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3월 3일은 그야말로 '슈퍼 화요일'이 됐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이날 14개주와 미국령 사모아에서 동시에 진행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10개주에서 1위를 기록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하 직함 생략)은 4개주에서 1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날 바이든의 '대승'으로 민주당 경선은 당분간 '바이든 대 샌더스' 양강 구도로 진행될 전망이다. 중도진영 대 진보진영의 싸움인 셈이다.
경선 초반 샌더스가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중도진영이 분열돼 있었던 탓도 있지만, '변화'를 바라는 민주당 내 유권자들의 표심이 반영된 결과다. 샌더스가 선두주자로 굳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자 중도진영 후보들이 줄줄이 사퇴하면서 바이든이 치고 올라온 힘으로 급격한 변화와 이에 따른 갈등을 불안하게 여기며 '안정'과 '통합'을 중요하게 여기는 또 다른 유권자들의 표심이 드러났다.
과연 도널드 트럼프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슈퍼 화요일'을 거치면서 굳어진 '바이든 대 샌더스' 구도 안에서 민주당은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 글에서는 '슈퍼 화요일' 승패 요인 분석과 큰 틀에서 '슈퍼 화요일' 경선을 통해 민주당에게 던져진 과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바이든 승리의 요인 1) 중도 결집
바이든은 이날 텍사스, 앨라배마, 오클라호마,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테네시, 아칸소, 매사추세츠, 미네소타, 메인 등 10개 주에서 1위를 기록했다.
바이든은 이날 '슈퍼 승리'를 기반으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하 직함 생략)도 주저앉히는 데 성공했다. 블룸버그는 바이든이 경선 초반 중위권 후보로 추락하면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중도진영의 '대안 후보' 자리를 노리며 '슈퍼 화요일'부터 경선에 참가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령 사모아 1곳에서만 승리하는 등 예상보다 훨씬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자 블룸버그는 등판 하루 만인 4일 경선 중도 하차 입장을 밝혔다. 후보에서 사퇴하면서 그는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CNN에 따르면, 그는 이날 오전 바이든에게 전화로 지지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블룸버그도 하차하면서 중도진영 후보로는 유일하게 바이든만 남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바이든이 압승을 한 뒤, 또 다른 중도진영 후보였던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밴드 시장과 에이미 크로버샤 상원의원도 중도 하차를 선언하며 바이든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
아이오와, 뉴햄프셔, 네바다 등 경선 초반 진보진영 후보인 샌더스가 선두주자로 떠오르자 위기감을 느낀 중도진영이 결집한 것이 '슈퍼 화요일'에 바이든이 예상보다 훨씬 큰 승리를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바이든 승리의 요인 2) 안정감
이날 각 언론의 출구조사와 각 주별 득표율을 보면 바이든의 주요 지지 기반이 보인다. 지난 주말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의 압승을 가능케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남부지역 승리는 흑인 유권자들의 집단적인 지지 덕분이다.
60대 이상의 장년층 유권자들도 바이든을 지지했다. 또 교외 지역의 백인 중산층 유권자들(suburban voters)도 바이든에 쏠렸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흑인, 장년층, 중산층 유권자들은 트럼프 정부의 인종주의적 정책이나 독단적인 정치 스타일에 동의하기 힘들지만 급격한 사회 변화를 원하는 계층은 아니다.
이들에게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는 심리적으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기엔 '부담스러운' 후보다. 그래서 이들은 바이든이라는 '안전한 선택지'를 택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프레시안과 전화 인터뷰에서 "슈퍼 화요일에서 바이든이 이긴 가장 큰 원인은 부티지지와 클로버샤가 중도 하차하면서 바이든을 지지한 것"이라며 "블룸버그의 하차 시점이 관건이었는데 하차하면서 중도진영은 바이든으로 결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샌더스의 실기, 2016년 이후 변화하지 않았다
바이든이 '안정감'을 앞세워 중도와 진보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유권자들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적으로 샌더스가 폭넓은 유권자들에게 신뢰를 받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샌더스의 '불안감'은 그가 최종 후보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민주당 주류의 '공격' 탓이기도 하지만, 샌더스 자신에 기인하는 부분도 있다.
샌더스는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패배한 이후 지금까지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전국민 의료보험(메디 케어 포 올), 대학 무상 교육(칼리지 포 올) 등 파격적인 정책 공약으로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지만, 정작 샌더스는 유권자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 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샌더스에 대해 "비타협적"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2008년 오바마의 리더십과 2020년 샌더스의 리더십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바마는 통합의 리더십이 있었다. 미국이 금융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오바마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의 중심에 서겠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며 "그런데 샌더스는 비전략적인 구호를 내놓아서 정작 큰 선거에서 흐름을 놓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의 표심이 아직까지는 미국적 가치, 통합, 이런 이슈에 꽂혀 있다"며 "그런데 샌더스는 계급, 경제정의가 메인 이슈다.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이를 이해시켜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쏟아져나온 민주당 유권자, 본선 경쟁력 커졌다"
김 대표는 특정 후보의 승패와 무관하게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2020년 대선 전체 판세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의미한 변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버지니아만 놓고 보자. 민주당 경선에는 민주당원, 민주당에 등록된 유권자들, 무당적자였지만 경선 참여를 위해 민주당으로 신규 등록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할 수 있다. 2008년 오바마와 힐러리가 붙었을 때 버지니아 경선에 91만1000명이 참가했다. 2016년에는 78만5000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이번 '슈퍼 화요일' 경선에 130만 명이 참가했다. 2016년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숫자다. 버지니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난 주말 사우스캐롤라이나도 2016년에 비해 1.6배의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했고, 어제 미네소타에서도 1.5배의 유권자가 쏟아져 나왔다.
이들 경선에 참여한 유권자들은 언론의 출구조사에서 '트럼프를 이길 후보를 원한다'고 답한다. 트럼프 정부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신규 유권자로 등록하면서 경선에 참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 후보의 본선 경쟁력 자체가 커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 '통합'이냐 '변화'냐
이처럼 '트럼프 반대' 표심이 커진 가운데 민주당이 찾아야될 답은 과연 바이든과 샌더스 중에 '누가 트럼프의 대항마가 될 것인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4일(현지시간) '바이든 대 샌더스' 양강 구도에 대해 "샌더스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모순에 대해 싸울 것을 요구하고 있고, 바이든은 트럼프 정부 이전의 정상성으로 돌아가자고 하고 있다"며 "2020년 민주당은 통합을 대표하는 사람(바이든)과 투쟁을 대표하는 사람(샌더스) 중에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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