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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의 도시 예루살렘, 평화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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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의 도시 예루살렘, 평화는 어디에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예루살렘과 중동 분쟁

5월 14일은 이스라엘 건국기념일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 날이 갖는 의미는 전혀 딴판이다. 아랍사람들은 그 날을 아랍어로 '나크바'(Nakba, 대재앙)의 날로 부른다. 약 80만명이 살던 집을 잃고 쫓겨난 날이다. 땅을 빼앗긴 날이기에 국치일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서 이 날이 오면 가게 문을 닫고 학교도 문을 닫는다.

'나크바'(Nakba, 대재앙)의 날

해마다 5월의 그날이 오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대규모 시가행진을 벌인다. '싸다'라 부르는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이스라엘 곳곳에서 유대인들이 단체로 버스를 타고 몰려온다.

이날 밤 하이라이트는 동예루살렘 구시가지 '통곡의 벽' 광장에서 벌이는 야간행사이다. 여기에 참석한 많은 유대인들은 다마스쿠스 문 앞에서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어깨동무를 한 채 노래와 춤을 춘다. 그런 무리 가운데는 자동소총을 어깨에 맨 정착민들도 끼어 있다.

잇달아 전쟁에서 패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은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서 기도를 드릴 때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지켜보는 살벌한 분위기 아래, 때로는 군홧발에 엉덩이를 차이는 수모를 당하면서 예배를 드린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을 내몰고 싶다는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성문 위의 로마 병사와 이스라엘 병사

예루살렘은 역사의 숨결을 지닌 고풍스런 도시다.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을 거슬러 이 도시에 내리면, 그 때도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8개 성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동예루살렘 구시가지 북쪽의 다마스쿠스 문이다. 그 옛날 멀리 다마스쿠스(시리아 수도)를 바라본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따르면, 이름을 바오로로 바꾸기 전 사울이 기독교도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마스쿠스 문을 드나들었다. 그곳 바로 가까이에는 시장과 버스 터미널이 자리 잡고 있기에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번화가이다.

바로 그 다마스쿠스 성문 위에는 저격수들이 쓰는 조준경 달린 총을 들고 위압적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이스라엘 무장군인들이 근무 중이다. 예루살렘의 살벌한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순간, 2천년 전 예수가 살아있을 당시 예루살렘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병사들의 얼굴이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라엘 병사들은 밤낮으로 거리를 순찰하면서 조금이라도 의심스런 사람이 있으면 불러 세우고 몸을 뒤진다.

▲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야간 경비중인 이스라엘 병사들 ⓒ김재명

통치권 바뀔 때마다 '피의 강물'

동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유대인 구역, 기독교도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 이슬람교도 구역으로 크게 4구역으로 나뉜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저마다 예루살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종교와 신화의 도시'라 일컬어진다. 선지자와 예언자,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그들은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자리한 신전에서 그들이 믿는 절대자에게 경배를 드렸다.

문제는 예루살렘의 통치권이 바뀔 때마다 피의 강물이 흘렀다는 사실이다. 정복자는 피지배자들의 신전을 허물고, 그 폐허 위에 그들의 신을 모시는 새로운 신전을 세워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

11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무려 8차에 걸쳐 벌어졌던 십자군전쟁이 말하듯, 예루살렘은 정복과 피지배가 되풀이됐던 유혈과 폭력의 도시다. '평화의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 이슬람교 3대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을 중심으로 한 동예루살렘 전경 ⓒ 김재명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봉기)의 발생지

현재 서예루살렘에는 유대인들이, 동예루살렘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수 주민을 이루고 살고 있다. 오랜 역사의 숨결을 지닌 이 고풍한 도시를 누가 다스리느냐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1947년 11월 유엔총회 '결의안 181'는 예루살렘을 유엔 신탁통치 아래 이스라엘과 아랍(팔레스타인) 양쪽에 모두 개방된 국제도시로 둔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국제사회의 결정을 아랑곳 하지 않고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전쟁(제1차 중동전쟁)을 통해 예루살렘 절반을 차지했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이 장악하고 있었다. 동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통치권 아래 들어온 것은 지난 1967년의 이른바 6일전쟁을 통해서였다.

지난 2000년 9월말에 시작돼 10년 가까이 끌면서 7500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낳은 중동유혈사태가 터진 것도 예루살렘 문제에서 비롯됐다. 이스라엘 강경파 정치인 아리엘 샤론(당시 리쿠드당 당수, 2001년 이스라엘 총리에 올라 200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지금까지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이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에 발을 들여놓자, 팔레스타인인들의 제2차 인티파다(intifada, 우리말로는 봉기, 제1차 인티파다는 1987-1993년)가 시작됐고, 이스라엘 병사들과 충돌한데서 유혈의 비극이 다시 터졌다.

"예루살렘은 나뉠 수 없는 도시다"

현재 이스라엘 수도는 공식적으로는 예루살렘이다.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 행정수도는 텔 아비브였으나, 1950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서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는다고 선포했다(그래도 미국 대사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외교공관들은 텔 아비브에 있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이나 모두 소중하게 여기는 도시 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랍어로 '알 쿠즈'라 부른다. 앞으로 언젠가는 세워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가 바로 알 쿠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되길 전혀 바라지 않는다. 절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중심도시로 남아야 한다"는 믿음을 지녔다.

이스라엘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도시 전체가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놓여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는 지난 2009년 '예루살렘의 경계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을 담은 법률을 통과시켰다. 예루살렘을 영원히 '유대인들만의 도시'로 묶어두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의 강경파들은 예루살렘을 가리켜 '결코 분할되거나 공유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고 주장한다. 강경파의 우두머리인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도 "통합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예루살렘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우리의 것이고, 결코 나누어지거나 분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분쟁의 도시'에서 '평화 도시'로 거듭날 조건들

수천 년 동안 예루살렘을 거쳐 간 여러 민족들은 저마다 영광과 오욕의 순간들을 그곳에서 겪었다. 어떤 순간들은 자랑스런 대서사시가 됐고, 다른 어떤 순간들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참담한 비극으로 기록된다. 21세기 지금의 정복자는 유대인, 피정복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따라서 언제 또 다른 지배질서가 이곳 역사의 도시 예루살렘에 들어서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큰 틀에서 보면, 이스라엘 군의 불법적 팔레스타인 점령이 끝장나지 않는 한 예루살렘의 평화는 물론 중동평화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예루살렘이 평화의 도시가 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이 함께 충족돼야 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2002년 6월부터 동예루살렘에 세워온 방벽(보안장벽, 분리장벽) 공사를 중단하고 허물어야 한다.

△동예루살렘 동쪽에 세워져 동예루살렘을 포위하듯 들어선 이스라엘의 대규모 주거단지(뉴타운) 건설을 즉각 중단하고, 그곳 18만 이스라엘 주민을 이스라엘로 이주시켜야 한다.

△동예루살렘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 인들의 토지매입을 금지하고, 동예루살렘 원주민들의 주택건설 규제를 풀어야 한다.

△베첼렘(B'Tselem), 구쉬 샬롬(Gush Shalom), 지금 평화(Peace Now) 같은 이스라엘 평화운동 인권단체들이 이스라엘 내부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구촌 평화운동가들이 이들을 적극 도와야 한다.

역사의 도시 예루살렘이 '분쟁의 도시'에서 '평화의 도시'로 거듭나려면,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평화롭게 서로 어울려 사는 날이 오려면, 얼마나 많은 갈등의 시간과 피가 흘러야 할까.

* 위의 글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지 <참여사회> 최근호에 실린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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