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맞은 알리 툰시 청장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10년 넘게 경찰청장에 재직한 툰시는 이렇게 부하의 총에 최후를 맞았다.
수도 경찰청장 피격에도 '유야무야'
당황한 알제리 내무부는 총을 쏜 경찰관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두 달이 거의 다 돼가는 현 시점에도 추가적인 조사내용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 됐다.
그러나 필자가 인터뷰한 한 알제리 학자는 "고질적인 경찰 내 비리와 관계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조직적인 비리에 연루한 경찰청장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거나 혹은 특정 비리에 같이 참여한 이후 자신에게 돌아온 분배의 몫에 대한 분노가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추가설명도 덧붙였다.
툰시 경찰청장은 이런 비리 의혹에 여러 차례 연루됐었다. 2003년에는 경찰관 50여 명이 툰시 경찰청장과 측근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서신을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에게 보내 큰 말썽이 빚어진 적도 있었다.
알제리 발전 가로막았던 치안
치안문제는 알제리의 성장과 안정에 가장 큰 변수다. 한반도의 10배가 넘는 면적과 막대한 석유 및 가스자원을 가지고도 알제리가 아직 경제 분야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1990년대 초부터 심각해진 알제리의 테러 및 치안 문제는 국내적으로 사회불안 요소가 됐고, 대외적으로도 알제리의 이미지 손상에 악영향을 줬다. 결과적으로 알제리 경제 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10여 년의 사실상 내전 상황이 끝나고 최근에는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특히 2005년 1월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테러 종식을 선언하고, 같은 해 9월 28일 '평화 및 민족대화합' 헌장을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내면서 상당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정세가 점차 안정되면서 외국기업들의 알제리 진출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대(對)알제리 수출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간 알제리가 테러위험국가로 분류돼 우리 기업의 진출이 제한됐었지만, 치안상황이 호전되고 이에 따라 정치 및 경제가 다소 안정되면서 상품수출 및 현지 투자도 늘고 있다.
더불어 석유를 포함해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인상으로 알제리의 수입 및 플랜트 발주 여력이 확대되면서 알제리는 최근 소위 '개발 붐'을 맞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과거 국영기업 중심의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에서 개방성향의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떠오르는 시장'으로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2006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알제리를 방문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기도 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3월 알제리를 방문해 한-알제리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오른쪽이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 ⓒ연합뉴스 |
이어지는 긴장과 부패
자원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경제 붐을 주도하는 나라. 하지만 알제리는 아직 심각한 내부의 긴장과 혼란을 거치고 있다.
우선 아직도 국가 권위에 도전하는 이슬람 세력이 적지 않은 위협으로 남아있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테러 세력들의 숫자가 다소 감소했다는 일부 관측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빌리, 베자야, 테베사 등의 동부 지역 그리고 티파자, 아인 디플라, 트림센 등 서부 지역에서는 이슬람 과격 세력들이 계속 준동하고 있다.
기존 알제리 산악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 일부가 말리, 니제르 등 주변 국가로 많이 이동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국경을 넘나드는 반정부 세력의 공격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달 초에는 이슬람 과격 세력들이 3차례의 연쇄 공격을 감행했다. 터키 회사 경비 인력 7명, 군인 1명 그리고 민간인 3명이 사망했다. 정부 치안군은 테베사, 티지우즈, 세티프 등에서 작전을 감행해 지난 3월 한 달 간 총 20여명의 반정부주의자를 사살하고 최소 40여명을 테러 혹은 동조혐의로 체포했다.
▲ 알제리에서 이슬람 과격 세력들의 테러는 흔한 일이 됐다. 지난 2007년 12월에는 알제리 수도 알제의 국제연합난민고등판무관(UNHCR) 사무소에서 발생한 자살폭탄테러로 UNHCR 직원을 포함해 20여 명이 숨졌다. 범행은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북아프리카 지부의 소행이 유엔을 겨냥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됐다. ⓒEPA=연합뉴스 |
테러만이 문제는 아니다. 알제리에서는 기본임금에 대한 불만, 주택 문제, 물가 상승, 높은 실업률 등에 대한 국민의 반정부 감정이 팽배해 있다. 최근에는 설탕과 과일 등 기본 생필품의 가격이 2배 이상으로 폭등해 이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빈민 지역의 주민은 물론 보건, 교육, 교통 관련 부처 그리고 지방 공무원들이 3월 내내 데모 및 소요 사태를 일으켰다. 정부의 정책실패도 문제지만 만연한 부패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지난 3월에 발표된 글로벌 인터내셔널 인테그리티 (Global International Integrity) 보고서에 따르면 알제리는 아프리카 지역 내 불법 자금 거래 및 돈 세탁이 가장 심각하게 이루어지는 국가 순위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이집트와 나이지리아에 이어 뇌물, 공금 횡령, 마약 거래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불법 자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식민지통치의 유산, 정체성 혼란
"창문을 열지 마세요. 카메라를 집어 갑니다."
지난 2월 알제리 수도를 둘러보기 위해 탄 렌터카의 운전사는 이렇게 말했다. 차가 잠시 신호등에 걸릴 때 외국인이 탄 차에 대한 공격이 자주 있다는 것이다. 해가 어둑어둑해지자 관광 안내원은 수도 알제의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인 카스바(Kasbah) 성 근처에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범지역이기 때문에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설명한다.
알제리는 중동 국가 중 가장 범죄가 심각한 곳이다. 테러의 위협은 있지만 중동지역은 일반 범죄에 있어서는 상당히 안전한 곳이다. 그러나 알제리는 자국민조차 범죄에 위협 속에 살고 있다.
개도국이 겪는 여러 사회문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알제리의 경우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바로 정체성의 상실이다. 그 원인은 1962년 독립하기 전까지 132년에 걸친 프랑스의 식민통치 유산이다. 프랑스의 동화정책으로 인해 상당수 알제리인, 특히 상류층은 자신들의 전통을 잃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은 아랍어의 '앗쌀람 알라이쿰' 대신 '봉주르, 꼬몽 싸바'라고 말한다. 아랍어를 할 줄 알지만 불어로 서로 대화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아랍 및 이슬람 그리고 프랑스 혹은 유럽 사이에서 정체성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있는 경우다. "젊은이들이 프랑스에서 못된 것은 다 배워서 따라하고 있다"며 운전기사 압두 알-라흐만은 혀를 끌끌 찬다.
▲ 라마단 기간 동안 알제리 시민들. 알제리에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이슬람 전통과 132년 간의 프랑스 식민 경험에서 온 정체성이 혼재되어 있다. ⓒEPA=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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