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패닉'에 빠진 글로벌 증시가 19일(현지시간) 반등에 성공했다.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 연준)이 통화스와프 협정을 대폭 확대한 조치에 대해 시장도 모처럼 "달러 패권을 가진 미국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반긴 것이다. 통화스와프란 외환위기 등 비상시에 상대국에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다.
이날 다우존스지수는 전날보다 188.27포인트(0.95%) 상승한 2만87.19로 2만선을 하룻만에 되찾았다.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는 11.29포인트(0.47%) 오른 2409.39, 나스닥지수는 160.73포인트(2.30%) 오른 7150.58에 각각 마감했다. 유럽 주요국 증시도 1~2%대 오름세를 나타냈다.
연준은 이날 한국과 멕시코, 브라질 등 9개국 중앙은행과 각각 300억에서 600억 달러 한도의 통화 스와프 체결을 발표했다. 연준이 이번에 체결한 통화스와프 계약 규모는 한국·호주·브라질·멕시코·싱가포르·스웨덴 중앙은행과 600억달러(약 76조원), 덴마크·노르웨이·뉴질랜드 중앙은행과는 300억달러(약 38조원)다. 기간은 최소 6개월이다.연준은 이미 EU(유럽연합), 영국, 스위스, 캐나다, 일본 등 5개 중앙은행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투자자들이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금과 미국 국채까지 팔아치우고 달러 확보에 나서 초래된 '달러 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한미 간 통화 스와프 체결은 이번이 두 번째다. 한은과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조된 2008년 10월 30일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통화스와프 확대에도 달러가치 30년래 가장 가파른 상승세 지속
미국과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강대국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으로 규정한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화는 '절대 안전자산'으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하지만 통화스와프 확대는 미국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상징적인 조치의 성격이 강하다. '절대 안전자산'으로서의 수요를 능가할 정도로 달러를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이때문에 통화스와프 확대 조치에도 달러 기근은 계속되고 있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7% 급등하면서 102.7로 치솟았다. 달러화 인덱스는 지난 8거래일 동안 8% 넘게 치솟았으며 1992년 이후 거의 30년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준이 통화스와프 확대에 나서도 달러 기근이 해소되지 못하면 글로벌 경제는 도미노처럼 망가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현재 글로벌 달러화 부채는 12조 달러에 달하며, 달러가 귀해지면 신흥시장에서 달러화 부채부담이 커지고 자본유출이 심해지며 추가적인 타격이 발생한다. 신흥국 위기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경제국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달러가 기근이다. 기업어음(CP)과 회사채 시장을 중심으로 심각한 자금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연준이 지난 15일 기준금리를 단숨에 제로금리 수준으로 낮춰도 시장은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결국 연준은 지난 17일 '기업어음(CP) 매입기구'(CPFF)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현금 확보가 다급한 기업체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연준은 원칙상 상환위험이 있는 민간기업에 직접 자금을 지원할 수 없지만 '예외적이고 긴급한 상황'에서 발동되는 특별권한을 근거로 재무부의 사전승인을 거쳐 CP를 사들이겠다는 것이다.
불과 몇시간 뒤 연준은 '프라이머리 딜러 신용공여'(Primary Dealer Credit Facility·PDCF) 제도마저 재도입하기로 했다. 연준의 재할인 창구를, 주요 투자은행과 증권사 등 이른바 '프라이머리 딜러'들에게 개방하는 조치다. 다음날 연준은 '머니마켓 뮤추얼펀드 유동성 장치'(Money Market Mutual Fund Liquidity Facility)까지 꺼내들었다. CP 등 주로 단기채권에 투자하는 '머니마켓 뮤추얼펀드'가 환매 압박을 받으면서 금융권 전반으로 자금난이 확산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장치다.
유럽중앙은행(ECB)도 '팬데믹 긴급매입 프로그램(PEPP)'으로 명명한 7500억 유로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내놨다. 영란은행(BOE)은 기준 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0.1%로 인하했다. BOE는 보유 채권 규모를 2000억 파운드 늘린다는 양적완화(QE) 카드로 꺼냈따.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사용했던 '비전통적 해법'이라는 처방전을 거의 대부분 다시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세계대전'급 위기로 전시태세를 갖추기 시작한 미국은 재난기본소득 성격의 현급지급 등 신속한 집행이 가능한 1조 달러 이상의 재정 투입 패키지를 의회에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정부는 일정 소득 기준 이하의 미국인 성인에게 1000달러(약 128만 원), 미성년자에게 500달러(약 64만 원)씩 최대 두 차례 지급한다는 방안을 밝혔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이날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3주 내 성인에게 1000달러, 아동에게 500달러의 수표를 지급할 것"이라며 "국가비상사태가 유지되면 6주 뒤 다시 한 번 추가로 나눠줄 것"이라고 밝혔다. 부모와 아이 2명인 4인 가족이라면 최대 6000달러의 수표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집권 공화당 의원들은 연소득 기준으로 개인 7만5000달러, 부부 합산 15만달러 이하를 지원 대상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정균형을 중시해온 독일 정부는 자영업자와 소기업을 돕기 위해 400억 유로를 투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유럽 강대국들도 특단의 재정투입에 나서고 있다.
유럽 각국은 특히 코로나19 확산이 이탈리아처럼 폭증하는 상황에 공포에 휩싸였다. 국가별 누적 확진자는 중국이 8만907명으로 아직 단연 1위지만, 이탈리아가 하룻새 5322명(14.9%) 늘어난 4만135명으로 절반에 육박하고, 사망자는 19일 오후 6시(현지시간) 기준 3405명으로 집계돼 중국의 누적 사망자 수 3245명를 넘어섰다. 이탈리아의 사망자 수는 전날 대비 427명(14.3)이나 증가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확진자가 하루 3000명 넘게 증가하며 1만 1000명을 돌파한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 해외에서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처럼 가파르자 아예 전세계 여행금지(여행경보 4단계)를 권고하는 초유의 조치까지 내렸다. 미국의 4단계 여행경보는 분쟁, 자연재해에 휘말리거나 미국인이 위험에 직면한 특정 국가들을 대상으로 취해지는 조치라는 점에서 트럼프 정부는 현재 전세계가 코로나19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 전쟁이 벌어진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유럽으로부터의 입국을 금지시킨 조치에 이어 캐나다와 국경을 일시 폐쇄키로 합의하는 등 육로도 봉쇄했으며, 20일에는 남부 멕시코와의 국경을 제한하는 방안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세계의 시장'이라는 미국의 이런 '봉쇄 조치'는 글로벌 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통화스와프 확대에 따른 글로벌 패닉 진정 효과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통화스와프 확대 발표 후 글로벌 증시의 상승세는 지속적인 폭락 끝에 '기술적인 일시적 반등'을 한 것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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