해 대도시로 나들이를 가면 큰 책방을 들리고, 가끔 인터넷으로 책을 산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나면 자기가 읽은 책 이야기를 들려준다. 밥 먹을 때, 잠자리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고, 또 아이가 어떤 걸 읽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도 알게 된다.

탱이는 말솜씨가 좋아 탱이 이야기를 듣다가 둘이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기도 한다. 거기 견주면 상상이는 아직 조리 있게 이야기를 펼치지 못한다. 우리가 상상이 말을 못 알아들으면 탱이가 나서서 통역을 해주곤 했다. 탱이는 상상이 말을 한마디 들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아듣고 앞뒤 배경을 풀어주고 상상이에게 다시 마이크를 넘긴다. 그러면 우리는 상상이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 탱이가 신기했다. 어떻게 대번 아나? 물어보니, 탱이 말이 상상이가 읽은 책을 자기도 다 읽었기 때문에 상상이 말머리만 들어도 어느 책 어느 페이지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단다.

요즘은 남편도 상상이와 서로 통한다. 남편이 상상이가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에 재미를 들여서다. 상상이 자연과학을 재미나게 풀어쓴 책을 빌려오는데 남편이 한번 보더니 재미가 들렸다. 그 뒤로 상상이 책을 빌려오면 남편이 다시 상상이한테 빌려서 읽는다. 아들이 권하는 책을 아버지가 읽는 셈이니 둘이 서로 잘 통하지 않겠나.

책을 서로 돌려보거나 서로에게 이야기하는 걸 좀더 이야기해 보자. 나는 남편이 해 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현대물리학을 알게 되었다. 양자역학, 이기적 유전자, 카오스 이론……. 탱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덕에 무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디언 이야기, 유머를 늘 듣는다. 상상이 덕에 파브르 선생님을 알게 되어 곤충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독서를 안 하는, 해도 뻔한 것만 읽는 사람이다. 남편과 탱이는 서로 빌려온 책을 눈여겨보고 둘에 하나는 자기도 읽는다. '아, 나도 이거 빌릴까 했는데…….' 하면서. 상상이가 빌려온 책은 거의 탱이와 남편이 함께 읽는다. 그런데 나는 그 누구 책도 읽은 기억이 없다. 그저 식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만족하고 있다. 남편과 아이 둘은 폭넓은 독서를 하며 이 세상에 열려있다면 나는 내 앉은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닌가.

***농사를 하면서 자식 보는 눈이 바뀌어**

농사라 하면 누구나 머릿속에 땅을 가는 일을 떠올린다. 나 역시 농사하면 소 쟁기질부터 떠올랐다. 그런데 농사를 시작하며 우리는 한 배미씩 땅을 갈지 않고 농사하기 시작해 지금은 땅의 대부분을 갈지 않고 농사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까지 우리 자신도 두려움이 있었다. 이렇게 해도 될까? 농사도 망치고 남들한테 손가락질 받는 건 아닐까?

자식 농사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 두기까지, 그만 두고 나서도 한동안 두려움이 많았다. 이렇게 해도 될까?

한 해 한 해 농사를 지어가면서 도시내기인 내 몸과 마음이 조금씩 자연에 적응해 간다. 자연에 적응해 가면서 내가 곡식을 대하는 게 달라진다. 땅을 갈지 않고 농사하면서 우리가 열심히 하는 일이 있다. 땅을 가꾸는 일이다. 곡식을 거둘 때도, 우리가 먹을 부분을 뺀 모든 것을 땅으로 돌려주려 한다. 배추를 뽑으면 그 자리에서 다듬어 먹을 것만 추려오고 나머지는 다시 땅에 돌려준다. 곡식을 거두고 난 겨울 빈 밭에도 틈틈이 땅을 가꾼다. 볏짚을 덮어주고 밭둑의 풀을 베고, 산에서 검불을 모아 밭에 덮어준다.

올가을 고구마를 캐면서 고구마가 빠져나온 땅을 다독이고, 고구마 줄기와 못 먹을 고구마까지 그 자리에 남겨두면서 '우리는 곡식을 가꾸는 게 아니라 땅을 가꾸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땅을 공들여 가꾸고 그 땅에 맞는 곡식을 심으면, 땅이 하늘하고 함께 곡식을 길러주는구나.

우리 아이들 엄마로 내가 하는 일도 그렇다. 이걸 가르칠까 저걸 가르칠까 그런 계획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저 어미인 나는 내 손으로 농사한 걸 먹이고 늘 곁에 있어 준다. 무얼 가르치려 하기보다 하루를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줄 뿐이다.

***필자 소개**

무주 산골에서 자급 농사를 하며 자연에 눈 떠가고 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맛을 나누고 생각이 서로 이어지는 이와 만나고 싶어 틈틈이 글을 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두루 할 수 있는 전인이 되고 싶다.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 펴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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