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된 지 6년이 지났다.
구급대원으로 화재, 붕괴, 교통사고 등 많은 재난현장에서 다양한 부상자를 경험했고, 암, 당뇨, 정신질환 까지 질병관련 환자 치료에도 자신감 있는 베테랑 구급대원이다.
완주소방서 고산119안전센터에서 구급대원으로 근무 하던 중 '코로나19'와 관련해서 대구 파견근무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름 베테랑 구급대원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코로나19'로 인한 대구의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기에 망설임 없이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자원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상황이 급박해져 대구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지난 3월 2일 새벽, 몸과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하고 대구로 향했다.
집결지에 도착한 대구의 첫인상은 아비규환이었다. 집결지에 모인 구급대원 모두 상기된 얼굴로 출동과 복귀를 반복하며 '코로나19'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게 영화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대구의 '코로나19' 베이스캠프에 모여 현재 진행 상황 및 앞으로의 임무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베이스캠프에서 "대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대구광역시 소방공무원들의 진심어린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의 임무는 '코로나19' 확진환자와 의심환자를 119구급차를 이용해 수용 가능한 의료시설로 이송하는 것.
긴장된 마음으로 장비를 꼼꼼히 점검한 후 첫 임무를 부여받았다. 베이스캠프에서 배웠던 환자 프라이버시를 위한 행동지침을 떠올리며 최대한 조용히 환자가 있는 현장으로 향했다. 환자는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조용히 119구급차에 탑승했다. 환자의 발걸음이 매우 무거워 보였다. 신체는 건강해 보였으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보이는 환자를 보며 가슴에 먹먹함을 느꼈다.
긴장감을 가지고 수차례 '코로나19' 확진환자 이송을 마친 후 중간 집결지에 모여 점심을 먹었다. 차가운 인도 위에 삼삼오오 둘러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동료들과 대화해보니 다른 구급대원들 모두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듯 했다.
아파트단지에 들어 설 때 곤혹스런 일을 겪기도 했다.
아마 대구사람들에게는 119구급차량이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흰색의 감염보호복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119구급대원들과 마주치는 일이 부담인지 구급대원을 보면 깜짝 놀라거나 피하는 행동을 보였다.
일부 사람들은 구급차를 세우는 곳으로 다가와 창문을 두들기며 몇 동 누구를 태우러왔냐는 질문을 하였고 그 때마다 나는 일부러 시간을 지체한 후 환자와의 접촉 장소를 바꿔가며 환자를 태울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환자들에게는 코로나로 인한 건강상태보다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감이 자신들에게 투영되는 점이 가장 두렵고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한 번은 환자를 무사히 구급차량에 탑승 시킨 후 전문병원 3곳을 경유하였으나 결국엔 모든 병원이 수용 할 수 없다고 해서 베이스캠프와 연락 후 어쩔 수 없이 대상자를 다시 집으로 복귀시켜야 하는 사건이 있었다. 구급차량에 탑승한 환자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해달라는 말을 반복했고, 구급차량의 경광등과 싸이렌을 모두 끄고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 즘에 맞춰 조용히 환자를 집으로 이송했다.
당시 운전석 뒤쪽에서 들리는 "고맙습니다"라는 눈물 섞인 말투에 나까지 목이 잠겼다. 뉴스에서만 보던 '낙인'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국민 모두가 안팎으로 매우 힘든 시점에 혹시나 주위에 의심환자가 있다면 이송과정 중 따뜻한 시선은 아니더라도 알지만 모른 척 해주는 ‘지이부지(知而不知)’의 미덕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한다.
모든 국민들에게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다. 대한민국 모든 소방공무원과 관계자 분들이 최일선의 현장에서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으니 믿고 기다려달라고. 가족들과 손잡고 봄소풍 가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그 날 까지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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