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밤의 자식들이다. 인류는 산업 스모그나 인공 빛에도 전혀 희미해지지 않는 찬란한 별빛 아래서 진화했다. 기나긴 어둠의 시간 동안은 잠을 자거나 머리 위에서 움직이는 무수한 광점들을 지켜보며 경탄하는 것 이외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별들을 보면서 희망을 갖기도 하고 또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인류는 밤을 잃어버렸다. 도시나 그 근교에서 밤하늘을 보는 것은 혼잡한 시내 한복판에서 클래식 음악 공연을 듣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밤을 잃어버린 것은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긴 진화의 시간 동안 인류를 자극했던 인간의 정신에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앗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40년간 물리학과 천문학을 강의해온 챗 레이모가 쓴 <아름다운 밤하늘>(김혜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이 새삼 밤하늘로 눈을 돌려보라고, 대기오염과 수질오염과 마찬가지로 '광 오염'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당장 '천지창조'를 느껴보는 방법**
사계절과 열두 달을 감안한 12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 알파(생성)부터 12장 오메가(소멸)까지 완결된 구조로 밤하늘을 안내하고 있다. 그 안에는 오랫동안 강단에서 가르친 경험에 기반을 둔 과학 지식과 천문 관측 경험이 녹아들어 있고, 더 나아가 소멸에서 생성에 이르는 우주의 운명을 인간의 삶과 연결해 고찰하는 지혜가 숨어있다.
그는 지금 '천지창조', 우주의 탄생의 순간을 느껴보기 위해 가능한 불빛에서 멀리 떨어져 밤이 칠흑같이 어둡고, 별이 쏟아질 것 같은 교외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권유한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음반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접의자나 담요를 깔고 편안히 누워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올려다보라. 손가락을 CD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 위에 올려놓고 두 눈을 감아라. 긴장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잠시 기다린 뒤 '두 눈을 감은 채'로 '재생'을 눌러라. 정적. 어디선가 들려오는 다단조의 음울한 선율…그리고 목소리들이 "그리고 빛이 있었네"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두 눈을 떠라! 아름다운 다장조 선율. 갑자기 터져 나오는 강렬한 사운드. 찬란한 빛이 어둠을 일소한다!"
이렇게 눈을 떴을 때 눈앞에 펼쳐진 별, 행성, 밝게 빛나는 은하수의 강줄기. "(거의) 잊혀졌던 별빛이 쏟아지는 캄캄한 밤에 눈을 뜨는 순간 당신은 대폭발(빅뱅)을 목격한 듯한 황홀한 기분에 젖을 것이다."
물론 챗 레이모는 훌륭한 천문학 교수이다. <천지창조>와 우주 탄생의 순간이 아주 유사함을 지적하면서도 딴죽걸기를 멈추지 않는다. <천지창조>에서 '시간의 시작' 이전에 존재했던 어둠과 혼돈을 묘사하기 위한 서곡이 있는 것과는 달리 실제 우주 탄생의 순간, 대폭발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밤하늘에서 느끼는 신비**
이 책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유용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별자리 안내를 도와주기 위해 각 장의 앞에 실린 사계절 성도는 필라델피아, 시카고, 샌프란시코, 도쿄, 로마, 마드리드, 서울 같은 북반구 중위도 지역에 사는 관측자들을 위해 저녁 10시 정도의 밤하늘에 맞춰 그려진 것이다.
우리는 챗 레이모의 안내를 따라 지금이라도 당장 밤하늘을 관찰할 수 있다. 마침 별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계절인 겨울이다. 성급한 독자들을 위해서 챗 레이모가 알려준 안내를 잠시 소개한다. 주말에 교외로 나갈 일이 있는 독자들은 기억해두자.
밤 10시, 밤하늘의 별들이 보이는가? 우선 남쪽 하늘로 눈을 돌리면 겨울 밤하늘에서 가장 멋진 주인공인 오리온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오리온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사랑에 빠졌다, 아르테미스와 남매 사이인 아폴로의 고약한 심보로 연인의 활에 맞아 죽은 비운의 주인공이다. 늠름한 사냥꾼의 허리 부분에 똑같은 밝기로 빛나는 별 세 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위에 2개의 1등성과 2등성이, 아래에는 1개의 1등성이 빛을 발한다. 여기까지 찾았으면 이제 늠름한 사냥꾼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일만 남았다.
이렇게 오리온자리를 확인한 후에는 오리온의 몸의 방향을 따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길게 늘어진 뿌연 은하수를 확인할 수 있다. 은하수에는 마차부자리가, 오리온이 쳐다보는 시선에는 황소자리가 박혀 있다. 눈 밝은 독자는 동남쪽 하늘에서 쌍둥이자리까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반 고흐의 그림에서 보는 밤하늘의 진실**
이 책이 다른 별자리 안내서나 천문학 입문서와 차별되는 가장 큰 장점은 문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철학과 종교에 대한 성찰이 책 전체에 걸쳐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다. 한 권의 완성도 높은 문학 에세이로도 손색이 없다.
천체의 회전을 설명하는 장에서 그는 난데없이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을 상기시킨다. 이 그림은 고흐가 죽기 전 1년 남짓 머물렀던 남부 프랑스의 세인트 레미에서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기심 많은 천문학자들은 이 그림의 밤하늘 묘사가 고흐가 세인트 레미를 떠나기 직전의 4~5월의 밤하늘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말년에 광기에 사로잡혔다고 얘기되는 고흐였지만 엄밀한 관찰과 분석에 기반을 두고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물론 고흐는 과학적 사실주의에 멈추지 않았다. 고흐의 밤 그림들 속에 표현된 화려한 색깔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별들은 확실히 우리에게 혼란을 준다. 놀랍게도 챗 레이모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이 소용돌이들은) 정확한 사실보다 더 진실에게 인식하는 무언가를 환기시킨다." 이런 챗 레이모의 태도는 과학과 기술을 모든 것의 해결책으로, 유사종교로 받드는 현대 과학기술 시대의 무반성적인 태도와는 괘를 달리하는 성숙함이 보인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다음과 같은 고백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리학이 우리에게 주는 불가사의한 일들에 대해 말씀을 드리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인간은 불가사의한 자연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의 지성이 얼마나 불충분한 것인가를 명확히 알 수 있을 정도의 지성만을 타고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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