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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다고 꽃 피고 새가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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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다고 꽃 피고 새가 오나

〈김봉준의 붓그림편지 11〉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와도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침묵,
사람들을 피하여 텅 빈 지평선 보이는 들에서 홀로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숲으로 들어가 나무 그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 휘~ 쉬고 싶을 때가 있다.
바닷가 갯벌에 발을 담근 채 하염없이 바다를 향해 가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인생의 빈터,
40대의 여백이 다시 그립다.
나는 때로는 인간의 손때가 닫지 않는 빈터가 편안하다.
가끔 나는 미치도록 이 빈터가 그립다.
내가 별난 사람인가,
그렇지 않고는 숨이 콱콱 막혀버릴 것 같은데….

다들 편안하신가.
성공한 사회 대한민국이,
성공한 인간만을 위한 인공의 나라 건설공화국은 쉴 새 없이 오늘도 뚝딱거린다.
모든 빈터는 전부 공사판이어야 직성이 풀린다.
청계천은 삼각산 물이 흐르는 맑은 산천이 아니다.
폐수 입수 노천수가 세 겹으로 덮인 인공 어항
그런다고 꽃이 피고 새가 오나.
그런다고 싱그러운 바람이 오고 풋풋한 흙내음이 찾아오나.
유리박스에 가둔 박제된 새가 노래를 부르는 척만 한다.
시냇물은 삼각산에서 흘러오는 척만 하고,
풀은 시멘콘크리트 벽에서 자라주는 척만 한다.
사람들은 모두 속아주면서 이것이라도 어디냐고 좋아라 디카를 휘두르고
연인에게 오라고 전화로 손짓한다.
그나마 남은 작은 광화문 광장에도 건설자의 예술창작정신이 발동해서 조형물을 세운단다.
35억 원짜리 대한민국 최고가의 조형탑을 자그만치 지름 6m, 높이 20m로 세운단다.
세계 최일류 도시의 꿈은 이로서 화룡점정을 한다.
청계천과 아무 상관이 없는
광화문과 청계천의 역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동아시아와도 아무 관련 없는 인도양 다슬기 조개모양을 그대로 본떠서
세계 최일류 팝아티스트 올덴버그가 설계하면 대한민국의 국립예술대학 교수는 하청을 받아 확대하면 그게 세계적인 예술이란다.
예술로 돈 벌기 참 쉽다.
인도양 다슬기가 가르쳐준 모양대로 따라만 하면 큰 돈 버는 예술이다.
팝아트 조형물이 본래 청계천의 원 취지에 걸맞을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인류 수도를 지향하는 서울은 서울의 역사 자체가 너무 촌스럽다.
삼각산물이 흐르고 수표교 광교 다리라도 밟으며 조선 장인들의 조각 솜씨를 어루만지며 흙길을 거닐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오해였다.

3.1 운동의 발원지도, 독립과 신문명을 모색하던 조선광문회 터도
6·25 이후에는 서울에 상경한 난민들의 질기디 질긴 삶의 흔적도
한국 근대 산업시장의 발원지도
'80년대 민주화의 봄과 '87년 6월항쟁 때의 수많은 시민이 운집해서 민주화를 목이 터져 라 외치며 거리를 달리던 곳도
2001년에는 수십만 시민이 운집하여 붉은 악마로 둔갑해 대~한민국을 외치던 곳도
이 모든 역사는 세계인류 대도시 서울 공간에서는 지워버려야 하는 촌스러움이다.
디즈니랜드식, 애버랜드식 인공공원을 입장료도 안 받고 시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

이럴 것이라면,
애초에 생태계 복원이니, 역사복원이니 하는 말을 쓰지나 말 것이지.
대한민국 정부 행정은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잊고 골치 아픈 역사를 깨끗이 청소하고
세계 초일류의 공원과 세계적인 팝아티스트의 최고가 조각과 세계에서 제일 빠른 건설 공기를 자랑하는 세계 최초의 도심 속 첨단공법의 인공하천공원을 세운다고 처음부터 자랑하지.
일류만을 추구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제일 큰 자랑을 누가 감히 아류라 말하나.
대한민국 수도 서울 청계천변에서 일어났던 역사의 시간은 잊어야 한다.
수난과 영광의 역사를 힘들여서 창작하는 시민의지의 표상을 기대했던 것이 어리석었다.
전 국토는 지금 공사중이다.
대한민국은 아류문화로 일류국가를 건설한다.

봄은 왔어도 사람의 마음은 봄을 잊었다.
봄은 건설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움돋이처럼 빈터에 찾아온다.

내 삶의 절반은 빈터
다시 훈훈한 봄바람 불어오고
꽃피고 새가 오는 것도
한겨울 칼바람이 베어버린 자리에서 온다
삶의 움돋이는 텅 빈터에 찾아 온다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보고
욕심나는 대로 차지하고
돈 되는 대로 삼키고
비어 있는 터마다 공사한다고
그런다고
꽃 피고 새가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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