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침체가 심화되고 수출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산업생산이 8개월만에 한자릿수로 떨어지고,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선행지수가 일제히 6개월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각종 경제지표가 본격적으로 제2차 경기하강국면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2차 경기하강국면 본격 진입했나**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지난 9월 산업생산은 그동안 수출 활황세를 주도해온 반도체와 자동차, 기계장비 등의 수출증가세가 크게 둔화되면서 작년 같은 달보다 9.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산업생산 증가율이 한자릿수로 떨어진 것은 지난 1월 4.7%를 기록한 이후 8개월만의 일이다.
또한 현재의 경기상황을 말해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 증가율(전월대비)은 9월 -0.2%를 기록,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 증감률은 4월 -0.1%의 마이너스로 돌아선 이후 5월 -0.6%, 6월 -0.8%, 7월 -0.8%, 8월 -1.0%, 9월 -0.2%로 감소했다.
향후 경기전환 시기를 예고하는 선행지수 전년동월비도 0.1% 포인트 하락해 6개월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경제전문가들은 선행지수가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경우 경기하강국면에 본격진입한 것으로 분석한다.
대표적 소비지표인 도.소매 판매는 도매업과 소매업 판매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0.7% 줄어 7월 이후 3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자동차 생산 증가율은 7월 77.7%에 달하던 것이 8월 24.9%에서 9월에는 11.1%로 급격히 둔화됐다.
설비투자도 특수산업용기계는 호조를 보였으나 전기기기와 일반 산업용기계에 대한 투자가 감소해 작년 같은 달보다 0.7% 감소했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독려로 플러스 증가율을 유지했던 투자가 마이너스로 전환된 것은 6개월만의 일이어서 한층 위기감을 심화시키고 있다. 향후 건설경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건설수주는 작년 같은 달보다 29.2%로 감소해 올 1월(14.3%)이후 9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제조업 평균가동률도 4개월째 70%대에 머물고 있다.
전형적인 불황 지표다.
***IMF사태후 경기사이클 완전 교란상태**
이처럼 경제지표는 분명한 경기하강국면 진입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2000년 10월 "경기가 정점을 찍었다"는 통계청 발표이래 4년이 지나도록, 지금이 재차 불황국면에 진입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별 못하고 있다. 과연 어디가 '저점'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호조를 보이던 경기가 재차 침체국면으로 접어드는 '더블딥'에 빠진 게 아니냐는 비관적 분석도 나오고 있으나, 정부는 "아직 단정할 때는 아니다"라는 모호한 입장만 보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7년만에 분기별 경기전망을 포기한 것도 이같은 극도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왜 이처럼 경기전망을 못하는가. 한마디로 말해 IMF사태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경기순환이 엉망이 됐기 때문이다. 경기순환은 흔히 파도가 산과 낮은 골짜기를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비유한다. 즉 경제활동이 활발해 경기가 상승하면 마침내 정점에 이르게 되고, 그후 경제활동이 수축돼 하강하다가 저점에 이르게 되면 다시 상승하는 식이다. 이때 앞의 경기 저점에서 다음 저점까지의 기간을 주기라 부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70년대이래 7차례 경기순환이 있었다. 여기서 확장기란 흔히 세간에서 호황, 수축기란 불황이라 부르는 기간을 뜻한다.
제1순환은 1972.3~1975.6로, 확장기가 23개월이었고 수축기는 16개월이었다.
제2순환은 1975.6~1980.9로, 확장기가 44개월이었고 수축기는 19개월이었다.
제3순환은 1980.9~1985.9로, 확장기가 41개월이었고 수축기는 19개월이었다.
제4순환은 1985.9~1989.7로, 확장기가 28개월이었고 수축기는 18개월이었다.
제5순환은 1989.7~1993.1로, 확장기가 30개월이었고 수축기는 12개월이었다.
제6순환은 1993.1~1998.8로, 확장기는 38개월이었고 수축기는 29개월이었다.
제7순환은 1998년 9월 시작돼 2000년 8월 정점에 도달했으나 아직 저점은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왜 저점을 찾지 못하나. 2000년 8월이후 상황이 워낙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2000년 8.5%에 달했던 성장률은 다음해인 2001년 3.8%로 급락했다. 그러나 아파트-카드 경기부양책과 수출호조에 힘입어 2002년 다시 7.0%로 성장률이 높아졌아지는가 싶더니, 2003년에는 내수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수출호조에도 불구하고 성장률은 3.1%로 다시 곤두박질쳤다. 2004년 올해 상황도 상반기에는 중국특수에 따른 수출호조로 5%대 성장을 했으나, 하반기에는 내수침체 심화와 수출경기 급랭으로 4%대로 성장률이 떨어질 전망이다.
한마디로 말해 확장기가 23~44개월로 길고, 수축기는 12~19개월로 짧던 과거의 안정적 경제순환과는 달리, IMF사태를 겪으면서 확장기는 짧아지고 수축기는 길어진 데다가, 짧은 기간내에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식으로 경기가 요동을 치는 바람에, 과연 지금이 호황인지 불황인지를 도통 감잡을 수 없다는 게 정부측 해명이다.
***한은 "장기불황때 일본과 유사한 현상"**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와 관련, "IMF사태를 겪으면서 경제구조가 워낙 바뀌어서 종전의 잣대로 경기전망을 하기란 매우 힘들어졌다"고 어려움을 토로한 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일본형 장기불황의 늪에 이미 빠져든 게 아니냐는 우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1991년 부동산거품이 꺼지면서 시작된 장기복합불황 10여년동안에 경기가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짧은 기간 '반짝' 경기가 좋아지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가 곧바로 다시 불황의 늪에 재차 빠져드는 '3번의 경기 소순환'이 있었다. 요컨대 장기복합불황때 고전적 경기사이클이 파괴되고 대신 간헐적으로 '소순환'만 나타났던 일본처럼 한국도 장기불황의 늪에 이미 빠져든 게 아니냐는 우려다.
물론 아직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부동산거품이 본격적으로 파열하지 않은 상황이라, 일본과 동일한 장기불황의 늪에 빠졌다고 단언하기란 시기상조다. 그러나 '카드거품'이 터지면서 3백70만 신용불량자가 생겨나고, 아파트값 폭등으로 다수의 구매력이 소멸되면서 내수가 장기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장기불황 국면에 빠져든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거품이 잔뜩 낀 아파트 등 부동산이 '복병'으로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향후 예상되는 경제위기의 정도는 일본보다 심각하면 심각했지 결코 그 이하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과연 한국경제가 곳곳에 암초투성이인 폭풍을 지혜롭게 순항할 수 있을지, 긴장도가 날로 높아지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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