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짓밟힌 주권자 시민의 당연 권리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에 대한 것이다.
수백의 경찰과 용역이 동원된 강제철거, 그날 유가족과 함께 한 시민들은 속절없이 짓밟혔다. 고(故) 문중원 기수가 세상을 떠난 지 91일째 되던 2월 27일, 유가족의 쉼터이자 빈소인 천막은 그렇게 뜯겨나갔다.
장례도 못 치르고 길바닥에 고인을 모신 유족들의 헛상여 행진, 또다시 수백의 경찰들이 가로막았다. 재벌들과는, 심지어 국정농단 재판중인 그들과는 밥도 차도 환담도 잘 나누던 문재인 정부. 100일 다 되 가도록 장례도 못 치르는 유족들의 얘기를 듣기는커녕, 유족의 빈소를 용역을 불러 뜯어가서 차가운 길바닥으로 유족을 내몰았다.
2월 28일 11시로 예정된 청와대 사랑채 앞 기자회견, 다시 경찰 벽으로 가로막혔다. 108배를 하지 않으면 기자회견을 하게 해 주겠다고 한다. 헌법과 법률, 심지어 집시법 그 어디에도 기자회견과 108배를 못 하게하는 근거는 없다. 로봇처럼 방패막이 하고 있는 이들도 이 행위가 근거가 없음을 안다. 기자회견은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이다. 마찬가지로 108배는 표현의 자유이다. 표현의 자유 침해를 조건으로 한 언론의 자유보장은 있을 수 없다. 주권자 시민의 당연한 권리인 기자회견을 못하게 하는 2020년의 대한민국 정부. 부당함을 얘기하는 입과 몸짓을 국가폭력으로 틀어막는 것, 이명박 정부의 컨테이너 산성과 무엇이 다른가.
시민대책위에서 대표단을 꾸려 청와대 항의 면담을 하고 왔다. "확인해보겠다. 종로경찰서 관할이고 해당 사안의 판단은 종로경찰서에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다" 청와대의 답변이다. 뭘 확인하겠다는 것인지, 헌법이랑 육법전서라도 보내줘야 하는지.
결국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기자회견과 108배를 못하고, 가로막힌 곳에서 불법집회 해산하라는 경찰의 방송 속에서 추모문화재를 끝까지 마치고 빗속 10시간을 마감했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짓밟은 그날의 문재인 정부의 반헌법․반민주주의 만행을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2005년 개장 이후 지금까지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7명의 기수와 관리사가 과도한 업무 부담, 부당한 대우, 비리 등을 이유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중 4명은 현 정부가 들어서고 돌아가신 분들이며 그 중 2명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낙순 마사회 회장 체제하에서 죽음을 맞았다. 유가족의 요구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제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치워버려야 할 바이러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정능력을 믿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상주가 몸을 누이는 빈소를 강제 철거하고, 부당함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가로막고, 고인의 명복을 빌고 억울함을 전하는 몸짓인 108배를 여전히 구속하고 있다. 현 상황이 부정한 공권력과 국가폭력으로 차별과 배제를 통해 주권자 시민의 기본권을 묵살했으며, 검열과 통제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근간 이념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짓밟은 차별범죄이자 국가범죄인 블랙리스트 사태와 무엇이 다른가.
며칠 전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아버지 한 분이 또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잊을 수 없는 봄날의 오월을 지나 여름을 건너가지 못한 이들과 살아남은 것을 오히려 치욕으로 여기며 매일을 힘겹게 견뎌내는 이들에게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
아들을, 사위를, 남편을 떠나보내고 길바닥에 빈소를 차린 유가족이 모욕감과 비루함을 느끼게 하는 나라. 과연 우리 사는 대한민국은 사람이 먼저이고, 주권자로서의 존엄을 보장받는 민주공화국인가? 민주주의는 선거철에 투표하는 정치형식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 일상의 질서를 구성하고 민주적 삶을 규정하는 공동체의 태도이자 가치이다.
3월 7일은 고인이 돌아가신 지 100일이 된다. 마사회의 부조리 속에 방치되는 죽음들을 멈추어내기 위해 그리고 부당한 공권력으로 탄압당하는 인권과 주권자 시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희망행진을 한다. 2011년 시작된 희망버스가 모습을 달리해서 시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코로나로 대규모 집회가 어려우니 각자 차를 타고 과천 경마공원부터 서울 청와대까지 도는 행진이다.
"아빠를 따뜻한 곳으로 보내고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고 싶다"는 고인의 딸의 소망이 이뤄지도록, 희망차량행진은 철거된 희망을 우리 손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민연대행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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