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공연문화계가 '시키 파문'으로 적잖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아사리 "한국 진출 당분간 포기"**
발단은 롯데그룹과 손잡고 서울 잠실 롯데월드 인근에 대형 뮤지컬 극장을 짓는 등 한국 진출을 타진해왔던 일본 대형 극단 시키(四季)의 아사리 게이타(淺利慶太, 71) 대표가 지난달 28일 갑자기 “한국 진출을 포기한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아사리 대표는 이날 저녁 도쿄에서 자신의 극단 홍보를 위해 한국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일 ‘문화 교류’라는 자신의 뜻을 ‘문화 침략’으로 여긴다면 굳이 강행할 이유가 없다”고 진출포기 이유를 밝혔다.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는 이에 앞서 지난 8월16일 성명을 통해 “‘시키’가 일본 시장을 석권한 데 이어 더 큰 시장 확보를 위해 중국과 한국 진출을 노리는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아사리 대표가 문제삼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시키는 일본에 8개의 뮤지컬 전용극장과 6백명의 배우를 거느리고 연간 2천8백회 공연(연 매출액 2천5백억원)을 소화하는 일본의 독점적 공연기업이다. 시키는 8년 전 국내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공연한 바 있으며, 내년에는 ‘햄릿’을 들여올 예정이다.
아사리 대표는 그러나 이틀뒤인 30일 도쿄에서 재차 한국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시키(四季)는 반드시 한국에 간다. 한국시장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라 시장을 키우러 가는 것"이라며 한국진출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시키의 한국 진출이 '문화침략'이라는 오해가 어느 정도 사라지면 약간의 저항을 감수하고서라도 금방 나갈 것"이라면서 "한국 최초의 롱런(long-run) 공연을 성공시키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내년 1월 연극 ‘햄릿’의 한국 공연은 예정대로 하겠다”고 했다.
이같은 아사리 대표의 발언은 다분히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를 '국수주의 세력'으로 몰아 그들의 반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가능했다. 실제로 그후 일부 국내언론은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를 '우물안 개구리'로 몰아갔다.
***일부 국내언론 "한국 공연계, 우물안 개구리" 맹성토**
세계일보는 지난 8월31일 "일본 극단 ‘시키’가 서울 상주의 꿈을 접는다고 발표했다. 5백여명의 배우를 지닌 일본의 대형 극단이 한국에 상주하면 우리의 문화시장이 잠식당한다는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의 반대 성명이 주된 발단이다. 우리측 관계자들의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열린 문화교류의 시대에 ‘문화 국수주의’로 비쳐질까 걱정된다. 기우로 끝난 일본의 대중문화 개방과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을 간과한 편협함을 드러낸 처사가 아닌가. 합법적인 문화산업 진출을 막은 한국의 태도에 대한 일본측 반응과 부메랑도 걱정된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도 같은날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공연계가 더 이상 ‘우물안 개구리’처럼 당장의 이익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뮤지컬 산업을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일보도 다음날인 1일 "문화계 침체의 또다른 요인으로 우리 문화계의 폐쇄성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롯데와 손잡고 한국 진출을 꾀하던 일본의 대형 극단 시키(四季)가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의 반대성명 등으로 도중 하차한 것이 그 예다. 상대는 자신있게 문을 두드리는데 우리만 ‘우물안 개구리’로 남는다면 변화의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사리와 노태우의 대담, "약한 나라일수록 큰소리 내는 법"**
이같은 전후사정만 보면, '욘사마 열풍'에 열광하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의 '문화적 협소성'이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느낌을 절로 갖게 한다. 또한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의 '집단 이기주의'가 양질의 외국문화 유입을 원천봉쇄하는 게 아니냐는 느낌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이같은 일부 언론의 접근은 시키의 아사리 대표의 지난 행적을 보면, 도리어 아사리 대표의 '술수'대로 끌려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
아사리 대표는 자칭 자신이 한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한다는 '지한파(知韓派)'이며, 한국 지배층의 적잖은 이들도 그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 하지만 그의 과거 발언을 살펴보면 아사리 대표와, 그와 친분이 두터운 국내 지우들이 말하는 '지한'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노태우 대통령이 이임을 얼마 앞둔 지난 1992년 2월 일본의 우익 <산케이신문>이 발행하는 월간지 <문예춘추> 3월호에는 아사리대표와 노태우대통령간 퇴임기념 대담기사가 실렸다. 대담기사의 원제는 '한일마찰, 한국의 책임'이었고, 부제는 노대통령의 말을 인용한 '한일마찰은 우리쪽에도 반성할 점이 있다'였다. 당시는 정신대 문제로 양국 관계가 극도로 냉랭한 시기였다.
