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11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글로벌 대유행)을 공식 인정했다. WHO는 지난 2009년 신종플루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성급했다는 비판을 받자, 아예 팬데믹 선언 제도를 폐지했다. WHO의 팬데믹 공식 인정은 미국 CNN이 지난 9일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면서 코로나19는 이미 '팬데믹'이라고 규정하자 마지못해 "코로나19의 위협이 매우 현실화됐다"고 사실상 인정한 이후 공식화한 것일 뿐이다.
WHO의 마이클 라이언 긴급대응팀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팬데믹 발표'의 결정 과정에 대해 지난 1월 30일 코로나19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할 때처럼 사전에 자문 기구인 긴급 위원회를 소집하는 등의 "수학 공식 같은 절차나 알고리즘은 없다"고 시인했다. 그는 이번 팬데믹 발표에 대해 "코로나19의 현 발병 상황을 묘사하는 단어"라고 규정했다.
WHO는 '팬데믹 뒷북 선언'에 대한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역사상 팬데믹으로 규정되고도, 팬데믹도 통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는 점만 강조했다.
늑장 팬데믹 인정한 WHO, 민망한 "방아쇠 역할" 당부
라이언 팀장도 "WHO의 팬데믹 선언이 각국 정부가 더 공격적인 대응책을 펼치는 방아쇠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선 과정에서 중국의 신세를 져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뒷북 인정'해온 테워드로스 사무총장 때문에 세계보건의 컨트롤타워라는 WHO 위상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WHO는 전세계 114개국에 걸쳐 코로나19 확진자가 11만8000여 명에 도달하자 팬데믹이라는 용어를 붙였다"고 꼬집었다. 사망자도 WHO 집계에 따르면 이날 4291명에 달했다. WHO가 지난 2009년 신종플루로 74개국에서 3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팬데믹을 선포한 것에 비해 늦어도 너무 늦은 것이다. 이제서야 "팬데믹 선언이 각국 정부가 더 공격적인 대응책을 펼치는 방아쇠 역할을 하기 바란다"는 WHO의 요청은 듣는이들이 민망할 지경이다.
현재 중국에 이어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에서 2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탈리아는 하루에 2300명 넘게 확진자가 쏟아지며 12일(현지시간) 오후 6시 기준 1만2000명을 넘었다.
이탈리아 보건당국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만2462명이다. 전날 대비 무려 2313명(22.7%)이 증가한 것이다. 사망자도 전날 대비 196명(31%) 증가한 827명으로 집계됐다. 누적 확진자 수 대비 누적 사망자 비율을 나타내는 치명률도 6.6%에 달했다. WHO가 파악한 세계 평균 치명률(3.4%)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것이며, 한국의 치명률이 0.8%에 못미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 이탈리아에 이어 확진자가 가장 많은 이란은 확진자가 전날보다 958명(12%) 추가돼 9000명으로 늘어났고, 사망자는 354명으로 전날보다 63명 늘어났다.
미국 최고 전염병 전문가 "사태 더욱 악화될 것"...미국만 1억5천만명 감염?
이런 지경에 와서야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팬데믹'으로 인정한 WHO의 경고는 황당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이탈리아의 사망자가 800명이 넘은 상황에 대해서 라이언 팀장은 "이탈리아에서 사망자 이외에 900명 정도의 코로나19 중환자(이탈리아 당국 집계로는 1028명)가 있으며, 이탈리아와 이란의 상황이 심각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조만간 같은 상황이 될 것이 확실하다"고 경고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1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한 경고는 더욱 충격적이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인구의 최대 70%로 확산될 수 있다"면서 "전문가들은 세계 인구의 60∼70%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될 것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이탈리아 확산 사태 직후인 지난달 25일부터 감염이 확산하기 시작해 확진자가 최근 급증세를 보이며 이날까지 1500명을 넘어섰다.
메르켈 총리가 제시한 수치는 지난달 24일 "코로나19가 궁극적으로 억제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1년내 전세계 인구의 40~70%를 감염시킬 것"이라는 마크 립시치 하버드대 교수의 전망이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 것을 넘어 각국 정부에서도 인정하는 단계에 온 것을 시사한다.
미국 NBC방송도 "브라이언 모나한 미 의회·대법원 주치의가 이날 상원에서 열린 비공개회의에서 미국내 감염자가 7000만 명에서 최대 1억5000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미국 최고의 전염병 권위자로 꼽히는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 역시 이날 하원 정부감독개혁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느냐"는 캐럴린 멀로니(민주·뉴욕) 위원장의 질문에 "그렇다. 사태는 더 악화할 것이다. 핵심은 더 악화할 것이란 점"이라고 말했다. 파우치 소장은 이날 청문회 참석 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비상회의를 소집하면서 청문회장을 중간에 떠났다.
멀로니 위원장은 "오늘 아침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우리 증인들을 백악관 비상회의에 소집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극도로 긴급하다는 것만 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오후 9시(한국시간 12일 오전 10시)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어떤 대책을 발표할 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팬데믹' 공포로 폭락을 거듭해온 뉴욕증시는 WHO의 팬데믹 인정 뒷북 선언에 또다시 폭락했다.
11일(현지시간) 다우존스지수는 1464.94포인트(5.86%) 하락한 2만3553.22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는 140.85포인트(4.89%) 하락한 2741.38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도 392.20포인트(4.70%) 내린 7952.05에 각각 마감했다.
특히 다우지수는 지난달 12일 고점(2만9551)과 비교해 불과 한 달 만에 약 6000포인트, 20.3% 하락하면서 약세장(bear market)에 진입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52주 최고가 대비 20% 이상 떨어지면, 추세적인 하락을 의미하는 약세장으로 분류된다.
다우지수가 고점 대비 10~20% 하락하는 조정 국면을 수차례 거치기는 했지만 '20% 문턱'을 넘어서면서 약세장에 들어선 것은 2009년 이후로 처음이다. 미 언론은 금융위기 이후 2009년부터 시작된 초장기 강세장이 11년만에 종료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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