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주자인 마이크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11일(현지시간) 서로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며 설전을 벌였다.
선공은 트럼프 대통령이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블룸버그 전 시장이 뉴욕시장으로 재임하던 때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던 '불심검문(Stop and Frisk)' 정책을 문제 삼고 나섰다. 그는 2015년 블룸버그 전 시장이 불심검문 정책에 대해 옹호하는 내용의 음성 녹음 파일을 올리면서 "와우, 불룸버그는 완전히 인종차별주의자다!"라고 평했다. 이 녹음에서 블룸버그는 "아이들의 손에서 총을 뺏는 방법은 벽에 몸을 붙이게 하고 몸 수색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트윗을 지웠지만, 아들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등 지지자들이 같은 녹음 파일을 올리면서 동일한 비난("블룸버그는 인종차별주의자")을 쏟아내고 있다. CNN, 로이터 등 주요 언론도 트럼프 대통령과 블룸버그 전 시장의 갑작스런 '인종차별주의자' 논란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블룸버그 "우리를 갈라놓은 건 트럼프" 반박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공격을 받은 블룸버그 전 시장은 자신이 범죄정의와 인종평등에 대해 기여해온 것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와는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더 큰 평등을 향해 행진하는 국가를 물려 받았는데 인종차별적인 호소와 혐오스러운 미사여구로 우리를 갈라 놓았다"고 반박했다.
앞서 블룸버그 전 시장은 지난해 11월 대선 출마 선언을 하기 직전에 불심검문 정책에 대해 사과했었다. 그는 2001년 9.11 테러 직후인 2002년부터 12년 동안 뉴욕시장을 지내면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으로 불심검문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는 주로 흑인과 히스패닉 등 유색인종에게 집중되면서 인권침해와 인종차별 논란을 낳았다.
'불심검문' 찬성하던 트럼프, 블룸버그 견제하기 위해 입장 바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된 이후 몇 차례 불심검문 정책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2018년 10월 시카고의 범죄 문제에 대해 "불심검문은 효과가 있고, 시카고와 같은 문제들에 의미가 있다"며 불심검문을 시행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백악관과 트럼프 선거캠프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불심검문에 대해 옹호한 발언에 대한 입장과 트위터에 블룸버그 시장의 음성 녹음 파일을 올렸다가 지운 이유에 대해 물었지만 답변을 거부했다. 다만 블룸버그 전 시장의 불심검문 옹호 발언에 대해 트럼프 선거캠프의 팀 머토우 대변인은 "명백히 인종차별주의자의 발언이며 용납할 수 없다"며 "블룸버그의 불심검문에 대한 사과는 거짓이었다"고 비난했다.
'백인 인종주의'에 기댄 트럼프가 "인종차별주의자" 비난?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과 성차별 발언이 도마에 올랐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도 2019년 민주당의 '스쿼드' 의원들(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일한 오마 등 민주당의 진보성향의 여성 하원의원 4명을 지칭)에게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등 인종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애착을 보이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 장벽' 공약은 불법 이민자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히스패닉 등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백인 유권자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정치적 수단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에서도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는 국경 장벽, 시리아에서의 철군, 한반도에서의 영속적인 비핵화, 파리 기후협정 탈퇴, 종교적 자유(동성 커플에 대한 지원 거부 선택, 낙태와 관련된 활동에 연방 지원금 거부), 수정헌법 2조(개인의 총기 소유 권리) 수호 등이 포함된다. 대체로 보수적인 백인 유권자들을 의식한 정책들이다.
WP "아이오와 진짜 승자는 블룸버그"
이런 트럼프 대통령이 블룸버그 전 시장을 '인종차별주의자'로 공격하고 나온 것은 지난 3일 민주당의 아이오와 코커스(경선) 결과와 관련이 있다.
민주당 첫번째 경선에서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리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4위로 추락하고, 38세의 사실상 정치 신인인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밴드시 시장이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진보성향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득표율 0.1% 차이로 아쉬운 2위를 기록했다.
중도성향의 후보 중에서 민주당 주류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아니라 부티지지 전 시장이 치고 나오고, 진보성향 후보인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가 나란히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예상에서 다소 벗어난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6일 "아이오와에서 가장 큰 승자는 부티지지나 샌더스가 아닌 블룸버그였다"고 평가했다.
진보성향인 샌더스 의원은 지지자들의 충성도가 높지만, '전국민 의료보험'(Medicare for All) 정책 등 뚜렷한 진보적 '색깔' 때문에 민주당 내 중도성향의 유권자, 무당층,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공화당 유권자 등에 대한 흡입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샌더스 의원이 민주당 후보가 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쉬운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샌더스 의원을 '사회주의자'로 몰아붙이며 '색깔론'을 들고 나올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구도가 짜여질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트럼프 캠프 내에서도 샌더스 의원이 민주당 후보가 되는 것을 가장 바란다고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도성향의 후보를 더 힘겨운 상대로 여긴다. 탄핵 사태까지 야기했던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드러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을 강력한 경쟁자로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이오와 경선 결과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자, 아직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블룸버그 전 시장을 공격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3선 뉴욕시장 출신이자 60조 원(534억 달러)에 가까운 엄청난 재력을 자랑한다. 트럼프 대통령 재산의 20배다. 그가 민주당 후보가 될 가능성 자체가 높지 않지만, 중도성향의 후보로 본선 경쟁력은 높게 평가 받고 있다. 그는 3월 3일 13개주에서 한꺼번에 경선을 치르는 '슈퍼 화요일'부터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리얼클리어 폴리틱스'에서 2월 11일 현재 전국 여론조사를 종합한 결과에 따르면, 블룸버그 전 시장의 지지율은 13.6%로 3위를 기록했다. 샌더스 의원이 23.0%로 1위, 바이든 전 부통령이 20.4%로 2위로 나타났다.
트럼프, "키 작은 블룸버그"라고 조롱하는 건 괜찮나?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블룸버그 전 시장과 자신이 골프를 함께 치는 사진을 올리면서 "키 작은 마이크는 공을 짧게 친다"고 조롱하는 등 블룸버그 전 시장의 작은 키를 조롱하는 '외모 차별' 발언을 올리기도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블룸버그 전 시장에 대해 "키가 너무 작아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토론장에 나가면 상자 위에 올라서야 할 것"이라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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