다음은 대담기사 가운데 문제가 됐던 대목 전문이다.
아사리: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사과했음에도 천황에게까지 사과를 요구를 해 일본국민들의 혐한(嫌韓)감정이 높은데...
노태우: 정신대 문제는 일본언론이 먼저 문제를 제기, 우리 국민을 격분케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언론도 일본이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규탄하며 일본에 대해 강한 대응을 하지 않는 정부가 못마땅하다는 식의 감정론으로 여론을 부채질했지요. 이같은 양국 언론의 대도는 한층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으로, 결코 좋지 않습니다.
두 나라가 대립할 때는 '보다 큰 나라가 여유를 보여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약한 사람일수록 큰 소리를 내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대립이 생겨 커질 때는 내가 국내정치를 할 때 그렇게 했듯이 큰 나라, 여유가 있는 나라가 양보를 하는 게 요령있게 문제를 푸는 방식입니다. 일본이 그런 여유를 보인다면, '한국인은 감격을 잘 하는 만큼 대단히 감사해하며 진정한 우정으로 응할 것'입니다.
아사리: 한국은 전후 일본이 힘닿는 데까지 행한 협력의 실태를 거의 전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노태우: 전후 일본이 행한 협력에 대한 인식이 한국인들 사이에 충분치 않다는 견해에 일리가 있습니다. 조만간 일본의 협력이 한국경제 재건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많은 한국인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나 자신도 전후 일본의 협력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에게 알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사리: 저는 곧 불행한 역사속에서 비극적 접촉을 하게 된 두사람을 다룬 <이토오 히로부미(伊藤搏文)와 안중근>이라는 소설을 극화, 한일 양국에서 공연하고 싶습니다만...
노태우: 좋은 착상입니다. 이등박문이 한국에서 원흉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어지러움'이 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나는 시마(司馬)선생의 소설을 좋아해 월남전 시절에도 전선의 정글 속에서 "료마(龍馬)가 간다>와 다카스키 신사쿠의 일생을 다룬 <세상에 머무는 나날>을 촛불아래 밤새워 읽었습니다. 특히 다카스키는 내가 가장 이상적인 인간으로 삼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으나 메이지 유신의 위업을 달성했고, 게다가 정치에 손을 담그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이지요.
일본과의 사이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으나, 동시에 나는 일본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생애의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 그 가운데 있습니다. 일본인 선생과 일본책에서 얻은 것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일본인이 갖고 있는 미덕인 '의리와 인정'은 나에게 큰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내가 대통령이라는 큰 자리에 앉게 될 자질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 '의리와 인정'을 중시하고 살아왔기 때문일 겁니다.
***'교활한 일본우익'의 술수**
비록 퇴임을 며칠 앞둔 시점이기는 하나 일국의 대통령 지위에 있었던 노태우가 행한 발언은 과거 군사정권의 친일의식이 얼마나 골수에 깊게 배어있는가를 극명히 보여주는 더없이 창피스런 한 예였다. 이 대담을 접한 당시 일본우익들은 당연히 대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또한 이 대담은 한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하는 '지한파'임을 자처하는 아사리 대표의 '한국관'이 어떤 것인가를 극명히 드러내주고 있다. 요컨대 그는 '식민주의자'에 다름아니며, 그가 한국에 진출해 만들고 싶어하는 작품은 <이토오 히로부미와 안중근>같은 식으로 일본의 침략행위를 '상대적 관점'에서 합리화하고자 하는 내용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국내 공연계를 '우물안 개구리'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국내 일부언론의 접근법은 '교활한 일본우익'의 술수에 놀아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기대할 뿐이다. 이래서 '역사 바로알기'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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