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가스 최대 배출국인 미국의 반발로 7년이나 미뤄졌던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가 이르면 2005년 봄에 발효될 전망이다. 그 동안 계속 비준을 미뤄왔던 러시아 정부가 비준 방침을 최종 결정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 "교토의정서 비준 방침 결정"**
러시아 정부가 30일 각료회의에서 교토의정서를 전격 승인했다. 러시아 정부는 의회의 최종 비준을 위해 교토의정서 실행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지침을 조만간 하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교토의정서 비준 동의안은 러시아 하원과 상원의 승인을 얻어야 하지만, 집권당인 '통일 러시아'가 양원의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어 비준은 확실해 보인다. 비준 동의안 처리에 2개월 정도가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연말 러시아가 비준을 한 후 90일이 지난 2005년 봄 교토의정서가 발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그동안 경제 발전과 성장 논리를 내세워 교토의정서 비준 반대 입장을 천명해 왔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의 비준 압력이 거센 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 2기를 맞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우선시하면서 교토의정서 비준 전망이 제기돼 왔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월 EU가 러시아의 WTO 가입을 지지한 데 대한 보답으로 교토의정서 비준을 서두르겠다고 이미 약속한 상태다.
***미국 고립시킨 채 국제 사회 공동 행동 시작**
교토의정서 탈퇴를 결정한 미국과 공조하던 러시아가 비준 의사를 밝힘으로써 미국을 고립시킨 채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한 국제 사회의 공동 행동이 가능해졌다.
1997년 채택된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는 55개국 이상의 비준을 얻는 것과 함께 비준한 나라들의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 합계가 1990년을 기준으로 선진국 전체의 55%를 넘어야 한다. 교토의정서는 지금까지 유럽과 일본 등 1백25개국이 비준했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비준을 거부하면서 '배출량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1990년 기준으로 전체 배출량의 17.4%를 차지하는 러시아가 비준에 합류하면서 마침내 발효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번 발효는 세계 각국이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게 됐다는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초강대국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의 공동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을 압박하는 효과도 있다.
***국내 산업계 비상, 2008년 합류 요구도**
한편 교토의정서가 2005년 봄 발효가 확실시되면서 국내 산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2008~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평균 5.2% 감축해야 하는 의무대상국에서는 제외됐다. 정부와 산업계는 2018년부터 자율 참가를 예상하고 2012년까지 관련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선진국은 2008년부터 자발적 동참을 요구하고 있는 데다, 2013~17년의 2차 공약기간에는 합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계속 거부하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 기준으로 이산화탄소를 4억 3천4백만t 배출해 세계 9위를 기록했으며, 1990년 대비 85.4%가 급증해 세계 최고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배출량 3위인 러시아는 배출량이 증가하지 않았고, 5위와 7위를 기록한 독일과 영국은 오히려 배출량이 감소했다.
만약 우리나라가 의무 부담국에 포함된 뒤 요구하는 수준으로 온실 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면, 이미 청정 기술 개발이나 에너지 사용 효율화 등으로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인 다른 나라에게 배출권을 사야 한다. 배출권을 사지 못하면 그만큼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배출권을 살 경우 막대한 외화를 지출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결국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2년 11월 교토의정서를 비준했다. 더 늦기 전에 대책 마련에 시급히 나서야 할 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