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 후임으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임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스 보좌관은 대표적인 ‘매파’ 가운데 한명이라 대북정책 등 미국의 대외정책은 더욱 강경노선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부시, 파월 후임으로 라이스 기용 계획"**
AFP 통신은 15일(현지시간) 미 행정부 고위 관리 2명을 인용, “부시 대통령은 파월 장관 후임으로 라이스 보좌관을 임명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AP 통신과 로이터 통신, CNN, BBC 방송 등도 이같이 보도하며 “라이스 보좌관 진영은 아직까지 공식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으나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후임 인사를 16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라이스 보좌관 후임으로는 스티븐 헤들리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승진 임명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라이스가 국무장관에 기용될 경우 라이스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매들린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에 이어 두 번째 여성 국무장관으로 재직하게 되며, 미 국무장관은 연달아 흑인이 재직하게 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 라이스, "북핵해결 위해 '은밀한 조치' 검토할 것"**
라이스 보좌관이 국무장관으로 기용될 게 확실시됨에 따라 북핵문제, 중동평화협상, 이라크전 등에 대한 미국정책의 윤곽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라이스 보좌관의 대북 인식은 부정 일변도라는 점이 우리를 긴장케 하고 있다.
라이스의 대북정책 기본입장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한 6자회담을 계속한다"며 "외교적 옵션으로 해결한다는 목표"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에게 북한이란 '어떤 핵무기 프로그램을 갖고 있던 간에 용납될 수 없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는 북핵문제와 관련 지난 8월 "이를 분쇄하기 위해 '은밀한 조치'를 포함, 많은 수단들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 은밀한 수단에 군사행동이 포함돼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PSI(대량살상무기확산금지구상)를 설명하면서는 "우리는 북한의 의심 화물을 제재하는 등의 조치가 어디로 귀결될 지에 대해 예측할 수 없다"면서 "북한 같은 나라들은 국제협약을 무시할 때 대가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라이스는 또 "과거 북한과의 양자합의들은 효과가 없었다"며 북한이 미국과의 기본합의서나 한국과의 한반도비핵화선언 등을 위반했음을 종종 지적하며 북한에 대한 깊은 불신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이밖에 '북한이 입증가능한 핵프로그램 중단조치를 취한다는 조건'하에서 북한의 안보우려불식을 위한 다자간 안보보장 논의가 가능하다면서도 서면안보보장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고, "북한이 과거 북미 기본합의서 서명후 핵무기를 추구했던 것과 같은 그런 일을 이번에 안보보장을 얻은 뒤에도 하도록 허용되는 일은 켤코 없을 것"이라고 못박기도 했다.
1980년대말 소련 해체과정에 깊게 관여했던 그는 북한에 대해서도 강한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으며, 특히 노무현 정부의 이종석 NSC(국가안전보장회의)사무차장에 대해서는 불신감을 갖고 있는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 라이스 힘의 근원, 부시의 '무한 신뢰'**
라이스의 국무장관 기용 가능성은 그녀가 부시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대선 이전부터 점쳐져 왔었다.
부시 대통령은 평소 라이스를 '콘디(Condi)'라고 부른다. 부시 대통령이 직접 지어준 애칭이다.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 보좌관을 "정확한 나의 정보원"이라고 부르고, 라이스가 설명해주기 전에 외교정책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정도로 부시는 라이스를 절대신임하고 있다. 부시는 이라크전 장기화로 라이스 보좌관이 NSC(국가안보회의) 조정기능을 수행하지 못해 무능력하다며 퇴진 압력을 받을 때도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중"이라며 '무한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다.
라이스 보좌관은 지난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외국여행의 경험이 거의 전무할 정도로 외교 문외한이던 부시 대통령의 외교 '가정교사'부터 시작해서 백악관에 입성한 후에는 2차례의 전쟁 등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부시 대통령과 밀접한 '코드'를 맞춰왔다.
뉴욕타임스는 "라이스 보좌관보다 대통령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없다"며 "대통령을 설득시킬 단 한사람만을 꼽으면 단연 라이스 보좌관"이라고 평할 정도다.
*** 라이스, 소련해체 과정에 깊숙이 관여**
현재 49살의 독신여성인 라이스는 말 그대로 '입지전적 인물'로 유명하다. 19세 덴버대 우등 졸업, 26세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스탠퍼드대 부교수 임용, 34세 조지 부시 전 정부 국가안보위 소련 자문역, 38세 스탠퍼드대 최연소 부총장, 46세 최초의 여성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 등등, 그의 전력은 호화롭기 그지없다.
라이스가 부시와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95년 텍사스주지사였던 부시의 초청을 받아 오스틴을 방문했을 때로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상당히 친숙한 사이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를 본격적으로 부시 옆에 배치한 인물은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이다. 부시 전대통령이 1998년 공화당 대부인 슐츠를 찾아와 자신의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자, 슐츠는 '부시 대통령만들기' 총본부장을 맡으면서 외교 문외한인 부시 옆에 라이스를 배치했고, 그후 라이스는 부시외교의 '눈과 입'이 됐다.
'소련전문가'인 라이스는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이었을 때인 1989년부터 91년까지는 NSC의 소련 및 동유럽 담당 책임자로 임명된 바 있어 2대에 걸쳐 부시 가문의 대통령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1986년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는 잠시 합참의장의 전략핵정책 고문을 맡아 소련과의 핵무기 감축협상에 참여하기도 했고, 냉전에 종지부를 찍은 1989년 지중해상의 섬나라 몰타에서의 미소(美蘇) 정상회담에 34살의 젊은 나이로 미국협상대표중 일원으로 참가하기도 해 당시 고르바초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같은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인 라이스 보좌관은 포브스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여성 1백인 가운데 수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일부 네티즌을 중심으로 해서는 2008년 대선 후보로 밀어야 한다는 움직임(www.rice2008.com)까지 일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워리어 프린시스(Warrior Princess, 전사 공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의 전면 등장이 향후 한반도를 포함한 세계정세에 어떤 폭풍우를 몰고 올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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